오늘도 글쓰기 모임에 갑니다
하루 사이에도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의 모습이 바뀐다. 매일 조금씩 돋아나는 새잎, 미세하게 솟아나는 꽃 몽우리. 봄은 바뀌는 제 모습을 역동적으로 꺼내 보인다. 그러니 매일의 변화를 놓칠까 부지런히 눈길을 보낸다. 살뜰히 계절을 살아 온전히 겪어내고 싶어서. 그런데 계절만 그럴까. 우리도, 삶도, 모르는 사이 날마다 변하고 있을 텐데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겪어내고 있는 걸까.
모두가 변화의 시점에 서 있나 보다. 봄이라는 계절처럼, 움틈과 흔들림, 가볍게 날아오르는 기류에 올라타고 있다. 글친구들 생활에도 달라진 부분이 생겼다. 수현 님은 이사를 앞두었고, 하루님은 졸업과 동시에 도서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내 아이는 초등학생이, 궁사님의 첫째는 고3이 되었다. 나무밑단풍님은 해가 바뀌면서 부모님과 생활하던 집을 나와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나의 캠핑 여행이 끝날 즈음 섬하님이 유럽으로 한 달여의 여행을 떠났다. 그랬던 그녀가 돌아와 오랜만에 모임에 합류했고 짧았던 커트 머리가 단발만큼 길어져 있었다. 미루었던 신혼여행을 대신하여 뒤늦게 떠난 여행, 한 달이 넘는 긴 기간, 파리에 사는 사촌 언니네 집에서의 생활, 이름만으로 모두를 설레게 하는 도시, 파리. 그녀의 이야기에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남편과 여행 내내 싸웠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결혼하고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는데 그동안 싸우지 않았던 걸 그곳에서 모조리 다투고 온 것 같다고 했다. 파리를 걷는 내내 끝없는 논쟁이 이어졌다고.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서로의 생각을 끊임없이 말로 쏟아냈다고. 하지만 그러고 나면 각자 생각을 곱씹은 후 데면데면 화해를 청했다. 마치 다툼을 연습하기 위해 온 것처럼 매일 싸우고 화해하는 일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익숙한 공간에서 비슷한 리듬으로 생활하면서 둘은 서로의 유사한 면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낯설고 불편한 환경에 맞닥뜨려서야 알지 못했던 각자의 생소한 모습을 보게 되었을 테고. 자신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게 여행의 의미이듯. 하지만 여행의 피로가 더해지면서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갈등이 빚어지기 쉬웠을 테다. 그런데도 파리를 걷는 내내 자신을 말하고 상대를 들으려 애썼다니 젊은 부부의 모습이 지혜롭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 겨울과 여름의 양 극단 속에서 봄을 찾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에도 비가 내렸다가, 맑아졌다가, 순간 눈이 내렸다가. 지금이 겨울인지, 여름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모든 순간을 겪을 뿐.”
- 섬하
논쟁이 지속되던 순간을 풀어쓴 그녀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파리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통과하며 상대의 다름을 온전히 겪어내려 했던 감정이 느껴졌다. 문득 나와 남편의 여행 경험이 떠올랐다. 미묘하게 감정이 상해 서로 거리를 두고 말없이 걸었던 길. 나와 남편은 섬하님 네처럼 끝없이 말을 쏟아내며 자신을 설명하고 상대를 납득시키는 성향은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혼자 곱씹는 편이랄까. 한동안 침묵하며 각자의 걸음에 집중하다 보면 밥 먹을 즈음엔 평소의 상태로 돌아왔고 다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이 있다. 남편은 조용한 편이고 갈등과 다툼 자체를 싫어해 그런 상황을 피해 버린다. 대체로 이해하고 져 주는 편이지만 때론 그의 진심이 무언지, 내 마음을 이해하긴 한 건지 답답할 때도 있다. 나 혼자 열변을 토했는데 되돌아오는 반응이 없을 때엔 무시당한 기분도 들고, 그래봤자 바뀌는 게 없다는 걸 보면서 체념한 적도 많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흩어지는 가벼운 감정도 있지만, 쓸어내지 않는 사이 먼지처럼 쌓여 두터워지는 감정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열심히 싸우지 않은 게 후회되어요.”
섬하님의 이야기에 내가 말했다. 이해했을 거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짐작하고 넘겼지만 갈등은 반복되었다. 뒤늦게야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정말 알기는 할까?’, ‘남편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궁금해졌으니까. 말로 표현하지 않는 이상, 그도 나도, 서로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거기엔 나의 성격도 한몫했을 테다. 속 마음을 시시콜콜 털어놓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내 마음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표면적인 말과 퉁명스러운 행동으로 뭉뚱그려 표현했다. 속상한 마음을 상대가 알아채주길 바랐지만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적절한 기회를 주지 못했다.
그만큼 타인의 감정에 무심했는지 모른다. 빨강인지 파랑인지, 세모인지 동그라미인지 묻고 답하면서 실제 모양을 들여다보려 했던가. 이런 사람이니까, 그런 거겠지, 지레 짐작하고 넘겨 버렸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만큼, 딱 그만큼의 오해가 우리 사이에 쌓였겠다.
지난 주말 가까운 지인 가족과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낮에는 아이들 중심으로 놀고 밤에는 와인을 마시며 어른들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김없이 남편들 회사 생활의 고충이 흘러나왔고, 돈벌이의 힘듦을 서로가 공감해 주었다. 그 끝에 아내들의 고충도 이해해 달라고 말을 덧붙였다.
회사 생활에는 매달 월급이라는 주기적 보상이 있고 내가 쏟은 노력이 성과를 내거나 상사의 칭찬이나 진급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내들 삶에는 물질적 보상도 사회적 인정도 없다. 집에 있지만 아이에게 매여 있기에 밖에서처럼 버티는 마음으로 보내는 시간도 많다. 매일 일정 시간을 가사라는 노동에 매진하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뚜렷한 성과가 나거나 진급이 있지도 않다.
내 말에 지인의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답했다. “아, 에르메스 백이… 필요한 거죠…….”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농담이라는 걸 뻔히 알지만 이때가 기회라는 생각에 웃음기 없이 덧붙였다.
“아니요, 그런 건 필요하지 않아요. 가방이나 선물 대신 밥을 한 번 더 차려주고 청소를 해주면 좋겠어요. 그런 일이 별거 아닌 게 아니라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칭찬과 인정의 말도 해주고요. 수고했다는 말, 고맙다는 말이요. 아빠들이야 밖에서 그런 말을 듣기도 할 테지만, 엄마는 가족들이 해주지 않으면 들을 일이 없어요. 당신은 정말 좋은 엄마야, 당신 덕분에 우리 가족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어, 그런 인정의 말이 필요해요.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아내의 노력을 알아주겠어요. 아무도 몰라요, 그 노력의 가치는 함께 사는 사람만 알 수 있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괜한 말을 해 분위기를 가라앉혔나 싶어 머쓱했다. 한 편으로는 오랫동안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털어놓아 후련했다. 그제야 진짜 마주하게 된 내 속 마음도 있었으니까. 칭찬받고 싶었구나. 수고했다고, 아이를 잘 키웠다고 남편에게 인정받고 싶었구나. 분위기로 짐작할 수 있는 불투명한 감정 말고, 직접적인 말로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던 거였다.
나를 좀 인정해 달라는 말을 내 입으로 하고 있으려니 부끄러웠다. 자존심도 상했다. 하지만 그게 솔직한 나라고 다독였다. 잠재울 수 없는 인정 욕구에 시달리는 옹졸한 사람이 나라고. 그럴 때 남편도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은 이런 거라고 내비치면 좋으련만 신중한 그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가까운 지인이 있어 흥분하지 않고 조근조근 말할 수 있었고 그 덕에 감정을 상하게 하는 불필요한 말까지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일순간의 정적은 냉담보다 공감에 더 가까웠고.
여행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감했다. 미리 만들어 두었던 오징어 볶음을 데워 밑반찬 몇 가지를 꺼내 간소하게 밥상을 차렸다. 오징어를 좋아하는 딸아이가 맛있다며 엄지 손가락을 추켜 들었다. 거기에 남편이 “진짜 맛있다”며 말을 보태고는 “멸치 볶음도 정말 맛있네.”라며 겹으로 칭찬을 쌓았다. 지난밤 한 말이 통하긴 했나. 한 자리에서 두 번 칭찬을 받으니 숨길 수 없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칭찬 들으니 너무 좋은데. 피곤이 싹 가셨어.”
나 좀 칭찬해 달라고 자존심 세우지 않고 말하길 잘했네 싶었다. 효과가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지만, 말없이 바라지만 말고, 말도 하지 않고 실망하지 말고, 나부터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걸 굳이 말해야 하냐며 쑥스러워하는 남편의 변화를 바라는 만큼, 자존심 상하니까 말도 꺼내기 싫다며 입을 앙다물고 말았던 나도 변해야 한다고.
파리를 걷는 내내 날마다 싸우고 화해했다는 섬하님이 부러웠다. 나와 남편은 알콩달콩 사이좋은 신혼부부로 6~7년을 보냈지만 싸우지 않는 사이 싸우는 법을 잃어버렸고, 적당히 서로의 감정을 이해했다고 오해하면서 7~8년을 또 보냈다. 그러는 사이 먼지처럼 야곰야곰 감정의 앙금이 쌓였다. 먼지는 보이지 않게 매일 쌓인다. 보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날마다 창밖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계절처럼 우리도 변하고 있을 것이다. 봄이라는 계절을 촘촘하게 겪고 싶었던 바람의 대상을 옆 자리의 사람으로 살짝 옮겨본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적당한 이해와 오해로 서로 한 발 떨어져 무심히 걷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온전하게 겪어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부터라도 더 용기를 내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