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난 신입 경험만 500번째이다.
공인행정사 신입으로서, it 회사 서비스 운영팀의 신입으로서, 국내 10대 로펌 송무팀의 신입으로서, 그리고 지금 회사의 개발팀 신입으로서, 벌써 4번째의 신입을 겪고 있다.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다양한(?) 상사들을 만나게 됐는데, 여러가지 유형 중 첫번째 유형이다.
1. 난 나중에 나이먹으면 꼭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유형
(1) 행정사 신입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상사에게 보고할 때 종이 한 장 덜렁 들고 가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고 다녔던 정말 20대 초반 신입 나부랭이 그 자체였다. 당시 나의 행정사 동료들은 최소 40대 중반, 보통은 50대, 60대 아저씨들이었고, 퇴직하신 공무원 아저씨, 현직 유명 대학 교수님 아저씨도 계셨다.
그 아저씨들은 항상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셨고, 어쩌면 딸뻘, 손녀뻘 되는 나를 그렇게도 챙겨주셨다.
지금도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같이 업무를 봤던 사무장님이 손님들 또는 본인의 커피 심부름을 종종 시킨 적이 있는데, 사실상 나는 월급을 받지 않는, 오히려 수업료 개념으로 일정 돈을 지불하여 업무를 위한 이론 수업을 들었고, 그 개념을 바탕으로 실무를 접하면서 업무했기 때문에, 사무소의 직원 개념이 아닌 수련생의 지위였다.
한 마디로 그 사무장님은 나한테 그런 지시를 할 권리가 없었다는 뜻이다. 커피 타면서 나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도 딱히 없었다. 어른이 시키니까 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또 이 일 아니더라도 평소 동료에겐 최행정사님, 박행정사님 이라고 칭하면서 나한텐 뫄뫄씨라고 부르시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부당함을 판단할 경험조차 없었기에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대학교수 아저씨는 커피 타러 가는 나를 멈춰세우시곤 사무장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행정사고, 김행정사님도 행정사님인데 왜 나는 안 시키십니까? 이건 명확히 하셔야죠. 만약 커피 심부름 시키실 거면 저한테도 시키세요. "
"그리고, 뫄뫄씨도 정식으로 시험 보고 합격한 나라에서 인정한 행정사고, 수련생 신분으로 수업료도 지불하는데 왜 여기서 월급받는 사무실 여직원처럼 대하십니까? 저한테 하는 것처럼 김행정사님도 같은 대우를 해주세요. "
그 날 이후로 사무장님은 나한테 그런(?) 잡일은 시키지 않으셨다. 그리고 항상 부를 때는 김행정사님!, 김행님! 이라고 부르시더라.
소속 행정사로 근무하길 제안 받았을 당시, 업무가 너무 힘들어 도망치듯 그만두었을 때도 그 교수님이 따라 나오셨다. 거리 구석에서 나에게 이 일의 가능성과 다시 도전해볼 것을 말하시며 한참 설득하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취해야했던 태도, 내가 보여줬던 열정, 느꼈던 마음들, 여러가지를 말해주셨다.
물론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만두기로 한 선택을 후회하진 않지만, 적재적소에 쓴 말을 할 줄 아는 좋은 어른이셨던 교수님과의 연락이 끊긴 건 아쉬운 마음이다.
(2) 송무팀 신입 때의 일이다.
내가 담당하던 변호사님은 50대 여성이자, 십여년동안 국선 변호인을 하셨고, 의뢰인의 사건에 있어 자신의 일마냥 몰입하시며 열정이 넘치시는 밝은 기운의 변호사님이셨다.
그 분과 대화하며 느꼈지만, 정말 열려있는 분이셨다. 확실히 젊은 사람들보다도 말이다.
그 때도 나는 짝꿍과 동거하고 있었고, 당시의 나도 짝꿍과 결혼해야겠다. 앞으로도 평생 같이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직장 동료나 알지 못하는 지인과 대화할 때는 우린 같은 동성이기 때문에 사회통념상(?) 마음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편은 아니다. 보통 우리는 서로 결혼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같이 가족의 개념으로 살고자 하고, 짝꿍씨랑 그렇게 대화하곤 한다. 라고 뚜껑만 비혼 의자매인 것처럼 말한다. [물론 눈치빠른 꼬맹이들은 알아챌 수도,, 이래서 눈치빠른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말을 하면 대개 반응은 꼭 끝에는 갈라서야될 관계인 것처럼 말한다.
➀ 와 진짜 친한가 보다~~ 안 싸워요? 보통 싸우고 따로 살게 되던데!
➁ 그러다가 나중에 서로 따로 집을 구하게 되면 가구들은 어떻게 하려구요?
➂ 그러다가 한 사람이 결혼하게 되면 어떡해요?
➃ 남자친구 데려오기 힘들겠다(?)
왜 끝은 항상 비극인 것처럼 말을 할까. 짝꿍을 본 적도 없으면서. 근데 그 변호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가족의 형태도 그만큼 다양해야되는 게 맞잖아요? 그렇게 다양한데 마음 맞는 사람 만나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어디야. 요즘같은 세상에. 난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게 재밌어. 각자 색깔이 다 다르거든."
"예나 지금이나 가족이 가족같지 않은 경우 많은데, 피 하나 안 섞였지만 가족의 마음으로 같이 지낼 수 있고 잘 맞는다는 건 얼마나 인연이에요. 같은 성별이라 서로 이해하는 폭도 얼마나 넓겠어요. "
그동안 짝꿍과 같이 살 것임을 말했던 지인, 동료들 중에 당시 유일하게 짝꿍을 가족으로 인정해줬고 앞으로의 시간을 공감해준 어른이셨다.
난 항상 스스로 꼰대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변호사님 나이가 되어있을 때, 내가 생각한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무언가를 보고선, 좁은 시야로 생각하고 멋대로 판단해버릴까 걱정된다. 악의가 전혀 없어도 말이다. 변호사님은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진 모든 면에서 열린 어른이셨다. 요즘도 그 사무실, 그 방에 계실 지 모르지만 어쩐지 추운 날이 되면 가끔 그 날 그 사무실이 생각난다.
2. 난 나중에 나이먹으면 진짜 저러진 말아야지 유형
(1) 지금 회사의 일이다. 여기 어른들은 참..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이 든다. 일화가 있어도 서술하기 뻔한 일화들, 이젠 기억 저편에서 사라진 일화들, 모두 좋지 않은 기억 뿐이다. 놀랍게도 여긴 전부 최소 10여년차 이상의 개발자들이 모인 팀이다.
- 개발은 모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합법적인 연차를 사용하려면 최소 2주 전, 합당한 사유를 제출해야 승인해주는 대표(?) [ 회식할 때 소식주의자 칭호 획득 ]
- 개발은 모르지만, 문서 작성은 잘하는 개발자(?)
- 개발은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안 하기로 맘먹은, 먹기와 잠자기, 그리고 미루기는 잘하는 개발자(?)
- 개발은 하지만, 온 몸이 병상인 개발자(?)
- 비혼이지만, 뉴비를 보면 여자인 지, 그녀의 미모는 출중한 지의 사실이 너무나도 궁금한 기획자(?)
라인업 화려하다. 난 이곳에서 벌써 1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제대로 된 어른은 도대체 누구일까. 내가 저런 책임감 없는 어른이자 상사가 되면 어떡하지 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들게 한다.
물론 나도 누군가의 빌런일 수 있다. 다만 누군가 나에게 "제멋대로 mz 신입" 칭호를 준다면, 진짜 제멋대로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제멋대로 일 빵꾸내고, 일정 지연시키고, 미루고, 하는 등. 하하. 아직도 나는 무엇을 잘못했냐 하시면, 그저 신입인 죄 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래도 인신공격은 안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되나? 근데 그건 당연한 걸.
오늘도 달달한 이직을 꿈꾸며, 믿을 건 짝꿍과 나의 능력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려 한다. 나이는 노력없이 먹지만, 적어도 저 어른들보다는 나이 답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