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하루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참 오래도록 갔다. 버스는 제시간에 맞추어 도착했겠지만 나의 시간은 늘어지고 있었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만큼이나 생각은 늘어 갔고 아니 생각이 많아지는 만큼 시간이 늘어지고 있었고 채 서른이 되지 않은 현재의 기억에서부터 어렸을 때의 기억까지 정밀하게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험에 붙었음 뭐가 달라졌을까? 겨우 2년 공부했고 또 겨우 1차였는데, 왜 시험관은 내 답안 수정을 못하게 막았을까? 아니 도대체 난 왜 이 재미도 없는 이 시험에 도전을 했던 것일까? 그냥 내 동기들처럼 토익이나 공부하며 있었음 내 삶은 조금은 덜 피곤했지 않았을까? 어쩌다 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진창에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벌이다 막상 온몸이 진창에 빠져 있다고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난 안도감이 들기도 했었다. 진창에 빠지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더 이상 난 눈치 볼 것 없이 독기를 품고서는 주위에 온갖 패악질을 해댔으며 가벼이 지내던 이들은 물론 내 오랜 벗들에게까지 분노를 쏟아내며 나를 어떻게든 이해하고 위로했던 그들을 기어이 질리게 만들었고 거기에 가족은 불안의 눈으로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그런 시간을 보내며 망가지던 어느 날 난 술에 잔뜩 취한 채로 공중 전화기 앞의 토악질한 가로수를 붙잡고 엉엉 울고 있던 추한 한 젊은 아이가 나 자신임을 깨달았고 어떻게 할지 몰라 진창에서 빠져 허우적거리던, 어느 누구라도 제발 엉망인 나를 구해달라며 울부짖으며 안간힘을 쓰던 그 젊은 애가 문득 안스러졌었다.
순천 터미널에 도착하고 간단히 점심을 챙긴 후 송광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큰 저수지가 깊게 그리고 퍼렇게 잔잔히 일렁이며 나를 비추고 간다. 내렸던 정류장에서부터 송광사까지는 꽤 긴 거리의 소박한 시골길이었다. 구름 없이 날은 맑았고 바람은 시원했다. 나무가 울창해서 그늘이 드리우진 길 옆에는 제법 넓은 개울이 천천히 빛을 물결에 거슬러 이어가고 있었다.
담배는 마지막이겠구나라는 생각에 더욱 도착하기 전까지 틈이 날 때마다 피웠다. 담배 불꽃 끝이 타들어 갈 때마다 빨아들이는 연기는 내 안 깊숙이 더욱더 침착해가며 응축되는 진액이 돼 가는 거 같았고 응축된 진액에서 풍기는 악취는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혹여 내가 죽어 불에 태워진다면 저 진액은 마치 사리처럼 더욱 단단해져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채 악취를 남기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서도 담배를 연신 태웠다.
절에 도착해지나가는 스님에게 출가를 이야기하니 작은방을 안내했다. 면벽을 하고 앉아 명상을 하고 있으라고 했다. 등을 기대지 않고 벽을 바라보며 양반다리로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은 고문이었다. 저녁이 되자 식사를 하게 했고 다시 면벽을 시켰다. 고작 기대지 않고 양반 다리로 벽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것도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으며 면벽을 하면서 명상을 해봐야겠구나 깨달음에 대한 고찰이나 온 생명에 대한 고민을 하겠구나 했는데 몸이 괴로우니 그런 거 다 자시고 할거 없이 잠시 라도 몸이 편해지는 조금의 상태를 찾는데 집중을 하게 되었다. 밤이 되니 내일은 삼천배를 한다고 했다. 가져다준 이불을 깔고 혼자 방에 누워 뜬 눈을 세운 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나를 낮추는 일. 일어섰다가 다시 낮추어 양발과 양손과 이마를 바닥에 닿게 하는 행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닥에 닿아 나를 낮추는 행위. 이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새벽부터 시작한 삼천배는 점심까지 천배를 못 채웠다. 아니 숫자는 어느새부터 가물해졌다. 공양간으로 가는 길은 후들거렸다. 점심은 냉국이었지만 이마저 후들거렸다. 후들거리며 다시 시작했다. 일 배에 후드둑 좌복이라는 불리는 큰 방석에 땀이 쏟아졌다. 이배에도 땀은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삼배, 사배, 오배 .. 절을 하면 할수록 기억은 또렷이 한 지점을 집중하게 하였다. 후회, 용서, 반성, 뉘우침, 한탄, 아쉬움, 자책 등등의 단어들이 절을 할 때마다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어느새 쏟아져 내리는 건 땀뿐만이 아니라 눈물로도 좌복을 젖시고 있었다. 절을 하던 대웅전 한 칸에서 소임을 하며 농담을 하고 있던 사미승들은 내 흐느낌을 보더니 나무관세음보살을 하며 지나갔다. 흐느낌은 통곡으로 이어졌고 한동안 엎드린 채 일어서질 못했다. 그래도 절을 이어 나갔다. 성냥개비로 숫자를 세던 절은 어느새 몇 배를 했는지 알 수 없는 채 이어 나갔고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나에 대한 연민과 다른 이에 대한 사과와 한없는 반성과 후회로 눈물이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후드득 쏟아져 내렸던 단어들과 땀들과 눈물들이 뒤엉켜 대웅전의 바닥을 흥건히 검게 물들일 것만 같았다. 불상의 눈은 처음과 똑같이 가늘게 뜬 실눈으로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은의 이야기
하은은 아버지를 고등학교 때 잃었고 생계를 위해 어머니는 보험 일을 하였다. 다행히 생전에 가입한 보험의 보상이 어느 정도 되어 강남에서의 거주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고 살림만 하던 어머니의 보험일 역시 생전에 부친의 신세를 졌던 이들의 도움으로 강남 한복판에서의 삶을 이어가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재는 한 고등학교 우등생을 쉽게 끌어내릴 수 있었다. 보험일을 시작하는 어머니에 대해 미안함이나 고마움은커녕 창피함과 함께 반발심이 생기었고 그 반발감은 쉽게 자기를 망치는 것으로 복수하려 하였다. 아버지의 부재는 쉽게 무엇으로도 메꿔지질 않았고 어머니의 보험일은 창피했으며 창피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의 부재에 따른 상실감은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도 이어졌다. 우등생의 타이틀에서 한참을 내려왔지만 그럼에도 대학은 그렇게 우등생이 아닌 채로 내려왔음에도 비교적 잘 갈 수 있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하은이 좋아하던 성경구절과 더불어 주말마다 가던 교회도 아버지의 부재 이후 아니 어머니가 보험일을 시작한 이후 감사와 평화와 은혜와 안식의 장소에서 주변의 시선이 거북스러운 곳으로 변하게 되었고 활발히 활동하던 청년회도, 그 충만한 기쁨의 봉사 활동들도 모두 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 지에 대한 염려의 불편함으로 더 이상 가기 싫은 활동으로 변하였다. 그 큰 교회의 청년회 중 유일하게 배우이자 청바지 모델일을 하여 교회의 온 사람들이 좋아하고 부러워하던 남진이가 그런 하은을 묵묵히 지켜보며 가슴 깊은 위로를 건네었지만 하은은 그마저도 자기를 동정해서 그러는 거 같아 거북스러워했고 그래서 남진과 친구 이상으로 사이좋았던 예전과 다르게 멀리 하며 거리를 두려고 하였다.
여자만 있는 대학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시간만 때우는 곳이었지만 그나마 예전보다 나아진 건 나를, 나의 부모와 과거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었기에 고등학생 때보다 그리고 교회에 있을 때보다는 한결 마음은 편했었고 거리를 두었던 남진이가 종종 학교 앞으로 와 하은을 기다리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청바지 모델이었던 남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그런 남진이 여대 앞 정문에서 나를 위해 기다리는 일은 미안함과 동시에 움츠러 들었던 자존감에 위안을 받는 일이기도 하였다. 같이 길을 걷거나 카페를 가서 커피를 마시는 일 역시 남진이와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 보다 남진이와 같이 있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어쩌면 남진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좋은 것 인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다.
공부에 뜻이 있던 건 아니지만 남들처럼 영어학원을 다니던 하은은 같은 조의 남자가 말을 할 때마다 항상 얼굴이 빨개 지는 것을 보곤 했다. 마르고 착해 보이지만 신경이 예민할 거 같은 이 남자는 몇 달을 같은 조에 있었어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말을 나눈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나갈 때는 남들은 눈치 못 차릴 정도로 얼굴을 찡그리며 가는 그 남자의 모습에 왠지 눈이 가곤 했고 가끔 수업 전 교실에서 혼자 샌드위치를 먹다가 내가 들어오자 움찔하던 모습에 왠지 미안한 일을 한 거 같아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같은 조의 사람들과 겨울 종강을 기념하며 억지로 자리를 만들었고 그 얼굴 빨개지는 남자도 참석하여 같이 술을 마셨다. 술 한잔 못할 것 같은 그 남자는 의외로 제법 술을 잘 마셨었다. 그날 그 남자는 하은을 바래다주며 하은의 집 앞 레코드 가게에서 이승환의 CD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하은의 집과 정반대 지역에 살고 있었고 바래다주고 나니 이미 지하철은 끊긴 시간이었기에 그 추운 겨울날 그 남자는 집까지 걸어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아버지 젊을 때 사진과 닮아 있었다.
절을 이제 그만 하라며 삼천배를 안내해 주던 이가 내게 말을 건넸다. 날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삼천배를 아직 다 못했다고 말하는 내게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며 절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했다. 앞으로 원 없이 더 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안내 해준 씻을 수 있는 곳에서 한참을 있고 싶었지만 이내 나와야 했고 환복을 하고 식사를 마친 후 행자라고 불리는 나처럼 스님이 되기 전의 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방으로 이동되었다. 절에 도착해 나를 안내해 주고 면벽을 시키고 삼천 배을 하라던 이도 다 행자였었다. 삭발은 바로 진행되었다.
"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
행자들은 스님이 내 머리를 깎는 동안 참회 진언을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듯 읊었다. 머리를 깎는 동안에도 눈물을 흘리던 나에게 스님은 "깎으면 시원해. 근데 너 머리에 땜빵이 너무 많아 깎을 게 별로 없다"라고 말했고 그동안 진중하게 진언을 낭송하던 행자들은 땜빵이란 단어를 듣자 자기들끼리 킥킥거리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머리를 깎던 스님도 가벼웠고 행자들도 경쾌했다. 나 혼자 만이 거기서 세상의 모든 걱정을 짊어진 양 무거웠다 아니 무거운 척을 하고 있었다.
삭발 후 간단히 씻으며 거울에 비친 민머리의 내 얼굴은 생경했다. 며칠째 못 잤던 잠은 그 시간만큼의 무게가 되어 나를 뭉게 버렸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