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번역기 사이
2025년 7월 16일, 수요일.
문득, 내 일상의 경험들을 남기고 싶어졌다.
무거운 구름이 슬며시 물러나더니, 눈이 부실 만큼 환한 햇살이 쏟아진다.
잠깐 평온하던 하늘 아래, 살랑이는 바람이 옷자락을 스치고
곧이어 빨래가 날아갈 듯한 센 바람이 와르르 몰아쳤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오늘의 날씨는 마치 기분 좋은 변덕쟁이 같다.
나는 만 2살, 만 9살 두 남매를 데리고
남편 회사 발령을 따라 프랑스로 이주한 지 벌써 153일이 지났다.
숫자를 적다가 문득,
“이러다 1년 금방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2012년 신혼여행 때 잠깐 경유했던 샤를 드 골 공항이
그 당시 내가 프랑스에 대해 알고 있던 전부였다.
솔직히 말하면 프랑스는 ‘여행하고 싶은 나라’ 리스트에도 없었다.
첫째가 만 3살쯤이었을 때,
‘유럽이고 물가도 좀 저렴하니까’ 하는 단순한 이유로
체코 가이드에 대해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그땐 정말,
“와, 자유롭게 살아보자!”
그 한마디로 모든 게 가능할 것 같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믿었다.
그 시절만큼은 내가 ‘똥꼬 발랄한 지식 가이드’였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는 꽤나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나는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그 꿈은 ‘6개월의 설렘’으로 남았다.
모험심과 현실감각 사이 그 어디쯤에서
결국 짐을 싸고 우리는 프랑스로 향했다.
13시간 비행 끝에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위탁 수하물 8개 박스, 골프채 하나, 기내 가방 4~5개,
그리고 전기밥솥 박스까지 들고 있었다.
나는 둘째를 아기띠에 안은 채,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의 감정은 “해냈다!”보다 “아직 안 끝났구나?”에 가까웠다.
공항 직원이 번역기를 들이밀며 반복해서 말하던 한마디가 기억난다.
“소매치기 조심하세요. 기차에서도 조심하세요.”
그 말에 겁이 났고, 그날은 내가 프랑스에서 보낸 날들 중 가장 추운 날로 기억된다.
돌아보니, 산더미 짐과 아기띠에 아이를 안고 허둥대던 우리를 향한 다정한 배려였다.
메씨보꾸, 므슈!
짐을 밀고 공항을 나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본 ‘소매치기 유형’ 유튜브 영상들 탓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본능적인 긴장을 했다.
이건 인종에 대한 편견이 아니라,
세계를 잘 모르는 내가 가진 무지와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경계심이었다.
낯선 분위기와 지친 몸,
그리고 ‘우리 잘 살아갈 수 있겠지’ 하는 불안이 그 감정들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
에어비앤비에서 한 달.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1년 계약의 레지던스 집으로 이사하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사실 처음부터 프랑스에서의 삶을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다.
프랑스어는커녕, 영어조차 못 하는 나였기에
언어에 대한 불안은 생각보다 컸다.
나는 지금, 한국에서 3개월 배운 프랑스어 인사말과 몇 개의 단어,
그리고 한국어와 번역기를 번갈아 쓰며 하루하루 적응 중이다.
제과점이나 까르푸 같은 데는 하루 한 번은 꼭 나간다.
프랑스어 인사말을 어색하게나마 건네보려는 마음에서다.
들어갈 때는 Bonjour! 봉쥬ㅎ
계산 후에는 Merci, Bonne journée, Au revoir! 메씨, 봉쥬흐네, 어흐부아
내 기준 프랑스어 3종 세트다.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또 봐요!”
생각보다 프랑스 사람들은 인사성이 밝고, 인사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낯선 땅이 조금은 덜 낯설게 느껴진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매일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내 안의 작은 성장들을 발견하고 있다.
오늘도, 소소한 인사를 건네며 나는 이 나라와 친해질 작정이다.
메씨, 봉쥬흐네, 어흐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