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기 본능’이 공간 사고로 확장된 과정
처음 손에 쥔 재료는 종이 상자였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집 안 가득 쌓여 있던 택배 박스들이 제겐 장난감이었고, 그 날것의 재료로 제 키만 한 트리를 만들었습니다. 접고 고정하고, 잘못 붙인 면을 다시 떼어내며 형태를 세우는 과정은 어린 마음 속에서 ‘만들기’라는 언어 없이 배우는 사유의 시작이었고, 세상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다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감각으로 먼저 배웠습니다. 그때 이미 저는 구조와 안정, 비례와 균형을 모르고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후의 시간은 소재를 바꿔가며 그 감각을 확장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라탄을 엮을 때의 장력, 도예 작업에서 흙이 손가락 사이로 미묘하게 흐르며 형태 잡히던 순간, 한지에 스며드는 물의 속도를 기다리며 얻은 인내는 모두 재료와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손이 앞서 세상을 탐색했고, 재료는 고집스러웠으며, 저는 그 고집을 길들이기보다 함께 호흡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물건들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생활 속에 놓이며 일상을 채웠습니다. 만들어진 결과보다 ‘손을 대며 생각이 선명해지는 경험’이 제게 더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재료가 변했습니다. 테이블이나 바구니 대신 공간이 재료가 되었습니다. 박스에서 시작된 ‘만들기 본능’은 벽과 바닥, 높이와 빛을 다루는 사고로 확장되었고, 감각으로 쌓였던 조형 언어는 도면과 스케치를 만나 구조화되었습니다. 건축은 거대한 기술처럼 보였지만, 제게는 여전히 손에서 출발하는 일이었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선을 지우고, 필요한 두께만 남기며,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여백을 만드는 과정. 결국 박스 트리를 세웠던 그 충동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저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공간은 더 커졌지만, 시작은 언제나 한 조각 재료와 한 번의 손짓에서 비롯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