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이 쓰고 싶어요
처음 가는 재판에서 가장 떨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경위님이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질서 유지를 위해 법정마다 정장 차림의 경위님이 있습니다)
경위님은 열심히 재판 내용을 받아치고 있는 제게 다가와 늘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 기자님이세요?"
그쯤 되면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기자인데요"라고 말해도 아무 소용 없다는걸요. 여기서의 '기자님'은 목에 카드를 걸고 다니는 출입기자만을 의미합니다.
코트워치 명함이나 '취재하고 싶다'는 말, 안쓰러운 표정은 힘이 없습니다.
이런 순간을 몇 번 겪고 나니, 이제는 알아서 노트북을 덮고 노트를 꺼냅니다.
그런데 이는 모든 법원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아직 코트워치 팀이 전국 법원을 다 가본 건 아니지만, 서울만 해도 서울서부·동부·북부지법은 노트북 사용을 막지 않습니다. 남부지법에서는 아직 타이핑할 일이 없었네요.
수원·평택·대전·청주·안동·울산 법원 등도 막지 않습니다.
보통은 그냥 두고요. 첫 재판 때 '기자분들이 있는 것 같으니 노트북 사용을 허가하겠다'라고 미리 말하는 재판부도 가끔 있었습니다.
문제는 서울 서초동입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에서는 출입기자가 아니면 노트북을 쓰지 못하게 합니다. 코트워치 팀은 중앙지법의 1심 재판뿐만 아니라, 고법에서 열리는 2심 재판 취재에도 어려움을 겪는 중입니다.
재판이 모두 끝난 뒤에 한 경위님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경위님은 지켜야 하는 '규정'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대에 속기를 배워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손으로 '부호'를 그리는 수필 속기를요.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코트워치 활동을 통해 바라는 '변화'가 뭔지, 작은 것부터 뽑아내는 회의를 하는데 김주형 기자가 '코트워치가 서초동에서 노트북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을 뽑았습니다.
너무 사적인 욕망일까요?
하지만 저는 '노트북'이 재판을 취재할 권리와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느낍니다. 노트북을 써야 법정에서 오고 간 말을 더 정확하게 워처 여러분께 전할 수 있으니까요.
이제는 수필 속기를 배우는 것 대신, '서초동이 노트북을 허락한' 법조기자단에 대한 취재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법원의 변화를 바라면서요.
시작점은 코트워치 팀이 바라는 변화지만, 변화를 바라는 다른 목소리들이 많을 겁니다. 그 목소리를 하나씩 전해드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바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