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만은방랑자 Jun 17. 2017

사랑하고 싶어지는 피렌체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_낭만이 흐르는 도시

 이탈리아엔 두 번째 방문이었고, 심지어 방문하는 도시도 똑같았지만 여전히 설레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성격이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여행도 같은 것을 반복하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좀 더 깊이 있게 알아가는 데서 오는 쾌감 때문인 듯하다. 



무엇보다도 짝이 이탈리아를 가고 싶다고 했다. 이탈리아 하면 베니스, 피렌체, 로마가 관광 3대 도시 아닐까? 우리는 이번에 피렌체와 로마만 가기로 했다. 니스에서 기차를 타고 카사블랑카를 거쳐 해안가를 따라 달린 끝에 피렌체에 도착했다. 짝이 해안가의 풍경을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해안 기차를 탄 것이다. 

 피렌체에 도착하기 전, 우리는 기차에서 혼란을 겪었다. 종점이 피렌체가 아닌지라 제때 내려야 하는데 이탈리아어로 방송하는 기차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비슷한 단어라도 들어보려고 집중했다. 다행히 우리 칸에 탔던 할머니가 친절하게 알려주신 덕분에 제 때 내릴 수 있었다. 역시 어딜 가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친절하다.

피렌체는 좁은 골목들이 많았다. 길쭉한 창의 건물들이 빽빽이 골목길을 따라 서 있었다. 그리고 작은 가게들이 사이사이 보였다. 좁은 골목 때문일까, 오토바이가 눈에 자주 띄었다. 이탈리아 하면 좁은 골목 혹은 해변가를 달리는 스쿠터, 베스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모습마저도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단지 배경 때문일까, 혹은 그 모습이 행복해 보여서일까?



피렌체 하면 생각나는 것을 물어볼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대답은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가 아닐까? 준세이와 아오이의 운명적 사랑이 펼쳐졌던 곳. 이로 인해서 방문객들은 이 도시에 낭만성을 더 부여하는 것일지 모른다. 두오모 성당의 아름다운 자태도 이런 낭만성에 한몫을 더한다. 영화 속 한 장면을 내가 걷는 그 기분이란 직접 겪어본 사람들은 다들 알리라. 두오모 성당의 종소리가 아마 옆에 서있는 조토의 종탑에서 들려오는 거겠지? 종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면서 영화 속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조토의 종탑 전망대를 처음 올라가면서 다짐했었다. 다신 안 올라온다고. 그 다짐이 이렇게 빨리 깨질 줄은 몰랐다. 애인과 함께 오르는 종탑은 그래도 좀 더 낫다. 계단이 좁고 나선형으로 되어있어서 어지러움을 유발하긴 하지만 전망대 꼭대기에서 보는 피렌체는 가히 압권이다. 414개의 계단의 고통을 견뎌내면 평생 간직할 감동이 그 위에 있다.(사실 감동은 희미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골목을 지나다 갑자기 눈 앞에 등장하는 이 두오모 성당의 존재감이란 놀랍기만 하다. 거대한 성당이 좁은 광장에 있다 보니 그 스케일이 실제보다 더 커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조각으로도 파는 피자집. 동네 빵집처럼 있었는데, 소박하고 정겹다. 


피렌체에서 결혼을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동양에서 온 커플이 마차를 타고 지나갔다. 두 신혼부부의 표정에서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행복이겠지?

피렌체는 걷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도시 자체가 작기도 하지만 어디에서 어떤 보물을 발견할지 모른다. 어느 정도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의 묘미는 단순히 유적이나 박물관 같은 외형적인 부분보다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에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먹는 순간, 걷는 순간,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기분을 느끼는 순간.



피렌체를 끼고 흐르는 강은 아르노 강이다. 이 강은 별로 특별할 것은 없지만 양쪽에 늘어선 건물과 특이한 매력을 뽐내는 베키오 다리가 있어서 더 아름다워 보인다. 1218년까지 홀로 아르노 강을 지켰던 베키오 다리는 수많은 세월을 견디면서, 또 수많은 시련을 피해왔다. 제2차 전쟁 때는 독일군이 침공했다가 후퇴할 때, 유일하게 파괴하지 않았던 다리라고 한다. 적들도 알아볼 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다리라니. 그리고 그걸 여유롭게 보고 있다는 데 감사했다. 


이탈리아 건축물들은 낭만적이다. 화려함보다도 소박한 낭만이 느껴진다.


피렌체에 왔다면 아무리 바빠도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가죽 시장. 피렌체 가죽 시장에서 싼 값에 양질의 가죽 가방이나 가죽지갑을 살 기회를 놓친다면 괜히 떠나는 길이 아쉽고 찜찜하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가죽 시장에서 고객들과 흥정하는 상인들이 분주하게 눈을 굴리고 침이 마르도록 외쳐댄다. 구경이나 할라치면 금세 옆에 와서 원하는 가격을 불러보라고 하는 상인들이다. 역시 이럴 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선방을 날려야 한다. 20유로! 



시장은 언제나 즐겁다. 그 종류가 어찌 됐든 간에 사람들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다양한 물건들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도 좋지만, 여기저기 위아래에 최대한 공간을 활용해서 진열해 놓는 것도 재밌다. 우리는 눈과 손을 바쁘게 움직이면서 내게 혹은 선물할 사람에게 맞는 녀석을 찾는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보물 찾기와도 같은 이치일까?



길거리에 피렌체에 어울리는 멋진 차가 서있었다. 오래된 클래식 차들이 역시 낭만적이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음식을 찾아갔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삶의 고단함을 덜어내는 것. 그런 점에서 여행은 일상과 닮아있다. 음식으로 잠시 쉬고 행복해지는 것. 우리가 항상 하는 일 아닌가?



피렌체 하면 역시 티본스테이크가 유명하다. 자자(Za-za)라는 곳은 티본스테이크로 유명한 맛집 중 하나다. 보통 1킬로짜리 하나를 시켜 먹는데, 40~50유로 정도의 착한 가격으로 엄청난 양의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자자의 티본스테이크 맛은 가히 잊히지 않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한국에선 티본스테이크가 아마 8만 원이 넘어가던데, 이 날 티본스테이크와 와인까지 먹고는 60유로 정도 냈던 걸로 기억한다. 



둘이 먹기에는 정말 많은 양이다. 감자튀김까지 있으니 배가 찢어질 것 같았다. 



시뇨리아 광장은 터진 배를 다시 가라앉히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베키오 궁전이 위치한 곳이다. 16세기에 완성되어 지금은 시청사로 쓰이는 건물이다. 시청마저도 아름다운 피렌체.


그 앞에는 조각상들이 서있는데,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가장 유명하다. 메디치 가문의 독재에 맞서는 공화정의 저항을 상징했다고 한다.  시뇨리아 광장에는 베키오 궁전 말고도 옆에 로자 데이 란치라는 화랑이 있다. 아치형 입구 세 개가 정면에 있는 로자 데이 란치는 안에 조각상들이 즐비해 있어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곳이었다. '메두사의 목을 든 페르세우스'나 '사비네의 강간'같은 동상들이 있다. 

베키오 궁전 앞의 넵튠 상도 사진 찍기 좋은 장소이다. 헤라클레스상도 마찬가지.


해 질 녘의 베키오 다리와 그 밑을 관통하는 아르노 강의 자태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강변에 앉아 가만히 그 모습을 애인과 함께 바라봤다. 피렌체의 낭만에 젖어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검푸른 밤의 장막이 내려앉은 피렌체는 곳곳에서 황금빛 불빛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너무 밝지도 않은 게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밤에는 가야 할 곳이 있다. 사실 해 질 녘에 가는 것이 더 좋다. 바로 미켈란젤로 언덕. 낭만이 완성되는 곳이다. 다리 아프다며 가기 꺼려하는 애인을 붙잡고 낭만을 완성하러 갔다. 어째 모양새가 웃겼다. 끌고 가는 낭만의 공간이라니.



생각보다 멀지 않아서 애인도 놀랐다. 언덕을 올라가는 길도 아름다우니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 언덕을 향하는 사람들, 특히 연인들이 함께 그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한국 사람들도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언덕에 도착한 순간, 다비드 상이 우리를 반기고 멀리 두오모 성당의 쿠폴라와 조토의 종탑이 보였다. 베키오 다리도 보이고 피렌체의 전경이 검은 배경과 대비되어 은은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결혼사진을 찍는 서양 커플도 있었다. 황홀한 아름다움이었다. 영화 속 포스터 같기도 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커플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낭만을 선사했다.



내려오는 길에 오스테리아 베키오 비콜로라는 레스토랑에 갔다. 베키오 다리 옆에 있는 식당이었다. 역시 이탈리아는 파스타와 피자지. 조명과 장식들의 섬세함에 즐거움이 커졌다. 피자와 파스타는 정말 입에서 사르르 녹는, 입 안 가득 행복함을 채워주는 맛이었다. 이렇게 먹어도 얼마 나오지 않으니 피렌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박하게 즐기는 낭만. 피렌체는 그렇게 끝까지 낭만을 선사하면서 장막 같은 밤으로 후퇴해갔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