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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마타타 Dec 22. 2022

되고 싶지 않은 어른

마음 챙김으로 절주 하기 D136

호주는 크리스마스가 한국의 설날과 추석을 합쳐놓은 것만큼 큰 명절이다. 보통 2주일에서 3주일이나 쉬는데 고향이 먼 사람들은 연차를 붙어 한 달까지 쉬기도 한다. 그만큼 정말로 큰 명절이니 크리스마스 장식은 11월 초부터 시작된다.


외국에 사니 나는 한국 사람도 아니고 외국 사람도 아닌 이방인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다들 크리스마스에 모두 가족들을 보러 가니 몇 주간 텅 빈 시티에 마음 맞는 외노자 친구(?)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그래도 그 헛헛함은 참으로 채우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국 명절을 호주에서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호주에서는 한국명절은 명절로 쳐주진 않으니까. 떡국 한 사발을 챙겨 먹으며 홀로 한복이라도 입고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선샤인 코스트

이런 와중에 남자친구의 가족들로부터 크리스마스 초대를 받았다. 일주일 동안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모두 다 선샤인코스트라는 호주 유명 휴양지로 모이기로 했는데 큰형이 아주 큰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명절이 그렇듯이 모두 화기 해해한 자리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고, 강아지, 고양이들, 앵무새까지 합새해서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남아프리카, 독일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 집안은 여러 가지 전통음식이 있다. 음식을 맛보는 것도 너무나 즐거웠지만 햇살 가득한 선샤인 코스트의 날씨와 과즙 가득한 과일을 맛보는 것도 너무나 행복했다.

사랑스러운 가족들의 모습

하지만 이런 명절에도 언제나 조금의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아마 이 문제는 세계 공통인 듯싶다. 

너무 행복하고 즐거운 나머지 누군가는 술을 더 마시게 된다. 소소한 말싸움이 일어나거나 작은 감정 다툼이 일기도 한다.


나는 처음 뵙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어려워 완전히 긴장을 놓는 건 불가능했지만 다른 가족들은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항상 취하는 멤버들을 정해져 있었고 크고 작은 실수들을 하다가 쿵쾅쿵쾅 소리를 내면서 잠들었다. 


거기서 나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보기 싫은 나의 모습. 다음날 나를 향한 화살과 자괴감을 어떻게 하지? 거기다 기억이 안 난다면 더 최악일 텐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자기 혐오감이 고개를 든다. 내가 정말로 되고 싶지 않은 어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같은 실수를 매해 반복한다고 한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그 실수를 관대해 받아줬기 때문에 고 치치 않았으리라. 


다행히도 나는 136일째 취하지 않고 있다. 술을 마실 때마다 의식한다. 술이 내 뇌를 마비시켜서 도파민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나는 마음 챙김으로 술을 마실 때 나를 관찰한다. 그리고 술이 나의 기분을 장악하기 시작하면 나는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숙취가 없는 136일을 너무도 사랑한다. 다음날이 없어지지 않고 나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감사한다. 자기 효능감이 높아지니 자존감도 올라간다. 더불어 술배가 나오지도 않으니 올여름에는 입고 싶은 드레스를 맘껏 입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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