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도 한 철

내게로 가는 산책

by 춤추는바람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 바닥에 떨어져 버둥거리는 매미를 발견했다. 날아오를 힘조차 없는지 파닥거리기만 했다. 최선을 다해 충분히 여름의 노래를 토해낸 걸까. 원하는 짝을 만나 짜릿한 사랑을 나누었을까. 그래서 할 일을 다 마친 기분으로 최후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미는 성충이 되기 위해 6~7년을 땅속에서 기다린다. 간신히 허물을 벗고 날개를 달았을 텐데, 한 달이 채 안 되는 생을 나무에 붙어 매일 똑같은 노래만 부르다 끝을 맞는다.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 고작 20일 남짓의 보상밖에 받지 못한다니, 게다가 맴맴, 노래만 부르다 끝이 난다니, 매미의 삶이 허무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우리보다 더 크고, 더 오래 사는 어떤 존재가 있어 인간 삶을 들여다본다면, 우리네 삶도 매미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른이 되려고 죽어라 공부만 하더니, 어른이 되어서는 돈 번다고 쳇바퀴 돌 듯 매일 똑같은 삶을 산다. 그러다 돌연 죽음을 맞는 게 인간 아닌가. 저 멀리서 우리를 보면, 매미처럼 한 자리에서 맴맴 돌며 짧은 생을 그저 허비하고 마는 어리석고 허무한 존재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매미보다 나을 게 뭐가 있을까. 온 생을 바쳐 노래라도 불렀는가, 목숨을 건 사랑이라도 해보았는가.








오랜만에 만난 대학교 선배 언니에게서, 동기 중 한 명이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이 더 이상 희귀병이 아닌 오늘날에도 암은 별 수 없이 암이다. 의료와 제약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다 하더라도, 암 치료에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하니까. 이야기를 듣고 찾아보기 3기의 경우 생존율이 급격히 낮아졌다. 진단을 받은 친구는 한동안 직장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제야 조금 자리를 잡고 편해지나 했더니 암 진단이라는 큰일이 닥쳤다. 아직 아이들도 어리다. 이러저러한 상황들이 내 마음마저 복잡하게 휘저었다. 사람 일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우리는 결국 죽음이라는 판결을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의미를 잃는다. 성취나 인정, 나중을 위한 맹목적인 노력도.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이 또렷하게 빛을 발한다. 언젠가의 성공을 바라 현재를 낭비하거나 불행을 견디는 일은 어리석다. 바라는 무언가에 다다르기 전에 죽음이 먼저 우리를 데려갈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삶은 삶이다. 죽음은 모든 것의 의미를 지워버리고 말지만 그렇다고 당장의 매일을 놓아버릴 수도 없는 게 인간의 처지다. 암 진단을 받은 친구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나이와 유한한 삶을 한탄하다가도, 언니는 4학년 딸아이가 수학을 못해도 너무 못해 속이 터질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삶이 뭐 별거 있나,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닦달해 뭐하나 싶다가도, 당장 눈앞의 일은 또 어쩌지 못하는 게 인간인 거다. 아니, 그런 게 삶이라고 해야 할까. 죽음이 눈앞에 있다 해도 현실은 현실일 수밖에 없는 모순.


유방암 3기라고 진단받은 친구를 생각하면, 암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건강 검진을 한 또 다른 친구가 며칠 전에 유방암 진단 결과를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내게 그런 진단이 날아들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현실에 아등바등할수록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시간과 노력을 어디에 써야 할지 조금이라도 현명하게 분별할 수 있을 테니까. 현재를 온전히 누리는데 소홀하지 말아야겠다는 명징한 깨달음이 잠시나마 나를 일깨운다. 시간은 절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낮의 폭염이 그토록 맹렬했건만, 아침으론 선선한 바람이 창문을 넘나 든다. 창 밖으로 바람을 따라 하염없이 춤을 추는 나뭇잎들이 보인다. 이리저리 가없이 흔들린다. 그 모습이 좋다. 자신을 흔드는 바람에 있는 힘껏 맞서는 게 아니라 유연하게 몸을 내맡기는 나무가 오히려 자유롭게 느껴진다. 가만히 바라보는 사이 말간 기운이 마음에 번지고 그런 자세야말로 진정한 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무처럼 삶이라는 물살을 타고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흘러가고 싶다.


매미는 맹렬한 기세로 울어 대고,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은 폭발적으로 잎을 키워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여름의 절정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이토록 뜨거운 여름에 어떻게 뒤섞일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겁에 질려 납작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첨벙.


여름 속으로 뛰어들어 열기를 만끽하자. 나만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 보자. 여름도 한 철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