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살메르에서의 일몰

몬순 시즌의 뭄바이

by 코지

뭄바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내게 느껴진 건 이질적인 냄새였다. 경유지였던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출발한 지 대략 12시간가량의 긴 비행시간이 지나고 비 내리는 뭄바이에 도착하여 가지고 간 배낭을 찾아 유리문을 나서자마자 내게 밀려온 건 그 많은 릭샤왈라뿐 아니라 습기 가득한 땀내, 암내가 뒤섞인 유쾌하지 않은 내음으로 뭄바이는 나를 맞이했다.

정말 사람에게 써서는 안 될 표현이지만 마치 파리떼처럼 달려들던 릭샤 왈라라고 불리는 택시 운전기사들. 세계 어디든 이동수단에 대한 흔한 바가지 가격을 부르는 등의 불만은 많지만 특히 그중에서도 인도는 악명이 높았기에 애초부터 공항에서 미리 목적지를 정해 놓고 그에 맞는 요금을 내고 가는 이름 바 프리페이드 택시를 이용하려고 했었고 게다가 혼자 인도로 배낭여행을 가기로 했던 난 출발하기 전 거의 모든 정보를 Lonley Planet라는 여행가이드북을 마치 바이블처럼 의존하여 모든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했었지만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맞닥 뜨린 이 상황은 내 예상 속에 없던 광경이었고 처음부터 혼란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린 채 겨우 택시에 올라탔다. 릭샤왈라들의 검은 피부색 때문인지 더욱 밝게 보이는 그들의 흰자위와 반짝이는 눈빛은 그들에 대해 왠지 모를 순수함을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같이 밀려오는 양가적인 감정에 다시금 내가 인도로 왜 배낭여행을 왔는지에 대해 그것도 난생처음으로 외국으로 가는 여행을 왜 인도로 했는지에 대해 숙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이상한 곳에 내려 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99년 6월 어느 날 정독 도서관이었다. 준비했던 시험 결과를 수십 번은 넘게 전화로 확인했던 것 같다. 2년을 넘게 준비한 1차 시험이었고 그 2년 동안 정독에서 그리고 그녀와 함께 준비했었던 기간이었고 장소였다. 그녀는 시험을 3개월을 앞두고 내게 이별을 통보했고 시험이 급한 나는 그녀를 붙잡지도 그렇다도 헤어짐을 핑계로 공부에 몰입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시험을 맞이했었다. 4학년 여름이었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보내는 나에게는 그녀가 없다는 거 외에는 내일도 변하지 않을 오늘이었다. 늘상 있던 열람실에 나와 담배 하나 물고 도서관내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연못가에서 담배를 피던 나는 문득 참새가 개미를 잡아먹는 모습을 보며 출가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가족과 함께 가곤 했던 길상사로 갔다. 지나가던 스님에게 출가하러 왔다고 전했고 스님은 어느 별채의 방으로 안내했다. 길상사는 예전에는 요정이었던 곳으로 수많은 별채의 정자가 있던 요정에서 정갈한 사찰로 가꿔지던 곳이었다. 안내 받은 나이가 있어 보이는 스님은 별말 없이 차를 내게 건넸고 몇 학년이냐고 물었다. 그리곤 스님네들도 사람사는 곳이라 졸업을 하고 출가를 하는 게 좋을 텐데 그럼에도 정 뜻이 있다면 이곳에 가서 출가를 하라고 주소를 건네주었다. 스님은 소주를 마시듯 차를 마셨고 나 역시 한 번에 차 한잔을 입안에 털어놓고 일주일 뒤 난 송광사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집에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어렸을 적 물이 담긴 대야에 호수를 넣고 그 호수를 입안 가득 힘껏 빨면 마치 펌프를 돌리듯 힘차게 물이 쏟아져 나오는 걸 경험했었습니다. 고여 있는 저는 마치 흐르지 않는 대야의 물처럼 무뎌져 가고 있고 그 속에는 가득 벌레와 이끼들로 무성해져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썩느니 쏟아내고 싶습니다. 썩어가느니 비워버리고 싶습니다. 무너지는 저도 그걸 보시는 가족에게도 더 이상 못할 짓을 하지 않으려 선택했습니다. 출가하러 갑니다. "

비가 쏟아지는 택시에서 큰 배낭을 잃어버릴까 봐 트렁크에도 넣지 않고 좌석 옆에 두어 가며 이리저리 택시 바깥을 보고 있었다. 낯선 풍경의 인도 모습은 야자수 가로길과 많은 오토 릭샤 그리고 소와 자전거와 자동차가 뒤엉켜 흘러가고 있었다. 백미러도 없는 택시는 요리저리 차선을 변경하며 뭄바이 콜라바 거리의 인디아 게이트로 향하고 있었고 거리는 이내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 눈길은 더욱더 흔들리고 있었다.

불안한 상상을 했던 거와 달리 택시는 목적지에 예상했던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인도 여행 내내 팁도 요구하지 않았던 가장 깔끔한 이동이었다.

내리자마자 커다란 배낭을 들쳐 메고 여행가이드책이었던 론리플래닛이 추천한 게스트 하우스를 찾으러 헤매었다. 바로 앞에는 말로만 듣던 아라비아해가 맑지 못한 어두운 바다색으로 펼쳐져 있었고 오랜 석조 건물의 인디아게이트 그리고 타지마할 호텔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야자수의 이질적인 풍경과 함께 샤리를 입은 여인네들을 포함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풍겨오는 짙은 암내들. 거리는 개와 소가 늘어져 있었고 이따금 퍼붓듯 쏟아져 내리는 비는 온갖 그 동물들의 똥과 뒤섞인 쓰레기 오수가 되어 온 도시를 떠돌아다니다 아라비아해로 몰려 가는 것 같았다. 세상에 내가 왜 여기를. 한 달 반이나 뒤의 날짜로 리턴 티켓을 예약한 나는 내가 오늘 하루라도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 하며 게스트 하우스를 찾으러 헤매었다. 오랜 영국풍의 석조 건물들로 이루어진 콜라바 거리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는 건물의 모양새가 다 비슷하여 여러 번 헤맨 끝에야 찾을 수 있었다. 여러 개의 침대가 한방에 놓여 있는 비교적 저렴한 도미토리는 오히려 이미 해외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었고 비싼 1인실만 남아 있었다. 침대 하나만 놓인 좁디좁은 1인실은 다시금 예전의 고시원 방안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돌고 돌아서 여기에 온 난 누구이며 도대체 무엇을 하러 여기에 온 걸까. 다시금 후회가 나를 휘감았다.

어렸을 적 어떤 결정에 앞서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나열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결정하고 나면 간혹 아니 거의 매번 예상할 수도 없는 결과 값이 내 앞에 놓여지고 있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후 난 더 이상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 앞서 예상을 하지 않기로 하였고 결정을 한 후에는 더 이상 되돌아가며 후회를 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었지만 인도에 와서는 첫날부터 거의 모든 선택에 후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배낭을 체인 자물쇠로 단단히 걸어 놓고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저녁을 먹기 위해 나오니 비는 더 심하게 퍼붓고 있는 중이었고 날은 이미 어둑해져 가로등 불빛들조차 내려오는 비에 묻어 온 거리를 흠뻑 적셔가고 있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빗속에도 거리를 지나다니고 있었고 그중에서 그래도 깨끗하고 환해 보이는 인도 음식점으로 들어가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짜파티와 커리 그리고 짜이를 주문하여 인도에서의 첫 한 끼를 경험하였다. 인도를 오기 전부터 고수는 이미 내게는 친숙하였고 감자가 들어간 커리도 제법 먹을만했으며 진한 짜이는 왠지 모를 무언가의 안식을 내게 전해 주었다. 이미 많은 동양 여행객들이 지나간 음식점이었기에 내가 그 달리 튀어 보이는 관광객은 아니었겠지만 내 삭발에 가까운 머리는 그네들에게도 신기해 보였나 보다. 내 삭발한 머리를 보며 가리키며 너는 몽크냐 몽크면 옷차림은 왜 그러냐 너는 어디서 왔냐 카메라를 가지고 왔으니 나를 찍어라 등등 그날 그 음식점에서 동양인은 게다가 삭발한 동양인은 나 혼자였으니 주위의 관심이 쏟아진 건 당연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들과 짧은 영어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바짝 서있던 긴장은 조금씩 누그러들고 있었다. 언제 현상할지 모를 필름 카메라인데도 유독 사진 찍기 좋아하던 그들은 사진을 찍으려 하니 식당의 모든 이들이 달려와 마치 대가족 사진을 찍는 것처럼 모여들었고 찍고 나면 목적을 이룬 듯 알아서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던 그들의 모습에 인종도 다르듯 이해도 나와 다른 이들임을 새삼 다시금 자각하게 만들었다. 인도에서의 첫 식사를 마치고 비가 퍼붓다 말다 하는 거리로 나와 이제는 인적이 드문 길을 걷고 있으니 다시금 긴장이 목 뒤에서 스며들며 숙소인 게스트하우스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오니 공용룸에 몇몇의 외국 배낭여행객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들어서는 나에게 나마스떼라며 가벼운 인사를 내게 건네주었지만 난 쭈삣거리며 하이라고 답하고는 얼른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묶어둔 배낭에 없어진 물건은 없는지 살펴보고 난 후 침대에 여권과 돌아갈 비행기 티켓 그리고 돌아갈 때까지의 경비가 들어 있던 내 배를 꽉 조이고 있던 복대를 풀고 나니 그제 서야 내가 진짜 인도에 와 있는 거구나 싶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자리이타(自利利他), 성불제중(成佛濟衆), 자각각타(自覺覺他), 제생의세(濟生醫世), 자타불이(自他不二), 요익중생(饒益衆生)등등등 나를 불교로 이끌던 이 말들과 침대 위에 풀어진 내 땀에 절은 복대를 보며 나는 머릿속으로만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떠올리고 있었구나 싶었다가 아니 진짜 내가 남과 다르지 않은 것이 복대로구나 싶었다가 그럼 복대는 나도 그들도 다르지 않음의 상징이니 나는 앞으로 인도에서 계속 복대를 통해 내가 남이 다르지 않음을 증명해야겠구나 하다가 그럼 난 왜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인도에 왔을까 아니 예전에 내 어머니가 안에서 물이 새는 깨진 바가지가 밖에서라고 물이 안 새겠느냐며 내게 하신 말씀이 다시금 또렷이 떠올랐다. 흰자위만 또렷한 반짝이는 인도인 그들의 특유의 눈동자는 여전히 내게 어떻게 이렇게 눈빛이 맑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서 더 믿지 못하겠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공존했고 사실 인도인들의 그 맑은 눈빛 때문에 더더욱 그들이 의심스러웠다. 의도를 가지고 나쁜 행동을 하는 이들보다 사실 더 무서운 건 의도 없이 저질러지는 행동이 더 잔인할 수 있다는 걸 아니 의도 없이 행해지는 행동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선과 악으로 나뉠 수 있고 내 위치가 그 행동에 의해 피해받을 때 악행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개별적인 하나의 주장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지면 모든 것이 불분명해짐과 동시에 선과 악이 나뉠 수 없는 존재구나 싶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남은 건 그저 피해받은 존재만 있을 뿐이고. 마치 걸을 때 의도 하지 않았지만 걷는 발자국에 밟혀서 죽는 벌레와 같이 말이다.

복대는 인도 배낭여행 내내 내게는 큰 화두였다. 내가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내가 그들을 차별하는 상징의 존재로써.

다행히 에어컨은 시원했고 가지고 온 침낭에 고단한 몸과 긴장한 마음을 우겨 넣어 인도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