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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n 04. 2024

EP.0 냉면은 '식초 맛 물국수'에 불과하다.

여름 냉면 하수, 겨울 냉면 고수, 가을 냉면 초고수, 봄 냉면은 신 

안녕하세요 먹보들,


근래 들어 글 쓸 원동력도 없고 글이라는 매체 자체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레거시라 생각해

이래저래 여러 미디어를 탐방하는 몇 달을 보냈습니다.

제 보잘것없는 글을 기다려주신 구독자는 없겠지만 (제발 있어주세요.)

마음 한편 어딘가에서 '써야 되는데... 써야 되는데...' 끙끙거리고 있었네요.


요즘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습니다.

쪘다 빠졌다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왜 먹방을 보는지 어느 정도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엔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번 써볼까 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지만 별로 다룬 적이 없더라고요.


1인가구가 40%에 육박한 시대잖아요?

배달음식 많이들 드실 텐데요.

저는 쿠팡이츠를 주로 사용합니다. (쿠팡이츠 광고 주세요.)

'쿠팡이츠를 외면하며' 글로나마 외로움과 배고픔을 대신 소화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 첫 편은 '냉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으레 하는 맛집 추천은 아니지만, 모쪼록 시원한 여름에 흥미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식품 열량

물냉면: 400g(1인분) 당 380~410kcal

비빔냉면: 400g(1인분) 당 400~450kcal



물냉, 비냉, 비물냉 Let's go~



제가 어릴 때는 매콤 달콤한 비냉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엄마를 따라갔던 부산의 어느 냉면 집의 맛이 참 기억에 남네요.

비빔냉면이 주력 메뉴였고 메밀전병인지 만두인지 가물가물하지만 사이드로 곁들여 먹는 곳이었죠.

무한리필 되는 따땃하고 짭조름한 주전자 육수를 먹고 있다 보면

제 앞에는 곱빼기 사이즈의 새빨간 비빔냉면이 딱!


감사합니다 어도비


그 위에는 상추를 대충 잘라 넣어줬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부산엔 그런 집이 많았습니다.

정말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매웠고 그날 하루는 화장실만 들락날락했던 게 떠오르네요.

지역색이 있는 만큼 그게 냉면이었는지 밀면이었는지 또 좀 헷갈리기도 합니다.

하여튼 저는 비벼 먹는 그 '차가운 국수'를 참 좋아했습니다.


서른한 살이 된 지금 저는 압도적인 물냉파 소속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늙으면 입맛이 바뀐다는 어른들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습니다.

제 미뢰는 날이 갈수록 강강강으로 자극적인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킥 한 방에 만족하는 짧은 입이 되어가고 있죠.

물냉면은 그런 면에서 사시사철 생각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티비조선 미안합니다. 근데 진짜 맛있겠다.


온면만큼이나 열렬한 사랑을 받는 냉면.

그중에서도 웃기게 '물냉 VS 비냉' 만큼은 첨예한 토론을 낳습니다.

아마도 '차가움'이라는 대분모 안에 뭉뚱그려지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상하리만큼 냉면에는 적대적이고 강경한 이분법이 작용합니다.


물이 들어가냐 vs 물이 들어가지 않냐

여기서 더 나아가 이제 우리는 이런 모호한 혼종 명제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적당한 물이 추가된 비빔냉면인가?'


자박자박하기도, 적당하기도, 때로는 물냉면만큼 많기도 한 이 수분감 있는 비빔냉면을 여러분은 아시나요?

물 비빔냉면 혹은 비빔 물냉면으로 불릴 텐데요.

이 글에서는 비빔 물냉면, 줄여서 비물냉으로 부르겠습니다.

이게 또, 진짜 맛도리거든요.


하연옥, 작은보물찾기 님 죄송합니다. 좀 쓰겠습니다.


제 아버지의 고향 진주로 떠나봅니다.

만화 <식객>에도 등장한 유명 냉면집 '하연옥'이 있습니다.

진짜 진주냉면을 취급하는 곳인데 이곳에서 저는 처음으로 비물냉을 먹었습니다.

글을 쓰며 검색해 보니 육전을 올리는 이곳의 냉면은 

제 아버지의 진짜 고향인 진주 '사천시' 식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당하다고 하는군요.

어쨌든 저는 이 버전을 먹고 아주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흔히들 그런 의문을 가져봤을 것 같습니다.

'냉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식사가 될 수 있을까?

단연코 이 진주냉면은 하나의 식사로서 완벽합니다.

떠올려보세요.

비빔냉면의 매콤 달콤한 면 맛과 물냉면의 시원하고 알싸한 국물맛, 여기에 육전이 고명으로 올라가 있다...

이거야말로 스테피의 김치찌개를 맞이한 빈지노, 피펜 옆의 조던, 백종원과 조보아 아니겠습니까.


잡소리가 길었네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지 띵해진 머리는 냉면을 먹고 나온 뙤약볕의 여름날 아래 같습니다.

아마도 점심으로 프로틴 음료만 먹고 난 제 위장이 뇌를 방해하나 봅니다.

어쨌든!


이렇듯 삼분할 된 냉면 계에서,

더 나아가 지역별 자존심을 건 냉면 계에서,

물이 얼마나 들어갔고 그걸 비비는지 마는지, 식초를 넣는지 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차가운 면'의 힘은 계절에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부제목으로 달았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냉면은 여름 음식이다? 


  

앞서 어그로성 제목의 부제목에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여름 냉면 하수, 겨울 냉면 고수, 가을 냉면 초고수, 봄 냉면은 신.'

제 개인적인 선호도 순으로 나열한 냉면이 어울리는 계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냉면이 한반도에서 '여름 특수'를 타게 된 것은 기술발전의 영향이 크다는 것.

추론은 간단합니다.


경주 석빙고, 경주시청 감사합니다.


머나먼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얼음은 귀했습니다.

여러 영화에 나온 서빙고, 석빙고에 대한 이야기 아시죠?

그래서 냉면은 본래 겨울 음식이었습니다.

온돌방에 앉아 고르지 못한 열기를 이겨낼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었을까요?

아마도 냉면은 그렇게 출발했을 겁니다.

  

지금은 모든 집에 냉장고가 있죠.

쿠팡이츠 검색 상단에 냉면이 자주 보이는 시기는 분명 여름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봄, 가을, 겨울에도 냉면 수요는 꾸준합니다.

오히려 여름이 제철인 열무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여름 음식이라고 어필한다면 동의하겠지만

단지 '시원함'은 냉면에게 가장 큰 무기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 만개의 레시피 감사합니다. 열무 먹고 싶다. 너무 좋아.


저는 봄 냉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음식에도 힙함이 있다면 봄 냉면은 그 최전방에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구온난화가 뻔~해진 시대, 굳이 따지자면 몇 주 없는 이 봄에 냉면을 드셔보세요.

옷장 안에 무거운 겨울 옷을 처박아두고 나면 땀이 속에서부터 납니다.

그리 춥지도 그리 덥지도 않을 때 이상하게 입맛이 더 없게 됩니다.

저는 이때 냉면을 먹습니다.


근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앞서 말한 진주냉면에 대한 극찬과 다르게,

우리는 냉면을 '하나의 완전한 음식'으로 소비하진 않는 편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냉면을 '무엇'과 함께 드시나요.



냉면은 밥이다



쌀은 한국 음식의 정수입니다.

저는 그게 탄수화물이라는 영양분으로 설명하기에는 어폐가 있다고 봅니다.

새하얀 쌀밥에는 포용력이 있습니다.

많고 적음을 떠나 찬을 올리는 밥상에서 만큼은 커맨드 센터의 영향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죠.


모든 숟가락은 결국 밥으로 통합니다.

우리는 그래서 오늘도 최소 두 끼의 밥을 먹습니다.

그게 김치든 스팸이든 불고기든 콩나물이든 상관없습니다.

맛의 레이어 가장 아래와 위에는 밥이 있습니다.


냉면 또한 그렇습니다.

제가 돼지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느 냉면 맛집을 가도 저는 냉면'만' 먹지는 않습니다.

그 가게들의 세일즈 포인트 또한 냉면에 초점이 맞춰져있진 않습니다.

디즈니플러스 보다 훌륭한 냉면 플러스!

냉면+ ~ 는 지금 국룰세대를 고깝게 보는 저에게도 감히 국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계란


그야말로 냉면과 뗄 수 없는 계란을 먼저 보겠습니다.

반숙을 정말 무지막지하게 사랑하는 저도 냉면에서 만큼은 완숙 삶은 계란을 고수합니다.

지단(축구선수 아님)도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메추리알은 제발 그냥 이 지구상에서 꺼져주십시오.


에라이 퉤 이게 냉면이냐?


만둣국 속 고기의 종류가 바뀐 것처럼 때로는 기술 발전이 전부는 아니라는 듯

역행하는 음식문화의 퇴화에 일조하는 병과 같은 존재입니다.

쓰다 보니 급발진하게 되었는데요.

여러분은 냉면 계란을 어떻게 드시나요?


저는 비교적 계란을 마지막에 먹는 편인 거 같은데 이거 생각해 보니 출제자의 의도가 있군요.

보통 계란을 반쪽 내서 절반만 주는 거 같은데, 이거 아주 간악한 상술입니다.

여태 그게 아까워서 마시멜로 실험처럼 제가 마지막에 몰아서 먹었던 것이었군요.

지금부터 냉면 가게 사장님들은 삶은 달걀 한 알을 그냥 주십시오.

이건 제 지성인으로서의 마지막 경고입니다.


아...


또 급발진하게 되었군요.

하여튼 저는 달걀 한 개 기준이라면 우선 흰자 한입을 먹고 면을 조금 먹겠습니다.

그 이후 식초를 한 바퀴 두른 국물을 마시며 커어- 뻑- 예~! 를 외쳐준 다음

면을 한가득 집어 입 안에 와구와구 넣어 씹으며 노른자 반을 먹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츄르르릅 입맛이 도는군요.


쵸로록 입안을 넘어가는 미끄덩한 식감과 뻑뻑한 계란 노른자라니.

이러니 제가 냉면과 계란을 못 참는 것입니다.

남은 반쪽은 거의 다 먹고 남은 면을 깔짝깔짝 건져먹으며 살살 건드려 쪼개 먹는 게 좋습니다.

인정? 어 인정.


2. 고기


편육을 드시는 분들은 제발 나가 뒤지시고, 돈가스는 제발 소바랑 드십시오.

숯불고기는 전문점에서 드시고 남은 후식으로나 함께 드십시오.

지금부터 딱 정해줍니다.

냉면 플러스 고기 가이드.


무조건 삼겹살과 육전만 취급합니다. (반박 안 받음.)

왜인지는 너무 단순합니다. 

앞서 냉면은 베이스라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맵고 단 음식입니다.

그 맛을 조화롭게 꾸며 줄 수 있는 헤비보이는 간이 비교적 약해야 합니다.


와... 누구세요?


여러분이 환장하는 팔도비빔면부터 뻔하디 뻔한 기성 물냉면까지.

그 넓은 범위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삼겹살과 육전에 불과합니다.

전병은 비냉 한정 일부 허용 가능함을 알려드립니다.


3. 만두


어엌 킹두 나왔다 킹두 ㅋㅋㅋ

납작킹두 찐킹두 왕킹두 전부 인정합니다.


그때 문득!

제 뒤통수를 세게 때리는 한 손길이 나타납니다.

야! 냉면 중의 냉면, 평양냉면은 왜 빼냐?



대중인식이 만든 그릇된 맛(으로 추정되는), 평양냉면



큰 저항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양냉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냉면 러버임에는 틀림없지만 평냉만큼은 알못인데요.

이거 약간 힙스터 음식이라 더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아는 평양냉면의 맛은 지금 제가 쓰는 것처럼 텍스트로만 받은 인상입니다.


으엑! 이거 그냥 물에 국수 말아먹는 거랑 뭐가 다름?

VS.

평양냉면의 진짜 맛은 먹다 보면 우러나오는 그 깊은 맛과... (진중, 이하생략)


또 이렇게 보니까 궁금하네...


하여튼 저는 일단 불호로 가정하고 먹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냉면의 맛은 그저 식초와 겨자에 80% 기댔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거든요.

맛만 있으면 냉면의 본질이 가위로 자르지 않고 먹는 것이라고 해도

4등분으로 토막 내버리고 식초 팍! 겨자 팍! 조지는 게 바로 저입니다.


그럼에도 정말 많은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궁금하기도 합니다.

서울에는 정말 유명한 평양냉면 집이 몇 군데 있는데요.

저도 시도해 볼까? 싶다가도 굳이 찾아가서 먹을 만큼 맛있나?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평냉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저를 한 번 설득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일단 저는 그 극악무도한 농심의 '둥지냉면' 보다도 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입맛이 이상한 게 저는 둥지냉면도 정말 좋아합니다...)


사설이 좀 길었는데 제가 우선 깊은 빡침과 저항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평양냉면을 텍스트 자체로 싫어하는 이유는 제가 김심야의 말에 따른 힙스터의 역설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옥류관 짤을 첨부합니다.


어엌


과연 여러분이 먹고 있는 평양냉면은 '진짜'인가요?

평양냉면을 먹는 내 힙한 모습에 취한 것은 아닙니까? (비아냥의 의도는 없습니다.)

과거 인스타에 유행 변화한 골프 -> 테니스 -> 클라이밍 -> 러닝과 같은 그저 그런 유행은 아니었나요?

반박 환영합니다. 





'쿠팡이츠를 외면하며'의 첫 편을 쓰며 제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며,

동시에 중간중간 입맛이 돌아 제가 좋아하는 '인생냉면'에서 냉면을 시킬까 말까 고민을 두어 번 했습니다.


저는 홍어도 잘 먹고 민초는 극호이며 파인애플 피자는 극혐이고 고수는 어느 순간 못 먹게 된

줏대 없는 입맛의 인간입니다.


그냥 오늘 하루 헬스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냉면이 먹고 싶었습니다.

사실 열무를 듬뿍 올린 김치말이 국수가 더 먹고 싶었는데

우리 집 근처에는 그걸 파는 곳이 없습니다.


여자친구에게 다이어트를 호언장담한 지 이틀이 됐는데

확실히 내추럴 본 피그 인생으로 살아온 저에게는 음식 이야기를 쓰는 것 또한 너무나 고통스럽군요.


여러 이유로 쓰게 된 새로운 매거진입니다.

모쪼록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자외선 조심하시고, 건강한 여름 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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