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문을 두드린다

by 컨트리쇼퍼


노인시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밖의 풍경을 응시했다. 유리창 너머로 지나가는 세상은 마치 낡은 필름처럼 희미하게 번져 보였고, 그 모호함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윤곽을 찾으려 애썼다. 제대로 된 직장도, 안정적인 수입도 없이 흘러간 시간들이 버스의 진동에 맞춰 기억 속에서 출렁였다. 언젠가부터 내게는 꿈조차 사치가 되어버렸고, 미래라는 단어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공기가 폐 속을 채우고 빠져나가는 그 순간만큼은, 적어도 내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불안은 언제나처럼 가슴 한편에 웅크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것 같았다.

옆자리의 두리와 관수도 각자의 무게를 지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침묵을 이해했다. 때로는 언어보다 정적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진한만이 이어폰 속 다른 세계로 도피한 채 창가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그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나는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꼈다.

창밖으로는 황금빛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곧 수확철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자연은 언제나 자신의 시간표를 정확히 따르고 있었다. 씨앗을 뿌리고, 기르고, 거두어들이는 순환의 리듬. 반면 우리는 목적지도 모른 채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정류소에서 내린 순간, 손에 들린 캐리어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그것은 단순히 짐의 무게가 아니었다. 우리가 떠나온 것들, 그리고 향해가는 것들의 무게였다.

환승을 위해 이동하던 중 캐리어 바퀴가 돌밭에 걸려 더 이상 굴러가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인내심이라고 불리던 그 가느다란 실이.

관수가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하려 했지만, 화면에는 차가운 오류 메시지만이 떠올랐다.


"요즘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그의 말에는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어떤 경이로움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모두 연결이 끊어진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핸드폰이라는 작은 창문마저 닫힌 채로.

관수가 주변을 둘러보러 떠난 후, 우리는 캐리어 위에 앉아 먼 산맥을 바라보았다. 검은 구름이 서서히 하늘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자연이 보내는 경고 신호 같았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두리의 목소리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피로는 단지 몸의 것만이 아니었다. 영혼이 지쳐있었다. 멀리서 마을버스 소리가 들려왔을 때, 우리는 마치 구원의 손길을 발견한 듯 재빨리 일어났다.


"박관수! 마을버스 왔어!"


내 목소리가 수풀 속으로 흩어져갔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고요함이 불길했다. 자연의 정적에는 때로 위험이 숨어있다.

버스 기사의 차가운 최후통첩 앞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기다림과 떠남 사이에서. 결국 나와 두리는 버스에 올랐고, 진한은 관수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 순간 우리가 나누어졌다는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관수가 피투성이가 된 다리로 달려왔을 때, 나는 이 여행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험난할 거라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어떤 게 나타나더니..."


그의 말은 떨리고 있었다. 공포는 전염성이 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느꼈다.

그때 옆에 앉은 할머니가 소쿠리에서 약초를 꺼내 관수의 상처에 발라주었다. 그녀의 손길은 숙련되어 있었고,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거 붙이고 있으면 소독이 될 거야. 근데 거긴 죽은 자들의 영혼이 떠도는 곳이니 다시는 들어가지 말거라."


죽은 자들의 영혼. 그 말이 버스 안 공기를 한순간 얼어붙게 만들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데이터로 설명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마을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차창 밖으로 문명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버스 안의 노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이방인이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자신의 삶에서도 이방인이었는지 모른다.

마지막 정류소에 도착했을 때, 우리 앞에는 무너져가는 정류소가 서 있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현재를 반영하는 거울 같았다. 낡고, 기울어지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관수가 정류소 뒤로 달려가 토하기 시작했을 때, 나 역시 연쇄반응처럼 속이 뒤틀렸다. 몸이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멀미만이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두리와 진한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볼륨을 높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 모두가 각자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견디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때로는 차단이 생존의 방법이 된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듣지 않기를, 보지 않기를, 느끼지 않기를 선택한다.

노인시로 가는 길은 아직 멀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막 여행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침묵이 우리 사이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방끈을 고쳐 매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늦은 오후의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어가며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림자는 마치 우리 앞에 놓인 미지의 시간들처럼 어둡고 불확실했다.

멀리서 버스가 천천히 다가왔다.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조용히 버스에 올랐을 때, 예상했던 광경이 펼쳐졌다. 연로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득한 버스 안에서 우리는 명백한 이질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가 타는 순간, 여기저기서 시선이 꽂혔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뒤섞인 눈빛들이.

어색한 정적이 흐르다가, 기다렸다는 듯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디 가는 겨? 여기 사람들은 아닌 거 같은디."

"당연히 아니제! 젊어도 너무 젊어!"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버타운으로 일하러 가요."


앞자리의 할머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표정에는 의아함과 동시에 무언가를 간파하려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실버타운? 이런 산골짜기에 그런 곳이 있었어?"

"난 여기 평생 살았는디, 그런 말은 들어본 적 없구먼."

"여기서 더 올라가야 한대요. 저기 산꼭대기 쪽으로요."


할머니는 옆자리 할아버지를 팔꿈치로 툭툭 치며 물었다.


"실버타운이라는 데가 있대. 거기 뭔지 아쇼?"

"뭐시기? 실버? 골드 아니여?"


그 순간 나는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걸 느꼈다. 언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실버타운, 골드타운. 같은 장소를 가리키는 서로 다른 이름일까, 아니면 우리가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걸까.


"산꼭대기에 뭐가 있긴 한 모양인데, 당신 혹시 들어본 거 있소?"


할아버지는 한참을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 옛날에 산에 건물 하나 올렸다고 하던디… 그게 뭔지는 몰라도."


버스 안에 웅성거림이 퍼졌다. 아무도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추측과 기억의 파편들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실버타운, 골드타운, 정체불명의 산꼭대기.

가면 갈수록 이곳이 우리가 생각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스며들었다.

버스가 갑자기 심하게 흔들렸다. 차창 밖을 보니 어느새 비포장도로에 접어들어 있었다. 문명이라는 것이 서서히 벗겨져 나가고 있었다. 노면이 거칠어질수록 우리의 몸도, 마음도 함께 요동쳤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그보다도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이 더 컸다.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던 버스가 마침내 멈춰 섰을 때, 우리 앞에는 무너져가는 정류소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방은 산과 논뿐이었다. 바람조차 적막한 마을. 이곳이 정말 실버타운으로 가는 길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스며들 무렵, 파란색 트럭 한 대가 덜컹거리며 나타났다.

운전석 창문이 내려가고 한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촌스러우면서도 기묘한 멋이 느껴지는 옷차림이었다.

그는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컨트리쇼퍼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태어난 곳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세계 곳곳을 거닐며,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땅을 찾고, 그곳에서 글을 쓰고자 합니다.

38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5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