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기 병이 키운 공간 감각
:오모테산도 힐스

원하는 공간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꿈

by 서유윤

0. 건축가가 되기로 한 이유

저에게 건축은 단순히 직업의 선택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만들기 본능’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박스로 트리를 만들던 손끝의 열정은, 자라면서 목재·한지·도자·염색으로 이어졌고, 결국 ‘공간’이라는 더 큰 재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경험했던 3층 구조의 입체적 공간, 벽난로의 따뜻한 빛, 계단을 오르내리며 느꼈던 리듬감은 지금의 공간 감각을 형성한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아파트의 평면적 구조를 마주했을 때,


저는 ‘내가 살고 싶은 공간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건축을 배우며, 그동안 감각적으로 쌓아왔던 만들기의 감정을 언어와 도면으로 구체화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건축은 결국 ‘사람의 삶을 만드는 기술’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그것이 지금의 저를 건축가로 이끌었습니다!



1. 손으로 만드는 사람의 시선


어릴 적부터 필요한 것은 먼저 만들어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박스와 풀, 테이프만으로 9살에 내 키만 한 크리스마스트리를 완성했던 기억은 “원하면 손으로 해결한다”는 감각을 제게 새겼습니다.



라탄·직조·바느질·한지·볏짚·도예·천연염색을 거치며 생활 용품을 직접 채웠고, 캐나다 타운하우스에서의 3층 생활은 ‘입체적 동선’과 ‘수직적 여유’를 몸으로 익히게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평면형 아파트의 획일성을 마주하자, 욕구는 물건에서 ‘공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결국 “내가 살 집을 내가 짓겠다”로 진화했고, 그 꿈은 건축가라는 진로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그런 시선으로 본 도쿄의 한 장소에 대한 개인적 관찰이며, 100% 사실 확인된 보고서가 아니라 참고용 감상임을 먼저 밝힙니다.



2. 안도 다다오를 읽는 법


안도 다다오는 흔히 노출콘크리트의 대가로 불립니다. 하지만 핵심은 재료 선택보다 ‘감각의 전환’에 있습니다. 콘크리트는 본질적으로 밀도와 덩어리성이 강해 두껍고 무거운 인상을 남깁니다.


안도는 이 고정관념을 빛과 절개로 흔듭니다.


벽을 칼로 종이를 베듯 가늘고 명확하게 가르며, 그 틈으로 최솟값의 빛을 들입니다. 물리적 두께는 그대로인데, 시각적·정서적 두께는 줄어듭니다. ‘빛의 교회’가 대표적입니다.


십자 형태의 개구부로 흘러드는 절제된 광량은 공간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경건함의 밀도를 높입니다. 매끈하게 다듬은 콘크리트 표면은 빛의 날을 또렷하게 받아들여 경사와 깊이를 선명히 드러냅니다.


재료는 여전히 콘크리트지만, 몸이 받아들이는 무게는 놀랍도록 가볍습니다. 이 ‘가볍게 만들기’는 재료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재료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태도를 끌어내는 방식입니다.


3. 오모테산도 힐스: 도시 맥락을 설계하는 램프, 높이, 입면



오모테산도 힐스는 “도쿄의 샹젤리제”라 불리는 현재의 화려함 뒤로, 미군기지 인근과 노후 아오야마 아파트의 과거를 품은 장소입니다. 철거·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통한 재생’이 선택된 배경에는 안도, 행정, 주민의 긴 협의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세 가지 축으로 읽힙니다.


첫째, 램프가 만드는 ‘거리 같은 실내’. 중앙 아트리움을 둘러 3도 안팎의 완만한 경사로가 약 700m에 걸쳐 나선형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바깥 오모테산도 거리의 완만한 기울기를 실내로 끌어온 장치로, 쇼핑몰을 ‘층’이 아닌 ‘길’로 경험하게 합니다.


지상 1층에서 지하 3층으로, 혹은 지상 3층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시야는 연속적 쇼윈도와 비연속적 사건(계단 폭의 변화, 난간 그림자의 리듬, 점포 입구의 깊이) 사이를 오갑니다.



대지의 삼각형 형상은 동선의 커브와 시선의 분기점을 자연스레 늘려, 평면적 배치를 피하고 ‘돌아보고 싶게 만드는’ 리듬을 만듭니다.


둘째, 높이와 입면의 공공성. 전체 높이를 느티나무 가로수의 수관선(23.3m)을 넘지 않게 잡아 대로변 장변 파사드가 육중하게 떨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부족한 면적은 지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업적 요구와 가로 경관 사이의 긴장을 조정합니다. 옥상과 벽면 녹화는 수직적 경계의 경직을 풀어, 재료의 차갑음을 도시의 녹색 먼지로 코팅하듯 완화합니다.


셋째, 과거를 ‘형태의 잔향’으로 남기기. 아오야마 아파트의 일부는 소실되었지만, 남은 동윤관 입구 등은 원형을 살려 보존했습니다.


새로운 상업 프로그램과 오래된 주거 흔적을 병치시켜, 방문자가 ‘과거—현재—미래’를 한 프레임에서 겹쳐 읽도록 유도합니다.


이 보존은 박제된 기념물이 아니라, 현재의 동선과 시선에 스며드는 ‘작동하는 기억’입니다.


4. 도시 다루기


이번 답사에서 크게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얇게 느끼게 만드는 기술’은 공예의 세계에서 배워온 손놀림과 닿아 있습니다. 표면을 정갈히 다듬고, 불필요한 선을 지우고, 빛이 머무를 가장 작은 개구를 남기는 것. 이 최소의 수단이 최대의 감정을 끌어냅니다.


좋은 건축은 물건처럼 ‘만드는’ 단계를 넘어, 도시처럼 ‘이어주는’ 단계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오모테산도 힐스의 램프는 층과 층, 상점과 상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입니다.


가로수 높이에 순응한 스카이라인은 일상의 시선을 존중하는 약속이며, 잔존한 아파트의 흔적은 장소의 서사를 지우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결국 저는 안도의 작업에서 ‘노출콘크리트’ 자체보다, 그 무거움을 가볍게 읽히게 하려는 집요한 의지를 봅니다.


그리고 힐스에서 ‘화려한 상업시설’보다, 도시의 기억과 보행의 리듬을 설계하려는 공공성의 윤리를 봅니다.


만들기의 기쁨으로 시작한 저의 길은, 재료를 다루는 손끝에서 도시를 다루는 시선으로 조금씩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런 개인적 관찰의 기록입니다. 세부 정보는 현장에서의 체감과 자료를 바탕으로 했으나, 전부를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신합니다.


최소한의 빛, 절제된 선, 이어지는 동선—이 세 가지가 만날 때, 공간은 가장 풍성해진다는 사실입니다.


6. 앞으로 연재할 글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앞으로 브런치스토리에서는 제가 경험하고 해석한 ‘공간’과 ‘건축’의 이야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손으로 시작된 공예의 감각이 어떻게 건축적 사고로 확장되는지,


실제 건축가들의 철학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기록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