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이 가라 앉을 때

by 커버넌트 노트

푸쉬익— 딱.


맥주 캔을 따는 소리가 작은 원룸 안에 퍼진다.

아무도 없다.
나만 있다.


"어차피 나는 아무도 아니니까."


혼자 중얼거리며 몇 모금 들이킨다.
맥주는 아직 차갑고,
취기는 생각보다 빨리 올라온다.

이런 기분은 사라지는 걸까.

혼자 생각하다가,
되새기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대신 어제 헤어진 그 애를 조금 떠올린다.

그 아이의 웃음소리라든가,
가르마의 방향이라든가,
나와 눈을 맞추면 슬며시 다른 곳을 보며 미소 짓던 모습 같은 것들.

나는 왜
너를 놓아버린 걸까.

아니,
놓쳐 버린 걸까.

힘을 줘야 할 때는 주지 못하고,
힘을 빼야 할 때는 괜히 힘을 줘버려서
결국 무언가를 망쳐버리는 것 같다.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캔 안에서 거품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조금 전까지 넘칠 것처럼 올라와 있던 것들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잠해진다.

사람의 마음도
이렇게 가라앉을 수 있을까.

나는 잠시 캔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마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거라고.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거품은 이미 사라지고
맥주가 조금 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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