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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섭 Mar 10. 2024

응원

 일단 상대방과 대화를 시작하면, 거짓 없이 솔직하게 아는 바를 모두 말하는  예의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표현하는 경우나, 묵비권을 행사함으로써 상대방을 헷갈리게 만드는 상황을 아주 빈번하게 마주쳤다. 사회 초년생일 때만 해도 '왜 저러나?' 싶었지만, 20년에 걸친 사회생활 동안 나도 그들과 비슷한 대화 스킬 셋을 장착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이들의 직설적인 화법(Q 탕후루 먹을래? A 아니)과는 다르게 어른들의 대화(Q 김대리! 탕후루? A 지난주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요)는 빙빙 겉도는 경우가 많다. '수겉핥' 화법이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한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가만히 각해보라. 과연 그럴까? 대화'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라는 감안하면, 겉도는 대화의 귀책사유는 전적으로 답변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그건 교묘한 의도를 가지고 덫을 놓는 질문자와 그가 원하는 답을 회피하려는 답변자의 두뇌게임이 낳은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난 기습질문을 좋아한다. 기습질문의 가장 큰 장점은 대화의 빌드업을 건너뛰기 때문에, 상대방의 솔직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나무 위에 숨어서 풀을 뜯는 먹잇감을 노리는 표범처럼 긴장감 넘치고 대담하다.

  "이제 그만 볼 때도 되지 않았어?" 금요일 저녁 인터넷 쇼핑으로 채소를 고르는 아내에게 날린 질문이다. 아내는 오른손으로 뿔테 안경을 살짝 위로 올리며 나를 쳐다봤다. "뭘 그만 봐?" 나는 '아무리 남편이 쓴 글이라고 할지라도 매일매일 출석체크 하듯이 볼 필요는 없을뿐더러, 그렇게 하는 게 오히려 나에게는 우쭐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인물답게 의도를 숨기며 다시 질문했다. "작년 11월부터 브런치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는데, 왜 계속 보냐고?" 그러자 질문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아내의 답변이 돌아왔다. "뭔가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휴대폰 바꾼 후에 브런치 앱도 안 깔았어." 허를 찔린 나는 급하게 화제를 돌리기 위해 파프리카는 노란색이 더 맛있다고 말했다. 나 정도의 인지능력을 가진 사람을 수도 없이 상대해 본 아내는 태연하게 답변했다. "파프리카는 누구 얼굴처럼 빨갛게 익은 게 더 맛있지" 앞서 기습질문의 장점만을 소개한 걸 사과한다. 지금 이 사례에서 보듯이, 자신보다 월등한 상대에게 기습질문은 통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당해 민망해질 수 있다.

 브런치에는 통계라는 메뉴가 있어서, 날마다 어떤 글이 얼마나 읽혔는지, 유입경로와 키워드는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작년 11월부터 긴 글에 도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짧은 글을 올리는 브런치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 결과, 새롭게 올리는 글이 없다 보니 어느 순간 조회수는 점점 줄어들어서 한자리를 기록하게 되었다.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게 특기인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두 마리 토끼를 쫓을 시간은 없으니, 우선  글에 집중하자. 그리고 조회수가 0이 되면 짧은 글도 가끔 올리자.' 하지만 해가 바뀌고, 겨울에서 봄이 되었는데도 조회수는 0이 되질 않았다. 글을 올리지 않은 초반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몇 개월 동안 추적 관찰한 나는 미지의 독자의 패턴을 발견했다. 그(녀)는 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에 몇 개 또는 열 개 넘게 읽어주었다. 프로 작가의 작품도 아닌 글을 4개월 동안 반복해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국민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푹 빠져있는 아내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겠는가? 이런 생각 끝에 아내에게 기습질문을 던져 확인사살을 시도한 건데, 결국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언젠가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여성 독자의 편지를 언급한 적이 있다. 본인의 작품을 읽고 나자 여성 독자는 깊은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남자친구에게 안기고 싶어졌으며, 여러 가지 제약을 뛰어넘어 남자친구의 기숙사로 찾아가서 꼭 안겼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하루키는 자신의 글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내어 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감정의 변화를 일으켜 행동하게 만든 걸 무척 뿌듯해했다. 하루키와 같은 프로도 이럴진데, 나 같은 아마추어는 말할 것도 없다. 한 명의 독자가 필자에게 선사하는 것은 단순한 조회수 1회가 아니다. 그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응원하기 위해 기꺼이 본인의 시간을 할애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생각해 보면,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만큼 허무한 게 있을까? 심지어 일기라고 할지라도 기록한 이상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긴 시간 동안 꾸준히 내 글을 읽어주신 미지의 독자(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앞으로는 너무 게을러지지 않고 가끔 올릴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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