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시 청년센터 건물 위로 전광판이 반짝였다. 낡은 유리창에 반사된 불빛이 눈을 찔렀고, 동시에 우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해 모였다. 우리는 말없이 빛나는 문장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광고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보았던 문구와 거의 같았지만, 끝 문장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 미묘한 차이에 우리는 동시에 핸드폰을 꺼냈다. 손에 익은 동작으로 사진을 찍고, 앱을 열어 업로드했다.
한 장만 더.
단 한 장의 사진이면 되었다.
조건을 모두 채운 순간, 주변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손바닥이 손바닥을 치며, 희미한 웃음들이 흘러나왔다.
그때, 진한이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잊지 마. 경쟁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셀 수도 있어.”
그의 말에 괜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말이 어쩌면 우리 모두가 듣고 싶었던 한마디였는지도 몰랐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주일 동안 매일 밤을 새우며 작성한 자기소개서, 찍고 또 찍은 사진들, 작정하고 꾸며낸 서사들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까지 왔고, 이제 뒤로 물러날 수 없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접수 데스크에 서 있던 직원은 우리가 이미 작성해 온 신청서를 무시하듯, 다시 써야 한다고 말했다.
관수가 조용히 투덜거렸다.
“이거 원래 다 이렇게 다시 쓰는 거야?”
진한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몰라. 하라는 대로 하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다시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미 외워버린 자기소개와 경력 사항을 또 한 번 적어 내려가며, 어느 순간 마주친 칸에 펜 끝이 멈췄다.
‘가족 수’
그 말 하나에 숨이 잠시 멈췄다. 하지만 주저할 필요도 없었다.
‘0명’
나는 적었다. 힐끔 옆을 보자, 친구들도 같은 숫자를 적고 있었다. 진한의 말이 떠올랐다.
“이 항목은 분명 있을 거야.”
우리는 알고 있었다. 무엇이 우리를 더 ‘선발 가능성 높은 청년’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지를.
겸손하지 않되 과하지 않은 진심, 적당히 열정 있어 보이는 말투, 그리고 드라마틱한 개인사.
모든 것을 동원해 우리는 서류를 완성했다.
그리고 며칠 뒤, 예상보다 빠르게 합격 소식이 도착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조로운 과정이었다. 너무 순조로워서, 조금 불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쁨을 우선시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함께 위층으로 향했다. 면접을 담당했던 사람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낯설지 않은 미소를 지닌 얼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그녀는 익숙한 말투로 우리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진짜 인상이 너무 좋으시네요. 이 프로그램이 정말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는데도 이상하게 참여율이 낮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의 스펙을 보니까, 어머, 너무 찰떡이에요!”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이건요, 청년들이 기업이나 마을에 파견되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숙식 제공, 교통비 지원, 아주 실속 있죠.”
그 말이 달콤하게 들렸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 걸리는 감각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렇게 광고가 많았는데, 홍보가 부족했다?’
모순 같은 말이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차라리 환대를 받아들이는 편이 더 쉬웠다.
바깥세상에서 우리는 늘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여기에서는 달랐다.
우리는 ‘딱 맞는 사람’들이었고, 반가움으로 맞이되었으며, 우리의 빈 구석은 이곳에서 환영받았다.
모순적인 현실이었지만, 달리 대안은 없었다.
탁자 위에 놓인 계약서는 생각보다 두꺼웠고, 글씨는 빼곡했다. 하지만 설명은 지나치게 매끄러웠다.
“기관마다 일정과 업무는 다를 수 있어요. 기업 매칭에 따라 좀 변동이 있을 수는 있고요. 뭐, 그렇게 생각보다 심각한 건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어딘가 ‘일반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맴돌았지만, 우리는 이미 계약서에 이름을 쓰고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불안은 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기회는 그렇게 찾아왔고, 우리는 받아들였다. 그게 진짜 기회인지, 다른 무언가였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는 글자가 프린팅 된 종이를 손에 쥔 채, 도전형 청년 파견제도의 OT가 열린다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길게 뻗은 회의용 탁자와 각을 맞춘 의자들, 네 면이 투명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 밖에서 쏟아지는 빛은 차고 밝았지만, 안쪽에 모여든 우리는 그 빛에 눈을 깜빡이며 무언가를 감추는 표정이었다.
그때, 문이 조용히 열렸다. 남자가 한 명 들어왔다. 오십 대 후반, 약간 굽은 어깨와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
그의 이름은 한상철이었다. 정년이 머지않았고, 중학생 아들이 하나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는 아직 도전특별시를 벗어나 살아본 적 없었고, 한 번쯤 그 바깥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이 사업이 정확히 어떤 성격의 것인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도시의 남은 예산과 정치적 필요가 엉켜서 급조된 프로그램.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회성 기획.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회의실로 들어온 그의 발걸음은 확신이 아니라 체념에 가까웠다.
상철은 서류가 담긴 얇은 파일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실은 빈 문장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곧 알게 되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도전형 청년 파견제도 담당자 한상철입니다. 오늘은 간단히, 여러분이 배치될 기관과 앞으로 맡게 될 역할에 대해 설명드릴 예정입니다.”
그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노인시 지역의 한 기관에 파견될 예정입니다. 구체적인 업무는 현장에서 담당자가 설명드릴 겁니다.”
진한이 곧장 질문을 던졌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안에 조심스러운 날이 서 있었다.
“담당자분은 저희와 함께 이동하지 않나요?”
“아니요. 우리는 이 사업의 기획자일 뿐, 실무는 각 기관에서 맡게 되어 있어요. 파견 이후의 내용은 해당 기관 측에서 전적으로 책임집니다.”
그 말은 무책임의 선언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이번엔 관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그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는 건가요?”
상철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끝을 굳게 다물었다.
“그건 해당 기관의 몫입니다. 우리는 중간 연결만 할 뿐이에요.”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 대신 눈으로 묻고 있었다.
‘이거… 진짜 괜찮은 걸까?’
상철은 그런 우리를 향해 눈길을 주었지만, 곧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우리는 이달의 마지막 팀이었다.
이미 여러 번 반복된 절차 속에 기대는 닳고, 남은 건 의무뿐인 얼굴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어색한 설명, 무심한 태도, 네 번이나 잊은 자료를 가지러 회의실을 들락날락하는 모습.
모든 것이 신뢰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순간, 진한이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몰래 들춰봤다. 하지만 곧 상철이 돌아왔고, 우리는 동시에 얼어붙었다. 진한은 재빨리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 장면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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