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전시전을 보고
나에게 살바도르 달리는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10년 근속에 대한 포상으로 3개월 연구 휴직이 주어졌는데 이 시간을 정말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롯이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그 당시 스페인 말라가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던 절친 동료의 집에서 머무르면서 생전 처음 유럽이라는 곳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2017년 9~11월은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고, 내 인생 최고의 낭비이기도 했다."
그때 혼자서 바르셀로나에 가서 1주일을 보냈는데 바르셀로나 시내를 비롯해서 외곽으로 미친 듯이 다니며 그 시간을 즐겼다. 특히 외곽에 있던 피게레스 달리 미술관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코로나 시국에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전을 국내 최초 대규모로 연다고 하는데 안 가볼 수 있겠는가.
이번 전시회는 스페인 피게레스에 위치한 달리 극장 박물관을 중심으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미국 플로리다의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전시회가 구성되었다고 한다.
가보고 싶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미루다가 더 늦으면 전시회를 놓칠 것 같아 지난 주에 전시회를 보러 갔다.
스페인에서 온 독특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러.
예전에 본 그대로인지 아니면 한국적 스타일의 전시회로 바뀌었는지 설레고 궁금했다.
내가 예전에 봤던 전시회와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기대했던 것처럼 전시회는 역시 좋았다.
이번 전시회는 달리의 폭발적인 예술 세계를 1910년대 초부터 1980년대까지 연대기 순으로 소개하고, 다방면으로 천재적인 영감을 주었던 작가의 주변 인물이나 행적을 좇아 전시되었다. 그림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달리만이 가질 수 있는 기발하고 독특한 작업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 달리였다.
그리고 나에게 전해준 강한 메시지는 시각의 환상에 대한 탐구였다. 그 중에서도 스테레오스코피라는 개념이 눈에 띄었다. 나에게는 생소한 개념인데 이것은 오른쪽 눈이 오른쪽 그림을, 왼쪽 눈이 왼쪽 그림을 동시에 인식하면 머릿속에서 두 이미지가 섞이면서 입체적인 장면이 그려지게 된다는 원리다. 스테레오코스피 효과를 볼 수 있는 작품을 사진 찍을 수 없어서 메모만 하고 나왔는데 나중에 기억이 날지 아쉬웠다.
어쨌든 달리는 '스테레오스코피'를 이용해 입체적 착시 효과를 일으키도록 작품을 창조하고, 규율에서 오는 법칙과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환각을 재창조해낼 수 있는 탐구를 끊임없이 했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웠다.
보는 방법에 따라 새로운 것이 창조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요즘 고민하는 글쓰기와도 연결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보는 일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힌트를 주는 듯했다. 똑같은 대상도 다르게 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입체화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실험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달리와 같은 천재적인 기질도 탐구 정신도 없지만 나의 관점을 새롭게 하고 노력하는 것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체계적으로 혼란을 창조해야 더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해진다. 모순적인 모든 것들이 새로운 삶을 창조한다.
이번 전시회는 마치 먼 스페인에서 나를 만나러 찾아온 옛 친구에게 멋진 조언을 들은 것 같은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2017년 스페인 피게레스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