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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Mar 30. 2022

옷을 해석하는 방식

패션 편집샵, 소나이


첫 만남


소나이의 임민호 대표. ⓒ다


소나이는 N사의 포털 사이트에서 편집샵을 검색하다가 발견했다. 소나이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구경했는데, 독특한 인상을 받았다. 이곳 주인장은 상품을 그냥 소개하지 않았다. 글과 사진에 스토리를 담았다. 상품이 소나이에 오기까지의 과정, 출장지에서 떠올린 상념 등을 촘촘하게 기록했다. 그래서인지 보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콘텐츠에 푹 빠졌다. 한편의 에피소드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바로 메일을 보냈다. 이틀 후 소나이의 임민호 대표가 친절히 답을 해주었다. 우리는 사전 미팅 날짜를 잡았다.


사전 미팅 당일, 하늘은 봄기운이 스며서 팽팽했다. 구름이 산개했고 공기는 맑았다. 나는 기분 좋게 매장으로 향했다. 소나이는 강남구 봉은사로 114길에 위치한다. 봉은사역 5 출구에서 도보로  10 거리이다. 출구에서 직진하고 우측으로 걸어가다 보면, 커다란 창문이 있는 매장이 보인다. 그곳이 소나이이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멋진 옷들이 보였다. 나는 매장  앞으로 갔다. 그런데 문고리가 독특했다. 일반 문고리가 아닌 신발 모양새를 잡아주는 슈트리인 것이었다. 나는 소나이는 정체성이 짙은 브랜드임을 확신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임민호 대표가 미소로 맞이해주었다. 그는 화이트 셔츠에 옐로 니트,  위에는 올리브 컬러의 코듀로이 자켓을 입고 있었다. 바지는 그레이 팬츠였다.


햇볕이 창문을 통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따스함이 낮게 깔렸다. 우리는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임민호 대표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동시에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했고, 말하는 상대를 진심으로 위하는 것이 보였다. 대화하는 내내, 나의 눈을 마주치면서 공감했다. 의견은 일목요연하게 전달했다. 소나이 콘텐츠의 몰입감과 고객들과의 친근한 소통은, 분명 그의 이런 모습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이날 우리는 서로를 가볍게 소개하고 향후 일정을 논했다. 우리는 2022년 3월 16일 수요일에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나는 그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임민호 대표의 철학


임민호 대표와의 인터뷰를 위해 나는 다시 매장을 방문했다. 가는 길이 전보다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날도 임민호 대표는 친절하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그는 제이프레스 네이비 금장 블레이저와 드레익스 데님진으로 코디했다. 경쾌함에 적절한 격을 녹여낸 룩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는 미리 작성한 스크립트를 꺼냈다. 종이에 문장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그가 이 자리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고 짐작했다. 인터뷰가 잘 될 듯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나는 녹음기 전원을 켜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임민호 대표의 자기소개로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패션을 좋아했던 그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만의 스타일을 정립했다. 그것은 편안하고 멋스러운 옷을 입는 것이다. 편안함과 멋스러움은 인터뷰에서 그가 자주 강조한 핵심 단어였다.  단어들은 패션에서 양립하기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츄리닝은 편하지만 멋내기에 아쉽고, 포멀 웨어는 멋지지만 편하게 입기에 힘들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멋은, 적어도 나들이나 소개팅 혹은 데이트를   입을  있을 정도의 멋을 뜻한다. 나도 옷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말이 이해되었다. 부담 없이 입을  있으면서도 멋까지 겸비한 옷은 생각보다 드물다.


임 _ 옷이 불편하지 않은데 근사하기까지 하면 일상에서 두루두루 입기 정말 좋거든요. 저도 그런 옷을 선호하고요. 그래서 그 스타일에 맞는 브랜드를 찾아서 소나이에 들여와요. 이게 제 철학이에요. 철학을 지키려고 계속 자료를 찾고, 브랜드에 샘플도 요청해보고, 고객들한테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죠. 안목을 높여야 소나이에 맞는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매장은 여러 브랜드로 가득했다.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구두 마리오 베메르부터, 포르투칼의 캐주얼웨어 라파즈, 이탈리아의 온화한 기후를 닮은 넥타이·스카프 브랜드 아큐리, 프랑스 럭셔리 수영복 맥킨까지 있었다. 역사 깊은 제이프레스도 소나이에서 판매하는 중이었다. 이 밖에도 세계 각지의 브랜드가 소나이에 모여 있었다. 각각 정체성이 강한 브랜드이지만 결은 하나였다. 그것들은 임민호 대표의 말대로, 세련미와 실용성을 갖추고 있었다.



사람

인터뷰 중간 이르러서, 나는 그의 고객 소통 방식을 물었다. 그는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려 한다고 말했다. 고객을 바잉에 참여시키고, 문의에 친절하게 답하고, 소나이의 옷을 어떻게 입으면 되는지 보여주고, 새로운 브랜드를 소개할  이야기를 가미하는 것이 본인이 지키려는 원칙이라고 임민호 대표는 대답했다.


임 _ 저는 그렇게 하는 게 재미있어요. 물론 힘들 때도 있죠. 그래도 고객들이 저로 인해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피로가 싹 풀려요. 소나이는 편안하고 멋진 옷을 소개하는 곳이잖아요. 그럼 고객을 대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브랜드 소식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맥락 없이 물건만 광고하는 건 소나이답지 않아요. 편집샵은 고객을 위한 공간이어야 해요. 제가 그분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이유죠.


소나이가 드라마나 영화처럼 여운을 주는 곳이기를 소망한다는 임민호 대표. 현재는 시국으로 인해 온라인에서 이벤트를 열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소나이 매장을 만남의 장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그는 밝혔다.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거나, 브랜드 창립자를 초청해서 강연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임민호 대표는 구상하고 있다.


소나이는 1인 편집샵이다. 임민호 대표 혼자서 모든 일을 담당한다. 언젠가는 소나이도 확장할 텐데, 그때도 소나이의 전부를 처리하기에는 무리일 것으로 추측했다. 나는 채용에 관해서 물었다. 임민호 대표는 빠르면 올해 아니면 내년·내후년쯤 팀원을 충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어떤 팀원을 원하느냐고 묻자,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일 잘하는 사람보다 영감을 통해 동기를 얻고 나아가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나는 공감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팀은 성장하지 않는다. 능력주의에 매몰되면 팀원들 간의 과도한 경쟁으로, 인간적인 왕래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단절된 관계에서는 타인을 향한 날선 비난이 있을 뿐이다. 영감을 나누는 팀은 다르다. 영감은 누군가의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그 동기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원동력이 된다. 아이디어가 쌓일수록 성과의 빈도도 높아진다. 일은 배우면 된다. 능률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팀에게 필요한 사람은 영감을 나눌 만큼 성숙한 사람이다. 임민호 대표도 같은 논리로 그러한 답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임민호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에게 고객과 팀원은 함께하는 존재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소나이의 색이 묻어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눈 후 나는 매장을 나섰다. 푸른 잎이 피어난 나무 위에 봄 새가 앉아 있었다. 새는 작은 몸집을 놀리며 지저귀었다. 햇살이 새의 깃털에 튕겨지면서 빛가루가 생겨났다. 마지막에 꿈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국내 최초의 남성복 백화점'을 만드는 것이라고 임민호 대표는 답했다.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지만, 나는 왠지 그가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하고 멋스러운 옷이 가득하고 고객에게 즐거운 경험을 전하며 영감을 토대로 뛰어난 성과를 내는 백화점이라면, 한국 쇼핑몰의 기준을 바꿀 자격은 있지 않겠는가. 나는 내 나라에서 그런 곳을 본 적이 없다. 머지않은 미래에, 임민호 대표가 그의 소나이를 더 큰 소나이로 키울 것으로 기대한다.



2022년 3월 초봄에 權 쓰다






소나이의 브랜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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