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레 하는 쿠크다씨

1. préparation 프레파라시옹

by 쿠크다

préparation

프레파라시옹 또는 프레파라션 이라 부른다.

'준비'라는 뜻. 발레를 시작하기 전 멀뚱하게 거울만 바라볼 수 없는 노릇. 바르게 자세를 가다듬고 '저 준비가 되었어요.'를 몸으로 표현한다. 할 동작에 따라 포즈가 다르므로 그 포즈의 명칭을 부르는 대신 '준비'라고 지시한다. 오늘은 내 발레인생의 프레파라션을 써보려고 한다.


나는 출산을 하고 100일 동안 시험을 준비하는 남편과 떨어져 친정에서 살았다. 주변에 친척들도 많이 살고 식구들이 많아 아기를 보러 놀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쁘다 많이 안아준 덕에 제대로 손을 타 ‘ 바닥에 눕지 않는 아이’ ‘혼자 잠들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100일이 지나 남편 직장이 정해지고 어린아이와 함께 태어나서 처음 와본 친정도 시가도 멀리 떨어진 도시 울산에 살게 되었다. 해맑은 나는 새 출발 하는 느낌에 마냥 설레고 들떴었다.

남편이 출근 한 뒤, 혼자 하는 육아는 혹독했다. 아이가 왜 우는지도 모르겠고 자기 자신이 왜 울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에 이를 때가 많았다. 육아는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가끔 샤워를 하다 수채구멍으로 여길 빠져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집이라는 공간이 아기와 단둘이 섬에 갇힌 것 같아 무서웠다.


몇 개월이 지나 아이가 좀 자라서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지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행복했다. 문화센터를 가는 길에서 계절을 느끼고 아이와 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래 아이 엄마들과 잠깐씩 나누는 대화로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또래 아이 엄마라는 건 모든 경계를 허무는 수단이기도 했다. 한 번은 육아생활을 공유하자며 아이 엄마들이 다가왔다.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을 열었던 것도 잠시, 그들은 사이비종교를 강요하고 그녀의 사생활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낯선 도시와 사람들의 침범은 그녀가 잠시 세상에 내디뎠던 발을 다시 집안으로 들이고 모든 마음의 창문을 닫게 만들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고, 다시 자신만의 육아의 섬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어두워져 가는 아내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무딘 그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적응하면서 마음을 닫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주말 반나절 정도 아내의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나는 그 제안에 많이 망설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다는 기쁨보다는 아이와 떨어져 있다는 불안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 시간 정도는 괜찮겠다 싶어 주말 문화센터 강의 목록을 찾아보았다. 음악, 미술 같은 성인 취미수업은 준비물과 따로 시간을 만들어야 할 것 같고, 새로운 걸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그러다 ‘출산여성을 위한 골반교정 수업’이 눈에 띄었다. 모유수유 중이라 골반도 어깨도 많이 아팠기에 적당하다 생각하여 신청했다. 시간은 토요일 11시. 수업을 듣고 들어가 점심을 먹으면 딱 좋겠다 싶었다.

신청 2주 후 문화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신청인 미달로 폐강이라는 슬픈 소식이었다. 육아를 하는 여성이 토요일 11시에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맥이 빠진 채 바로 단념했다. 판을 깔아줘도 못하는 이 상황이 속상하기도 했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폐강된 수업 강사인데요. 신청하신 분이 한 분 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토요일 10시에 발레 수업이 있어요. 그때 오셔서 수업 들어보실래요? ”

뜬금없이 발레라니. 그 타임에도 사람이 부족한가 보다. 이렇게 따로 전화까지 왔는데 거절을 할 이유도 힘도 없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 부담 갖지 말고 편한 복장으로 오라는 선생님의 말과 함께 수강신청이 완료되어 버린 듯했다. 발레 수업을 들으러 간다는 말에 남편은 “발레? 내가 아는 그 발레??”하며 신기해했다.


그렇게 다가온 첫 수업날, 나는 온 세상의 쭈뼛거림을 몸에 장착하고 문화센터 교실로 들어갔다. 발레복을 입을 몇몇 수강생이 매트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고, 난 어쩔 줄 몰라하며 한편에 돌돌 말려있는 매트를 교실 구석으로 끌어와 깔고 앉았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동작을 따라 하다 앞에 마주한 거대한 거울 속 내 모습이 너무 어색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누웠다.

털썩하고 누운 순간, 공간이 낯설어 귀에 들리지 않던 음악이 들렸다. 익숙한 멜로디의 피아노 건반소리. 잔잔하면서 적당히 리듬감이 느껴지는 맑은 소리. 온몸에 스며들었던 긴장감이 풀리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멜로디가 나에게 마음을 놓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악을 들으며 누워있었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홍 스커트를 두른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쿠크다씨죠? 오셨네요. 오늘은 처음이니 무리하지 마시고 다른 분들 하시는 거 따라 하시면 돼요. 중간중간 자세 잡아줄게요.”


그렇게 나의 첫 발레수업이 시작되었다.

매트 위에 앉아 머리 어깨 골반 스트레칭을 한 뒤 교실 벽면에 붙어있는 바를 잡고 음악에 맞춰 따라 했다. 지금 뭐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혼자 따라가지 못해 부들부들 떨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동작을 보고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하고 호기롭게 따라 하다 몸 어디선가 뚜둑 소리도 나고 짧은 신음소리도 났다. 내가 얼마나 허약해졌는지 온몸으로 실감했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아이를 안고 업으며 살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지만 위로해 주던 따뜻한 음악과 함께하니 그저 좋았다. 약 한 시간 정도의 발레 수업이 끝났다.

수업 마치고 할 만했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네. 다음 주에 또 올게요.”라고 짧게 답했다. 그 짧은 대답과 달리 집에 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했다. 난장판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남편과 아이도 간식 챙겨 먹고 나름의 시간을 잘 보냈다. 사실 아이랑 아빠랑 같이 있는데 불안해할 일이 뭐가 있나. 남편에게 이런 시간을 만들어줘서 고마워하며 수업 때 느꼈던 자유와 행복을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아기엄마, 아내, 그리고 며느리에게 토요일 10시는 마냥 자유로운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해맑게 그 시간만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보냈다. 주말에 시가에 찾아가 문안인사도 드려야 했고, ( 양가에 공평하게 행동하자 남편과 약속했다.) 지난주에 시가에 갔으니 다음 주는 친정을 가야 했다. 그렇게 2주 수업을 가지 못하면 그다음 주엔 남편의 당직이 걸려있었다. 토요일 10시부터 11시. 짧아 보이는 시간이 내겐 쥐어짜야 나오는 시간이라는 걸 몰랐다. 짧게 맛본 그 한 시간의 자유를 갈망했고 시간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남편도 미안해했다. 육아하는 일상에서도 수업 때 들었던 그 멜로디가 맴돌고, 삐걱거리며 따라 하던 시간들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놀이터에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그네에 앉았다. 정신 차려보니 슬쩍 움직이던 내 발은 세게 구르고 있고 그네를 바이킹처럼 타고 있었다. 자유가 별거 있나. 그냥 이렇게 시원한 바람맞으며 그네 타는 것도 자유라고 여겼다. 그 이후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어질 때 아이를 재우고 사람 없는 놀이터에 나가 그네 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