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할 줄 아는 게 뭔가?
해외취업을 꿈꾸는 디자이너들 혹은 해외 디자인은 국내와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나의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나의 한국 디자인 생활은 그래픽 디자인만 잘할 줄 알면 밥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호주에 오니까 점점 나의 역할은 넓어져 갔다. 작은 회사에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되니까 이것저것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디지털 디자이너 영역도 섭렵하게 되었다.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점차 확대되면서 대학교 때 배워놨던 애프터 이팩트도 사용하게 되었다. 동영상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T2에서도 나는 디지털 디자이너로 채용이 되었고, 이 에이전씨도 캐주얼 포지션이긴 하지만 모든 일은 디지털로 하는 일이었다. 디지털 광고, 모션 그래픽, 소셜미디어 콘텐츠 등 심지어 로고 디자인도 새로운 트렌드는 다 모바일 기반으로 디자인이 되어있었다. 점점 프린트를 할 일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혼자서 독학을 하기 시작했다.
모션그래픽.. 대학교 때 해보고 기억이 잘 안 나서 혼자 유튜브 보면서 공부도 하고 새로운 툴에 놀라기도 하고(?) 또 에이전씨에 일하다 보니까 홈페이지를 제작할 일이 많아지면서 홈페이지 제작 툴도 배우게 되고 거기에 더 독학도 더 하다 보니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도 내 일이 되었다. 이제 홈페이지, UI 디자인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종종 그래픽 디자인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
내가 최종 라운드에서 떨어진 이야기 두 가지를 하자면
하나는 내가 카피라이팅을 못해서 하나는 내가 중국어를 못해서 ㅎ
이렇게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배우는 것에 대해 그만두면 안 된다.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점점 일이 줄자 나는 불안하기 시작했다. 당장 생계에 문제는 생기는데 록다운 때문에 다른 일조차 구할 수가 없다. 불안함과 싸워야 하지만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냉정하게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봤다. 디지털이 중요해지는 요즘, 나는 HTML 지식이 부족하다. 그리고 새로운 강자로 자리 잡고 있는 소설미디어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매니저가 '이것 해야 해 저것 해야 해'라고 할 때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나 나름의 논리와 왜 이렇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논리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시간들이 지금의 나한텐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생각한다. 배우는 걸 멈추면 안 된다고.
나는 록다운이 시작된 2020년부터 명상과 마음공부에 더 심취해 있었다.
배고픈 시간들이라 아마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내가 되고 싶은 삶,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서 글로 적고 심상화를 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꿈꾸는 직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연봉까지도 구체적으로 적어 심상화를 하게 되었다. 심상화를 매일 하게 되면 믿을 수 없는 일을 믿게 된다. 마치 시크릿이라는 책처럼.
또 한차례 배고픈 시간(?)이 지나가고 나에게 2021년 록다운이 풀려서야 여러 차례 면접 기회가 주어졌다.
그중에 정말 내 직군에 아주 꼭 맞는 회사에서 내가 마음에 든다며 채용을 하겠다고 취업 통보를 했다. 그리고 그 연봉도 내가 원하는 금액에 아주 근접한 금액을 제시했다.
나는 당연히 심상화니까 내가 원하는 금액을 아주 크게 썼었는데 그 금액에 얼추 비슷하게 연봉 제의까지 받으니 사실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상화를 할 때는 되면 그만 안되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을 먹고 심상화를 했지만 내가 앞에서 쓴 6년 반 보다도 훨씬 빠른 방법으로 나에게 돌아올 줄이야... 거기다 모자란 금액은 희한하게 한국에서 일이 다시 돌아오면서 내 희망연봉에 정확하게 일치하게 돈을 받게 되었다.
일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작은 팀으로 구성된 회사는 두 보스가 회사 경영을 잘하고 있어서 그 구조를 이해하고 공부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수동적이고 보수적 인지도 알게 되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했다.
디자인하는 일도 내 능력을 넘어서 더 살을 붙이니 훨훨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프리랜서로 오래 일하면서 피드백받을 곳이 많지 않았는데 정교함과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로 내 디자인을 업그레이드시켜줬다.
15년 차 디자이너로서 사실 멘토 디자이너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고 일을 배우는 것도 쉽지 않다. 내 연차는 거의 자기가 배운 툴로 안주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이 두 보스가 아이디어를 적재적소에 주었고 나는 그걸 받아서 내 식으로 소화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디자인을 Another level 이라며 칭찬해 주었다.
지금도 나는 새로운 분야인 SEO를 공부하고 있고 새로운 웹 플랫폼과 소셜미디어도 공부하고 있다.
영어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호주에 온 7년 차가 되어도 '하.. 공부 언제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지만 공부한 만큼 들리고 말한다. 참내 지름길이란 1도 없다니까.
그 와중에 내 인생의 다른 챕터를 연 사건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