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회사는 없지만 꿈꾸는 일은 있지.
해외취업을 꿈꾸는 디자이너들 혹은 해외 디자인은 국내와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나의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드디어 내 인생이 완벽하게 흘러갈 것만 같은 순간이었지만 왜 이렇게 내 인생은 파도가 치는 것일까?
2017년 병을 얻었다.
앞전에도 썼지만 매우 아픈 병이다. 아플 때는 고통이 산통과 비슷한데 멈추는 방법이 없다. 죽을병은 아니지만 산통과 같은 고통이 몇 달이 계속되면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병의 증상으로는 하혈이 있는데 하혈이 계속되면 무섭기 시작한다. 이 병은 낫는 약이 없다.
병원에서 일주일 정도 치료를 받았다.
그때 느낀 감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데 평소에 나 자신이 나한테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가 그때 서야 아주 큰소리로 내가 나한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참지 마. NO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엔 No라고 말하라고.
후회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다 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이건 느낀 점이 아니라 내가 나한테 또렷하게 말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그래. 병원에 나가면 이 두 가지는 꼭 지키며 살아야지.
자가면역 질환이라 면역력을 낮추는 약을 먹었다. 세상의 모든 염증과 병을 달고 살기 시작한다. 처음 2년 동안은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받아들이는 것도 2년이 걸렸다. 공황장애도 있다.
나는 현재 관해기에 접어들어서 라이프와 내 삶의 밸런스를 잘 조율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부분은 약물치료로 좋은 경과가 있는 케이스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려고 네이버 블로그 글도 쓰고 있다.
다시 지금 일하는 직장 이야기를 하자면 모든 게 완벽할 거 같은 나의 직장생활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4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회사였는데 두 명의 보스 중 한 명이 완벽주의가 심하고 사람을 컨트롤하려는 게 문제였다. 나의 책상은 그 컨트롤하려는 보스 책상 딱 옆에 붙어서 모니터를 보스가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위치로 만들어 놨다. 그러다 보니 마이크로 매니징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디자인이 자신의 마음에 100% 들지 않으면 클라이언트한테 디자인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터치업을 항상 본인이 다 해야지만 내 보낸다. 일에 완벽을 기하는 것과 결과물을 좋게 내보내는 것은 내가 본받을 점이다. 그렇지만 가끔 그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다가 그가 원하는 걸 찾아내고는'니 다지인 너무 Ugly 해' 혹은 '네가 시니어 디자이너가 맞아?' 혹은 '내가 이 돈 주고 이렇게 일하라고 당신을 고용한 게 아니야!'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일한 지 3주부터 이런 막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너무 놀라고 내가 무능한 거 같아서 울면서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지만 몇 달을 같이 일하게 되니까 이것은 나의 무능함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마이크로 매니징과 막말의 하모니가 엄청난 직장상사였고 그들이 못하는 부분을 내가 잘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또 매우 흡족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간극이 너무나도 심했고 전 디자이너가 4개월도 못 채우고 그만둔 이유를 너무 잘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사의 막말을 더 심해져갔고 나와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도 그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나라면 5분이면 일하는 것을 둘이 일해서 이틀 걸린다니 말이 돼?'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어느 날 우리는 무엇이 잘못된 거냐며 상사에게 물었다. 우리가 잘못한 거면 프로세스를 고쳐서 더 잘해보고 싶고 어떤 것이 나은 것인지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그러자 상사는 돈 이야기를 하며 '내가 이 돈 주고 이렇게 일하라고 너네를 고용한 게 아니야' 라면서 쌓인 이야기를 다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들어도
이 이야기는 말이 안 되는 거 같았다.
이 이야기를 다 하고 씩씩거리던 상사는 '그럼 다음주 월요일에 다시 이야기하자.' 하고 미팅을 마쳤다.(금요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날 저녁 나는 조용히 명상을 시작했다.
나의 첫 번째 회사.
구조조종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회사에서 사람을 쫓아내는 여러 방법이 있었는데 나를 구매팀으로 발령해놓고 스스로 나가게 만들어 놓았다. 나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는데 버티면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나는 디자이너다.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참아' '버텨'라는 말을 주변에서 왜 이리도 했는지.
그 와중에 나랑 친한 직장동료는 충격적인 인사이동 다음날 그냥 안 나왔다. 회사가 괘씸했겠지. 그렇지만 자존심을 지키면서 NO라고 대답할 수 있는 가장 시원한 복수 같은 거였는데 지금도 나는 왜 그러지 못했나 10년이 지나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나의 두 번째 회사.
팀이 공중분해. 팀이 해체되고 나서 새로 팀을 꾸려서 다시 디자인팀을 만든다는 계획이었는데 이건 정치적인 이유에서 회사가 없어진 거니까 패스.
나의 세 번째 회사.
호주를 갈까 이 회사에서 잘 지내볼까라고 생각하려는 찰나에 회사가 나를 시원하게 호주에 가는 편이 낫겠다고 등을 밀어줘서... 디자이너가 디자인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회사였으니까.
나의 네 번째 회사.
나의 첫 번째 호주 회사. 사장님이 회사를 급하게 정리해서 회사가 없어졌다. 그전부터 월급에 문제가 있었지만 참고 다녀야 했던 회사.
나의 다섯 번째 회사.
3개월 다녔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Full time으로 이직해야만 했던 회사.
나의 여섯 번째 회사.
내 인생 첫 번째 정리해고를 맞이했던 회사. 그전부터 꾹꾹 참고 다녔는데 회사가 먼저 이야기해서...
나의 일곱 번째 회사.
코로나 때문에 어려워서 회사가 문 닫았다.
나의 여덟 번째 회사.
지금 현재.
나는 한국식 주입방식에 철저히 생각이 얽매여 '참고 살아.' '원래 남의 밑에서 밥 벌어먹기 어려워' '버텨'등등 비 인간적인 상황에서도 항상 참으라고 학습을 받았다.
그리고 이 모든 긴 여행이 나한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완벽한 상황이 만들어졌음을 직감했다.
지금 회사를 나가면 이 코로나 시대에 이런 연봉으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명상을 깊게 그리고 내면의 나와 대화할수록 이것이 완벽하게 내가 NO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너무도 명료했다.
월요일이 되고 주간회의를 영상통화(호주는 봉쇄 중이라 자택 근무 중이다)를 할 때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만두는 이유는 두 가지 마이크로 매니징과 직원을 존중하지 않는 말투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노동청 홈페이지를 보니 1주일간 더 일할수 있다고 나와있는데 원한다면 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분명하고 고요한 말투로 나의 의견을 전했다.
상사 둘은 너무 놀래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 나를 힘들게 하던 상사는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며 나에게 내일 다시 통화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업무를 서로 잘 마무리해서 일주일간 더 일하고 그만두었다.
그만둘 때는 나를 힘들게 한 상사에게 '나를 힘들게 한건 사실이지만 너는 나한테 훌륭한 디자이너였다'라고 말을 전했고 그 상사는 '너는 마음 따뜻하고 훌륭한 디자이너였어. 그건 인정할게'라는 말을 남겨줬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이제 좀 마음을 놓고 여유로워지려나 싶었다.
그런데 그만두고 나니 이상하게 내 할 일이 더 또렷이 보였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가 너무나 잘 보였다. 나는 처음에 다시 구직활동을 해야 하나? 아무 생각이 없다가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이제 너의 회사를 차리는 거냐고 축하한다고 모두가 말해주는 것이었다. 너무 이상한 경험이었다.(웃음)
그러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무슨 도와주려고 안달 난 거처럼 너무 많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도 너무 잘 보이고 내가 공부해야 할 분야도 너무 잘 보여서 일단은 그 일을 해보고 있다. 갑자기 내가 1인 기업을 차리게 된것이다.
일을 그만둔지는 2주일 정도 되었지만 이상하게 불안하지가 않다.
그냥 나의 할 일을 매일 하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토록 절절하고 절실하게 원했던 디자이너의 삶까지도 내려놓게 되었다. 지금은 '안되면 말지'라는 마음까지 있다. 뭐 안되면 진짜 변두리로 이사 가서 농부라도 되지 뭐. 삶이 알아서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지 않겠어?
No라고 말하는 그 순간. 나의 세상은 마법같이 변해있었다. 삶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니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없다. 뭐 배고픈 순간이(?) 또 올지언정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까 내 삶을 믿고 나를 내 맡기는 수밖에.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해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이 무모한 호주 디자인 도전기도 해보지 않았으면 절대 알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한국에서 평생 상상만 하다가 죽는날까지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30살로 돌아간다면 아마 똑같은 결정을 했을것이다. 가슴뛰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했음으로 아무런 후회가 없다. 멋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그리고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파도가 치냐고?
나는 파도가 아니라 넓은 바다라 파도가 치는 게 당연한 것이다.
파도는 치다가 다시 잔잔해질 것이다.
나는 이제 다시 시작한다.
내 인생에 새벽이 온것 같다.
오늘 행복하기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 뿐이다.
오늘도 파랑새는 내 어깨에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