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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Mar 04. 2022

넥타이를 매다

어덜트 패션 브랜드, 매너그램


인간은 진화를 거듭하며 삶에 필요한 물건을 발명해왔다. 그 과정에서 물건을 독점하는 자와 독점하지 못한 자가 생겨났다. 계층이 형성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의 물건도 서열화되었다. 값비싸고 사치스러운 물건, 품질보다 가격적 이점을 갖는 물건, 그리고 이 양쪽을 아우르는 물건이 인간사에 등장한다. 중간에 있는 물건을 우리는 대중적이라고 말한다. 품질이 적당하고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누구나 쓸 수 있다.


어덜트 패션 브랜드 매너그램은 넥타이를 만든다. 오늘날 넥타이는 사치재와 가성비의 성격이 짙다. 중간 영역이 미흡하다. 매너그램은 그 중간에 해당하는 넥타이를 제작한다. 넥타이 형태의 기본을 지키면서 디자인을 살렸다. 멋이 오래 지속하도록 넥타이의 만듦새를 높였다. 모든 넥타이 제작 공정을 직접 관리하여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한다. 매너그램은 특정 계층 사람만 쓸 수 있는 넥타이를 만들지 않는다. 매너그램은 다수가 누릴 수 있는, 대중적인 넥타이를 선보인다.






틈새 전략


매너그램의 용호득 대표. ⓒ다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 힙합이 유행했다. 빠르고 경쾌한 리듬 속에 삶과 사회를 향한   시선이 담겼다. 래퍼들은 크고 헐렁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무대를 누볐다. 그들의 음악과 패션은 자유분방했다. 자유로운 힙합은 얽매임을 거부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많은 젊은이가 힙합을 들었고 힙합을 입었다. 매너그램의 용호득 대표도 그중  사람이었다. 용호득 대표는 힙합 옷을 접하면서 옷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가 패션에 관심을 두게  계기였다.


대학교를 마치고 용호득 대표는 패션 관련 회사에 지원했다. 첫 회사는 면방직을 만드는 곳이었다. 기획실에서 근무하며 계열사 관리, 해외 자회사 실적 관리, 임원 보조 등의 일을 수행했다. 여러 일을 했지만 한 업무에 깊게 관여하는 환경이 아니어서 얻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경직된 조직 문화와 체계가 없는 인사 고과로 조직원들의 성장은 정체되어 있었다. 이에 유감을 느껴 다른 회사로 이직했으나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곳은 과도한 상하 복종을 강요했다. 마지막으로 옮긴 회사에서는 경영권 분쟁이 일었다.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리고 팀을 박해하는 날이 빈번했다. 회사는 그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용호득 대표는 사표를 제출했다.


회사를 나오고 용호득 대표는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를 나오기 몇 해 전, 그는 지인으로부터 온라인 쇼핑몰 사업 투자를 권유받았다. 온라인 쇼핑몰 사업은 오프라인 사업과 체질이 달랐다. 소자본 창업이 가능했고, 대규모 사무실이 필요 없었으며, 도소매 거리가 수월했고, 많은 정보 덕에 사업 아이템 선정이 수월한 편이었다. 용호득 대표는 온라인 사업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서 지인의 쇼핑몰에 투자하면서 업계를 탐구했다. 수학을 할수록 온라인 사업에 흥미를 느꼈다. 그때가 용호득 대표가 직장에서 여러 일을 겪던 시기였다. 회사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회의감과 새로운 일의 관심이 맞물리면서, 그는 조직 밖으로 나와 자신만의 사업을 하기로 했다. 당시 그는 슈즈 메이커, 탐스(TOMS)을 주목하고 있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탐스같이 사회 가치⑴를 나누는 회사를 꾸리고 싶었다. 용호득 대표는 그 목표를 꿈꾸며, 엠쉐어스(MSHARES)라는 회사를 세웠다.


온라인 시장은 의류가 주를 이루었다. 의류 쇼핑몰들은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사입하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옷으로 다른 가치를 창출해야 했다. 자본이 있는 쇼핑몰은 옷을 자체 제작하여 차별화를 꾀했다. 의류 쪽은 경쟁이 치열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용호득 대표는 기존 업체와의 경쟁이 아닌 상생을 택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는 온라인 쇼핑몰에 납품하기 좋은 아이템을 물색했다. 그것이 넥타이였다.

2009~2010년에는 큐빅 방식의 반짝이는 넥타이가 다수였다. 넥타이를 전문으로 다루는 브랜드 역시 전무했다. 용호득 대표는 이러한 시장을 보면서, 스타일과 공신력이 더한 넥타이 브랜드를 만들면 B2B 사업이 용이할 것으로 보았다. 그는 먼저 넥타이의 스타일을 점검했다. 소재에 ·TR·셀비지, 패턴에 체크를 적용해서 넥타이 디자인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그다음에는, '에스티브라운(ST.BROWN)'⑵이라는 브랜드명을 지어서 제품의 신뢰성을 높였다. 브랜드 스토리를 추가하여 브랜드의 감성도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만든 넥타이는 입소문을 탔다.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 그의 넥타이를 찾았다. 납품하는 쇼핑몰이 많아지면서 고객 접점이 늘었다. 이는 브랜드 인지도를 향상시키는데 공헌했다. 에스티브라운 넥타이는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뻗어 나갔다. 전과 다른 넥타이가 등장했다. 그의 넥타이는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서 유영했다. 용호득 대표의 틈새 전략은 유효했다.



넥타이의 이치


용호득 대표는 2011년 에스타브라운을 지금의 매너그램으로 리뉴얼했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사업을 확장했다. 브랜드를 시작하기 앞서, 용호득 대표는 넥타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점검했다. 사람들은 넥타이에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넥타이는 여타 남성 패션 액세서리에 비해 기능이 없다. 꾸밈이 목적인 물건이다. , 넥타이는 사치품이다. 사치품이기에 넥타이는 값비싼 물건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넥타이를 권위적인 화이트칼라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들은 넥타이를 불편한 존재로 인식했다. 용호득 대표는 멋스러운 넥타이도 합리적으로 구할  있고, 넥타이도 캐주얼하게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가지를 해결하면 넥타이의 대중성을 높일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해결책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쉬운 브랜드 , 디자인의 다양화 그리고 자체 생산 방식이 그것이다.



브랜드명

매너그램은 매너와 그램의 합성어다. 매너의 무게(그램)을 높여주는 넥타이를 만든다는 뜻이다. 단어 조합이 직관적이어서 읽거나 들었을 때 이해하기 수월하다. 한때 이탈리아어로 브랜드명을 짓는 것이 패션업계에서 유행했다. 근사했지만 그 뜻을 유추하기가 어려웠다. 힘든 발음법은 덤이었다. 용호득 대표는 고객이 브랜드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쉬운 단어를 사용했다. 힘을 빼고 실속을 추구했다. 매너그램에는 부풀린 기세가 없다.


디자인

매너그램은 넥타이 디자인을 세분화한다. 부담 없이 맬 수 있는 솔리드 넥타이, 특별한 날을 위한 플라워 넥타이, 귀여운 캐릭터 자수를 새긴 원 포인트 넥타이 등 다양하다. 매너그램이 보유한 디자인 패턴 수만 400여 종이 넘으며 제품의 가격대도 다양하다. 종류가 다양한 만큼 다수의 취향을 만족시킨다. 전통적인 넥타이를 선호하는 사람은 물론, 넥타이를 어색해하거나 가볍게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매너그램은 아우른다.


자체 생산

매너그램은 기획, 디자인, 제작, 검, 포장, 발송, CS를 직접 도맡는다. 전 과정에 관여하기에 제품에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매너그램의 고급 넥타이가 그러하다. 영국,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울이나 실크로 만든 브랜드 넥타이는 가격대가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핸드메이드 공정이나 부자재가 더해지면 가격은 배로 뛴다. 명품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넥타이는 더욱 비싸다. 매너그램에서는 수입 원단과 핸드메이드로 제작한 넥타이를 10만 원 미만으로 구매 가능하다. 유통 개선으로 고급 넥타이는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용호득 대표는 넥타이는 대중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성을 지킬 때, 더 많은 사람이 넥타이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호득 대표는 실속 없는 용어, 과도한 가격대, 한정된 라인업, 복잡한 유통에서 탈피하려고 매너그램 초창기 때부터 노력해왔다. 매너그램은 양질의 넥타이를 거품을 제한 가격에 제공한다. 합리성에 기반하여 넥타이의 대중성을 이끌겠다는 용호득 대표의 철학은 한결같이 흘러간다.




다시 처음부터


조직에 '책임과 배려'가 없으면 조직의 발전은 멈춘다. 둔화한 성장세 속에서 구성원들은 서로 부딪히며 갈등을 겪는다. 갈등은 무의미한 감정 소비를 야기한다. 결국, 조직은 와해할 위기에 처한다. 2015년에 매너그램이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 매너그램을 런칭하고 용호득 대표는 국내 넥타이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 감각적인 넥타이, 유연한 응대, 고객과의 꾸준한 소통으로 용호득 대표의 넥타이 브랜드는 가파르게 번성했다. 그러나 조직원들의 결속력은 브랜드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사업 초창기 때, 대부분의 일을 용호득 대표가 했다. 포토샵, 공장 방문, 패키징, 고객 응대, 심지어 사무실 청소도 혼자서 처리했다. 팀원들은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일에만 몰두했다. 그래도 용호득 대표는 팀원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용호득 대표는 2013년 매너그램을 법인으로 전환했는데, 능력 있는 인재는 높은 지분율을 약속하면서까지 영입했다. 정시 퇴근 문화가 정착하지 않은 시절에, 정시 퇴근을 회사 정책으로 삼았다. 연봉 협상은 6개월마다 진행했다. 회사의 비전을 주기적으로 전달하여, 팀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인사조직론의 관점에서 보면, 팀 리더의 지원이 많을수록 팀원들의 애사심도 그에 비례해서 상승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매너그램의 팀원들은 용호득 대표의 지원을 당연시 여겼다. 그들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2015년에는 조직 내 한 이사가 매출의 상당 부분을 바랐다. 대표직까지 탐했다. 용호득 대표가 전부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사는 조직을 떠났다. 이사에게 속한 팀원들도 나갔다. 남은 팀원들마저 각자의 길을 택했다. 더는 팀을 유지할 수 없었다. 매너그램은 동력을 잃었다.


용호득 대표는 서울의 사무실과 매장을 정리하고 고향 인천으로 내려왔다. 지하에 있는 사무실을 얻어서 그간의 일을 돌이켜 보았다. 그곳에서 회사의 역할은 무엇이고, 팀원의 책임은 무엇이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숙고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용호득 대표는 문제의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명확한 인사 철학을 갖추지 않은 채, 필요 이상의 인원을 고용했었다. 포용의 자세가 조직의 화합을 이끌 수 있다고 믿었었다. 인사 철학의 부재는 브랜드와 맞지 않은 사람을 고용하는 문제를, 지나친 팀원 수는 과한 인건비를 발생시키는 문제를, 관용적인 태도는 개인의 사(私)가 회사의 공(公)을 해치는 문제를 낳았다.


용호득 대표는 다시 시작했다. 그는 우선 보유한 제품을 유통하면서 수익 안정화를 도모했다. 무리한 제품 개발은 지양했다. 사무실을 옮길 때면 임대료가 적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매너그램이 정상 궤도에 오를 때까지 불필요한 고정지출을 줄였다. 브랜드가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 용호득 대표는 매너그램의 인재상을 재정의했다. 매너그램은 맡은 바를 근면하게 수행하며,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을 원한다. 일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투철하고 상대를 위하는 사람이 조직에 많으면, 그 조직은 건강해진다.'. 용호득 대표가 지난 어려움을 겪으며 배운 교훈이다.


인천으로 터를 옮긴 지 2년 만에 용호득 대표는 서울로 복귀했다. 과거의 과오를 버리고 새롭게 출발했다. 그는 보완한 인사 철학을 바탕으로 매너그램의 결과 맞는 사람을 모았다. 마음이 통해서 소수의 인원으로도 회사는 효율적으로 운영되었다. 그 결과 매해 매출을 갱신했고 넥타이 제작 기술은 진일보했다. 부러진 뼈는 전보다 단단하게 붙는다. 매너그램은 한층 성숙해졌다.






⑴ 탐스는 'One for One' 정책을 시행했었다. 고객이 신발을 한 켤레 구매하면, 개발도상국 어린이에게 한 켤레를 기부하는 것이었다. 탐스는 이 기부 모델을 2006년부터 2019년까지 유지했다.


⑵ 용호득 대표는 2009년에 에스티브라운이라는 넥타이 브랜드를 설립했다. 매너그램의 전신이다.






그리고


넥타이를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성인만 놓고 봤을 때, 대략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사회 초년생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서, 면접용으로 넥타이를 구매한다. 이때 구매한 넥타이는 장기간 사용하는 편이다. 두 번째는 직장인이다. 드레스 코드가 풀정장인 곳을 다니는 사람들은 매일 넥타이를 맨다. 이들에게 넥타이는 삶의 일부분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주로 남성들에게 해당한다. 세 번째는 클래식 복식이 취미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넥타이를 하나의 유희로써 즐긴다. 넥타이 여러 개를 구비해서 상황에 맞게 코디한다. 마지막 네 번째는 선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주변에는 정장을 자주 입거나 넥타이를 좋아하는 지인들이 있다.


이처럼 넥타이는 여러 집단의 주체자들이 쓰고, 또 필요로 한다. 그만큼 대중적이다. 대중적인 물건은 균형감이 있다. 가격, 디자인, 내구성을 고르게 충족하여 많은 사람을 만족시킨다. 매너그램은 그런 넥타이를 만든다. 넥타이의 기본을 지키되 적당히 멋을 더했다. 용도에 따라 원단, 부자재, 공법의 감도를 조정하여 넥타이의 다양성을 확보했다. 모든 넥타이의 제작 공정을 관리해서 품질을 높였고, 가격은 낮추었다. 매너그램은 넥타이와 고객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누구나 넥타이에 입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수가 있었고, 실패가 있었으며, 좌절이 있었다. 그러나 벼랑 끝과 평지를 오가는 시기에도 용호득 대표와 그의 팀원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희망은 상실을 긍정으로 치환했고, 긍정은 역전의 기세로 이어졌다. 매너그램은 어느덧 10년 이상의 업력을 지닌 브랜드가 되었다. 지금까지 넥타이가 브랜드의 주요 품목이었다. 이제는 넥타이를 넘어 더 다양한 패션 아이템으로도 확장할 계획이다. 매너그램은 합리적인 어덜트 패션 브랜드를 표방한다. 감성과 실용을 취함으로써, 다수가 좋아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철학이다.






열정으로 가득한 매너그램의 작업실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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