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연애시절의 제주도
"우리 제주도 갈래?"
연애 초반, 남편은 일을 실직하고 한동안 스트레스를 얻어 잠시 동안 귀에 이명이 온 적이 있었다.
"삐? 이렇게 들려?"
"응! 삐이~ 이런 소리가 자꾸만 들려!! 미치겠어!"
병원을 가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미칠 노릇이었다. 남편의 증세는 점점 심해져 가고 있었고 나는 덜컥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남편의 병의 원인이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스트레스 때문에 한 번도 생긴 적 없던 병이 생긴 것이 아닐까?
그 정도로만 추측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제안했다.
"우리 제주도로 가자! 딱 일주일만 다녀오자! 나도 일주일만 휴가 낼래!"
제주도가 고향인 남편은 바로 좋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귀포에 에어비앤비를 구해서 일주일간 머물게 되었다.
그 집은 우리에게 딱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제주도에 한 달 살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집주인은 중년의 부부였다.
나는 그곳에서 글을 쓰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노트북을 들고 갔지만...
정작 글을 제대로 써보지는 못했다. 대신, 남편과 제주도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생각하는 제주도는 모든 물가가 비싸다는 것뿐이었고,
가족여행, 수학여행으로 총 세 번 정도 왔었던 여행지였다.
남편은 제주도민만 알 수 있는 식당들을 나를 데리고 갔다.
그렇게 제주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제주도가 이렇게나 맛있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음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찾았던 가게들은 뭐랄까... 정말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주도는 나에게 그저 여행지에 불과했다.
그렇게 남편과 1년째 되는 날, 다시 제주도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남편이 데려갔던 식당들은 어느새 TV 예능이나 유튜브에 나와 여행자들로 꽉 찬 가게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나는 제주도민도 아니면서도 내심 아쉬워했다.
제주도에서의 스몰 웨딩 준비
나와 남편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처음에는 스몰 웨딩이랍시고 우리 둘이서 결혼식을 준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결혼사진도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삼각대만 세워두고 찍으러 다니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에서 그리고 결혼식까지 시간이 없었던 우리들은 결국, 남편의 남동생에게 부탁을 했다.
준비기간만 한 달, 웨딩사진 콘셉트를 세 가지로 나눠서 정하고, 어디서 찍을지와 어떻게 포즈를 할 것인지 차근차근 바쁘게 준비해 나갔다.
물론, 드레스며 화장이며 모두 다 셀프로 했다. 정말 스트레스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스몰웨딩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처음에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스몰웨딩을 선택했었지만, 오히려 시간을 더 많이 썼고,
모든 것을 우리가 찾고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저렴한 가격에 웨딩드레스를 구매하기 위해 알리익스프레스라는 해외직구 사이트를 이용했다.
하지만 정말 된통 당했다. 거기서 올린 사진과 내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정말 달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정말 같은 드레스가 맞는 것인가?"
그래서 판매자에게 내가 입은 드레스를 보여주며, 이게 정말 같은 드레스가 맞는지 항의했고, 나는 반품하기를 원했다. 소재도 정말 싸구려 드레스 소재였고, 무엇보다 란제리처럼 내 속살이 훤히 비쳐 보였다.
한 번뿐인 결혼식 사진을 이런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을 수는 없었다.
이 드레스는 20만 원 넘게 산 드레스였다. 마치 판매자는 미국인처럼 광고를 했지만,
이 드레스는 엄연히 메이드인 차이나였다.
그런데 판매자는 내가 반품을 하면, 배송비가 더 드니, 부분환불만 해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부분환불?"
나는 반품을 하고, 전액 환불을 원했다.
하지만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대체 왜 안 되냐고? 내가 반품을 하고 싶다는데!!"
판매자는 나에게 제안을 했다.
내가 반품을 안 하는 대신에 오만 원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니 반품을 하지 말고, 계속 입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드레스를 입고, 웨딩볼레로까지 다시 다른 샵에서 구매해서 우여곡절 끝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상의를 볼레로로 가려도 대부분 위에 무언가를 가려서 찍거나 해야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웨딩사진은 완성되었다.
스몰웨딩이라고 했으면서 결혼 준비를 하면서 하나둘씩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원래는 사진 때 찍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식장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정말 내가 원하는 드레스를 입고 싶어서 제주도에서 마음에 드는 웨딩드레스 샵을 찾아 계약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까지 하나둘씩 차근차근 빌드업해가듯이 돈을 썼다.
아니, 결혼준비를 해나갔다.
그러면서 제주도를 정말 자주 오고 갔다.
이제 제주도는 더 이상 나에게 여행지가 아닌 곳이 되어버렸다.
결혼하기 한 달 전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해외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지만, 남편은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뭐랄까? 갑자기 불현듯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해외로 나가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는 당연하다고 했다. 걱정 따위는 없었다. 함께 나가는데 무슨 걱정이 있으랴?
남편은 이 질문에 대해서 자주 종종 물었고,
내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그럼 제주도는 어때?”
“제주도?”
“작디작은 한국이더라도 제주도는 미세먼지도 그나마 적고, 공기도 좋은 편이야.”
남편이 이 말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제주도가 자신의 고향이기 때문이었고,
자신의 고향을 그만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남편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갈 때면, 나는 항상 남편의 행복한 얼굴을 목격했다.
그는 제주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매번 하는 말이 있었다.
"역시 제주도에 도착하니까 코가 뻥 뚫려!"
우리 둘은 서울에서 원룸살이를 시작하면서 만성 비염을 앓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환기가 잘 안 되는 방에 살아서 그런지 먼지 알레르기로 인한 비염이 생겼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제주도에 오면 그 코가 빵 하고 뚫린다는 것이었다.
사실 결혼식을 한 달 남겨둔 시점에서 남편이 이런 말을 꺼낼 때마다 괜스레 짜증이 났었다.
"우리 계획이 있는데, 왜 자꾸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메리지 블루라는 말은 안 믿었지만, 결혼 준비를 하면서 한껏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제주도에 내려갈 때는 뭐랄까? 이제 예전처럼 여행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나는 서귀포시를 더 좋아했지만, 시댁은 제주시여서 거의 제주시에서만 머물러야 했다.
남편은 친척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제주도에 내려갈 때마다 어른들께도 항상 인사를 해야만 했었다.
거절하기도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결혼하기 한 달 전부터 뭐랄까 엄청난 부담감 때문에 이제는 제주도에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결혼 후 제주도
결혼 후 제주도에 두어 번 정도 더 왔다 갔다 했었다.
이제는 결혼 전보다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그래서 다시 제주도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달까?
그동안 내가 제주도를 오며 가며 보고 느끼는 풍경, 그리고 나는 어떤 것에 영감을 받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건축물과 문화생활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나무 말이야.”
“나무? 무슨 나무?”
“어느 지역에 가도 다 똑같아 보여.”
“그렇지. 우리나라 환경에 맞게 자라나니까...”
“다른 나무를 보고 싶어.. 그리고 그 나무들이 모여서 숲을 이루는 다른 풍경도 보고 싶고.”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제주도는 감귤나무가 있잖아? 이건 육지에서 볼 수 없는 건데?”
나는 감귤나무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귤을 좋아했어. 당신도 알지? 나 이틀 만에 귤 한 박스씩 먹는 거.”
“알지.. 근데 그게 왜?”
“어릴 때, 파지귤을 사면 가끔 귤 나뭇가지가 딸려 올 때가 있었어. 그거를 크면서도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가 몇 번씩 봤었어. 그래서 난 익숙해. 이 귤나무가..”
익숙하게 보고 자랐던 것이 싫었던 거였을까? 그냥 새로운 것을 보고 싶었다.
남편은 나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동안 제주도 곳곳을 다니면서 여행과는 다르게 제주도가 고향인 남편을 통해서 새로운 제주도를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직관적으로 내가 보는 풍경이 육지와 비슷할 뿐이었지,
제주도의 생활환경과 문화는 육지와는 많이 달랐다.
육지사람이었던 나는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그렇게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귀포시에 일주일 동안 머물 숙소를 잡아두고, 제주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제주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넘어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항상 호텔에만 머물렀었다.
이제는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시댁에서 머문다.
처음으로 평온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을 하고 이전에 느꼈던 감정들이 많이 해소되었다.
그래서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조금 더 편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이제 제주도에 내려가서 어른들을 보고 함께 밥 먹는 것이 그때처럼 불편하지는 않다.
하물며 시부모님은 가끔 우리 부모님보다 다른 면으로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주로 집에서 낮시간 동안은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주변 자연환경을 보기 위해 돌아다녀도 이해해 주신다. 호텔이 아닌, 진짜 남편이 살았던 집이라는 공간에 있으니까, 남편이 말하는 이 평온함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딱 그뿐이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살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제주도의 날씨는 습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육지에서만 살던 나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근데 나는 제주도에서는 못 살 것 같아...”
“왜? 나는 서울로 올라가기 싫은데? 제주도에 오니까 살 것 같아.”
“나는 가끔 여행으로 놀러 오는 건 좋은 거 같은데.. 살기에는 잘 모르겠네.”
건축물은 제주시는 서울과 똑같은 건물이었고, 서귀포시의 집들은 귀여운 현무암 돌담과 함께 스머프들이 사는 것 같아 귀여웠지만, 내가 여기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 나중에 나이 들어서 오자.. 난 늙어서는 제주도에서 내려와 살고 싶어..”
“그것도 생각해 볼게.”
나는 그때 깨달았다. 한국에서 살기 싫은 거구나...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이렇게 하나하나씩 내가 살 곳을 찾기 위해 리스트에서 제주도라는 지역을 뺐다.
결혼을 하고 난 후, 제주도는 이제 나의 여행지가 될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살고 싶은 지역도 아니었다.
이제 제주도는 남편의 고향이었고, 나의 시댁이 있는 곳이다.
애초부터 나는 남편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다.
나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 없다. 나에게 고향이라는 것이 있었나 싶다.
어릴 적부터 이사를 자주 했던 탓이었을까? 딱히 내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도 없었고,
그저 지나가는 지역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