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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Feb 07. 2022

합리적 세컨드

클래식 세컨드 핸드 편집샵, 세컨드 스퀘어


대한민국에 의류 세컨드 핸드 시장이 확장하고 있다. 캐주얼, 스트릿, 밀리터리, 빈티지 장르의 옷들을 가성비 있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클래식 패션을 다루는 곳은 보기 힘들다. 품질이 좋은 옷들은 고가의 비스포크나 국내외 몇몇 기성 브랜드에서만 접할 수 있다. 높은 가격대와 좁은 선택지가 장르의 경험을 해친다. 클래식 세컨드 핸드 시장이 활발한 해외와는 다르다. 세컨드 스퀘어는 클래식 세컨드 핸드 편집샵이다. 대한민국의 클래식 패션 마니아들에게 수트, 자켓, 셔츠, 팬츠, 구두, 코트 등을 합리적으로 제공한다. 이곳에는 품질이 뛰어나고 가격은 저렴한 옷들이 가득하다.






타국에서 얻은 영감


세컨드 스퀘어의 장철호 대표. ⓒ다


세컨드 스퀘어의 장철호 대표는 모 대기업 외식 프렌차이즈 브랜드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기업 후광이 근사해 보였을 것이다. 그 뿐이었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임금 구조는 그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었다. 일에는 무의미함만 있을 뿐이었다. 장철호 대표는 그곳에서 자신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고 깨달았다. 근무자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무너진 현실에서, 업에 대한 의지는 싹트지 못했다. 출근과 퇴근이 반복될수록 삶은 허무하게 시들어갔다. 허무함에서 얻을 것은 없었다. 더 후회하기 전에, 장철호 대표는 자신의 마음이 이끌리는 일로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철호 대표는 어려서부터 옷을 좋아했다. 특히 넥타이와 자켓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넥타이와 자켓을 입으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수트 스타일링에 관심이 생겼다. 20대 때에 들어서 장철호 대표는 본격적으로 클래식 패션에 정착했다. 수트, 자켓, 울 팬츠 등 소위 클래식한 옷들은 수려한 입체감을 자랑한다. 그에게 그 옷태는 다른 옷에는 없는 특별함이자 즐거움이었다. 다만 가격대가 높아서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자켓 한 벌에 백 몇 만원, 바지 한 벌에 수십 만원을 호가하니, 단기간에 여러 벌을 갖추는 것은 부담이었다.


2010년 초~중반대에만 해도, 한국에는 클래식 옷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아울렛이 있었지만 할인폭은 크지 않았고 해외 직구는 입어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브랜드의 다양성도 부족했다. 얼마 안 되는 국내외 기성 브랜드가 전부였다. 해외에서 주목받는 이탈리아와 일본의 클래식 브랜드는 접하기 어려웠다. 몇몇의 편집샵에서 수입했으나 여전히 그 종류와 가격이 아쉬웠다. 브랜드의 우월감에 젖어 매장 방문객을 홀대하는 곳도 더러 있었다. 한국은 클래식 패션의 불모지와 다름없었다.


옆 나라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남성 클래식 패션 시장의 요충인 일본에는 클래식 세컨드 핸드 편집샵이 많다. 이들은 세컨드 핸드(Second-Hand), 즉 중고 옷을 전문으로 다룬다. 옷들의 상태를 보면 새제품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어떤 옷은 정가 대비 90%이상 싸다.또한 편집샵들은 고객이 언제든지 방문해서 옷을 입어볼 수 있도록 장려한다. 사지 않는다고 눈치를 주거나 살 것 같은 사람만 차별하여 응대하지 않는다. 지역 별로 지점이 있어서 접근성도 좋다. 장철호 대표는 일본의 클래식 세컨드 핸드 편집샵들을 탐방하면서, 깨끗한 세컨드 핸드 옷을 합리적으로 제공하면 한국에서도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높은 가격대와 부족한 쇼핑 환경으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한국의 클래식 패션 마니아들을 위한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에게 한국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무대였다. 그래서 오랜 준비 끝에, 장철호 대표는 2018년 클래식 세컨드 핸드 편집샵, 세컨드 스퀘어를 설립했다.




좋은 옷, 좋은 가격


세컨드 스퀘어의 철학은 가치 있는 옷을 좋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다. 품질이 뛰어난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재미가 세컨드 핸드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방점은 품질에 있다. 품질이 안 좋은 옷은 세컨드 핸드로 판매하지 않는다. 하자가 있더라도 간단한 수선이나 세탁으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 옷 하나가 남루하면 그 옆에 있는 옷들도 남루해 보이기에 장철호 대표는 세컨드 스퀘어에 들이는 옷들의 상태를 신경 쓴다. 그는 품질을 바탕에 두고 그 위에 가격적 이점을 더한다.


세컨드 스퀘어는 새 옷과 세컨드 핸드 옷을 취급한다. 새 옷은 구매자가 한 번도 입지 않은, 태그가 그대로 달려 있는 옷이다. 세컨드 핸드 옷은 한 번이라도 착용한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옷을 일본에서 가져오거나 고객으로부터 위탁을 받는다. 요즘은 코로나로 위탁 위주로 매장을 운영한다. 위탁을 받을 때는 다음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검수

세컨드 스퀘어는 위탁을 받을 때 옷 상태를 자세히 검수한다. 고객이 위탁 문의를 하면 장철호 대표는 고객에게 위탁할 옷을 사진으로 찍어서 전송해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1차 검수를 마치고 고객이 매장에 방문하면(혹은 택배로 위탁할 옷을 보내면) 현장에서 재검수한다. 옷 안감의 깊숙한 곳이나 주머니 안쪽, 라벨 택, 오염 자국 등 눈으로 놓치기 쉬운 것들까지 장철호 대표는 살핀다. 세컨드 스퀘어의 기준을 충족한 옷은 고객에게 판매되고, 그렇지 못한 옷은 위탁자가 다시 가져가야 한다. 세컨드 핸드에 관한 가장 큰 편견이, ‘낮은 값만큼 품질도 형편없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세컨드 스퀘어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편견이다.


가격

위탁품으로 분류된 옷은 적정 가격으로 매겨진다. 이때 세컨드 스퀘어는 세심한 컨설팅을 위탁자에게 제공한다. 구매자와 위탁자 둘 다 납득할 만한 가격을 설정하기 위해서이다. 가격이 과하게 높으면 세컨드 핸드로서 이점이 없다. 반대로 너무 낮으면 위탁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충분하지 않다. 옷 한 벌에 연관된 관계자가 여럿이다. 그러므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쪽의 이익으로만 치우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균형이 잡히면 구매자와 위탁자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신뢰는 매장에 좋은 옷이 지속해서 들어오고, 좋은 가격으로 나가는 선순환을 일으킨다.


관리

가격 설정이 끝나면 장철호 대표는 위탁품을 단장한다. 에어드레서로 주름과 옷에 벤 냄새를 한 번 더 제거하고, 올이 나간 부분을 바늘로 매만진다. 그리고 실측을 요구하는 고객들을 위하여 줄자를 사용해서 옷의 치수를 측정한다. 구두는 구두크림을 발라 가죽에 윤기를 더한다. 그때 비로소 옷들은 매장에 진열된다. 세컨드 핸드 매장에 가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다. 물건을 살펴보면 깊은 주름과 원단이 뜯긴 흔적도 보인다. 모두 세컨드 핸드의 평판을 나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을 방지하고자 세컨드 핸드의 장철호 대표는 전 상품을 진열 전에 깨끗하게 관리한다.



모든 세컨드 핸드가 마찬가지겠지만, 클래식 세컨드 핸드는 옷의 질이 더욱 중요하다. 클래식 패션의 중축인 수트는 중세 시대 기사들이 입었던 갑옷에서 출발했다는 문헌 기록이 있다. 수트는 근대에 이르러 국정토론회, 사교 모임, 군부대에서 입는 정복으로 계승되었다. 현대에는 직장인들의 근무복과 고전의 멋을 연출하려는 사람들의 취향으로 자리 잡았다.  세대의 수트가 가진 공통점은 ‘진중함이다. 사람들은 공석에서 혹은 중요한 자리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트를 입어왔기 때문이다. 다른 클래식 옷들도 같다. 반듯하고 점잖다. 진중함은 클래식 패션의 본질이다.


클래식 패션의 진중함은 옷이 지저분하거나 해짐이 있을 때 퇴색한다. 유명한 원단으로 지어진 옷이라도 오염 자국이 선명하고, 구김이 많고, 바지 무릎이 닳아 있으면 옷의 가치가 떨어진다. 누가 입어도 멋이 없다. 저렴한 가격이라는 말은 허울로 전락한다. 클래식 옷은 옷에 모난 곳이 없어야 옷의 품격이 살고 입는 이의 아름다움이 산다. 품격과 아름다움이 공존할 때 진중함이 드러난다. 가격은 그 다음이다. 세컨드 스퀘어는 클래식 패션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 이해에 기반하여, 세컨드 스퀘어의 철학은 탄생했다.




고객을 위한 원칙


세컨드 스퀘어는 매장 옷을 소셜 미디어에 매일 업데이트 한다. 하루에 한 번 혹은 그 이상, 매장에 진열한 옷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소재, 사이즈, 스토리, 가격 등을 기입하여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올린다. 세컨드 스퀘어를 설립한 이후 장철호 대표가 늘 지키는 원칙이다. 세컨드 스퀘어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는 3,000개 이상의 피드가 있고, 네이버 블로그에는 2,800개가 넘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 그 수는 계속 증가하는 중이다. 이처럼 매일 새로운 옷이 올라오니, 팬들은 오늘은 무슨 물건이 들어올지 기대한다. 기대에 찬 팬들은 세컨드 스퀘어의 온라인 공간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데일리 업데이트는 어느덧 세컨드 스퀘어의 문화가 되었다. 장철호 대표의 꾸준함과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빚어진 문화이다.


반면에 세컨드 스퀘어 매장에서만 볼 수 있는 옷이 있다. 매장에서 예상치 못한 옷을 발견한 고객들은 숨은 보물을 찾은 듯한 기쁨을 느낀다. 그런 고객들은 매장을 더 자주 방문한다. 방문객이 많아지면 양품이 위탁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물건의 회전율도 높아진다. 위탁품 중에서 일부는 다시 세컨드 스퀘어의 소셜 미디어에서 소개한다. 그 물건을 본 사람들이 세컨드 스퀘어로 온다. 온오프라인은 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온라인 시대임에도 장철호 대표가 오프라인 매장을 신경 쓰는 이유이다.


세컨드 스퀘어 매장에 가면 특별한 옷을 발견하는 것 외에도 장철호 대표의 기분 좋은 응대를 받을 수 있다. 장철호 대표는 고객이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도록 권유한다. 구매하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다. 옷을 조용히 구경하기를 바라는 고객에게는 응대를 최소한으로 한다. 세컨드 핸드 편집샵은 옷의 종류와 브랜드와 사이즈가 다양해서, 많이 입어보아야 자신에게 맞는 옷을 알 수 있다. 많이 입어보려면 쇼핑이 편안해야 한다. 비구매 고객을 향한 무시와 원치 않은 응대와 착의에 대한 인색함은 브랜드의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편안한 분위기의 조성은 세컨드 핸드 편집샵에서 필수라고, 장철호 대표는 말한다.


주 몇 회 브랜드 소식 전하기. 안락한 쇼핑 환경 구축하기. 대부분의 브랜드에서 세우는 원칙이다. 어떤 브랜드는 업력이 더해지면서 이 원칙을 잊곤 한다. 콘텐츠가 간헐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하고, 점원은 구경만 하는 사람에게 눈을 흘긴다. 그들의 원칙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대중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브랜드는 시장에서 서서히 잊히고, 불편한 매장에는 발길이 끊긴다. 팬들과 약속한 원칙이 어긋나면 브랜드 수명은 짧아진다. 초기에는 느린 속도로 짧아지다가 어느 순간 겉잡을 수 없다. 자명한 사실이다. 세컨드 스퀘어의 장철호 대표는 고객에게 약속한 원칙을 지키고 있다.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클래식 옷을 온라인에 매일 올린다. 매장을 찾아오는 고객이 부담 없이 옷을 볼 수 있도록 그는 멀리 자리한다. 그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라이카, 신세계, GS, 포르쉐, 현대차그룹 등 국내외 내노라 하는 기업들이 세컨드 핸드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앤설리반(Frost&Sullivan)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세컨드 핸드 자동차 시장 규모는 39조 원이다. 국내 세컨드 핸드 플랫폼 이용자 수는 2021년 기준 1775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기업들이 이 시장에 들어오려는 의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은 세컨드 핸드에 열광하고 있다. 남이 썼던 것을 꺼려하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들은 가구, 문구, 자동차, 주방도구, 육아 용품, 심지어 명품까지 발품을 팔아서 상태가 준수한 물건을 원하는 가격으로 가져온다.


의류도 주요 품목이다. 캐주얼, 스트릿, 밀리터리, 빈티지 등 다양한 장르의 옷이 세컨드 핸드 시장에서 거래된다. 그러나 클래식 패션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클래식 패션은 가격대가 비싼 편이다. 공급처와 국내에서 유통되는 브랜드도 적다. 결국 수요가 감소하고 시장에 풀리는 물건이 줄어든다. 애초에 세컨드 핸드 시장으로 넘어올 물량이 없다. 과거보다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국내 인프라가 아직 받쳐주지 못한다.


이를 해결하려는 곳이 세컨드 스퀘어이다. 세컨드 스퀘어는 합리적인 클래식 세컨드 핸드를 지향한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치에 합당하다는 뜻이다. 세컨드 핸드의 이치란 무엇인가. 저렴한 가격과 양품 수준의 품질이 병존하는 것이다. 이 조건을 충족할 때, 합리적인 세컨드 핸드라고 칭할 수 있다. 세컨드 스퀘어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클래식 브랜드를 들여온다. 입지 않는 옷을 편하게 위탁할 수 있도록 고객을 격려한다. 매장에 모인 옷이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다. 괜찮은 옷은 다시 한번 관리해서 좋은 가격으로 소개한다. 고객들은 새것 같은 옷을 가성비 있게 구매한다.  


세컨드 스퀘어의 장철호 대표에게는 꿈이 있다. 대한민국 클래식 세컨드 핸드 시장을 키우는 것이다.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클래식 패션을 합리적으로 경험하는 미래를 그는 바란다. 세컨드 스퀘어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장철호 대표의 꿈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머지않아 더 많은 사람이 클래식 패션을 즐기고 나눌 것이다. 클래식 세컨드 핸드는 성숙하게 향유되며, 이 땅에 뿌리내릴 것이다.






장철호 대표가 즐겨 입는 클래식 세컨드 핸드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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