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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May 04. 2022

진짜 멋이란 무엇인가

패션 편집샵, 스페이드 스페이스


2022년 4월 21일 목요일 나는 패션 편집샵 스페이드 스페이스의 오승복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 당시에 내가 인상 깊게 들었던 오승복 대표의 말을 단편으로 엮었다. 그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덧붙여 본다.






스페이드 스페이스의 오승복 대표. ⓒ다


“멋은 무심함에서 나옵니다.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옷을 고르고 신발을 신고 액세서리를 챙기는 거예요. 때 되면 관리해주면서 사용하고요. 계산하지 않는 것이죠. 애지중지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은연 중에 드러난 취향이 진짜 멋이지 않을까요. 그러한 멋이 제가 닿을 수 없는 지점이라 더욱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곱씹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주변을 보면 꾸미지 않아도 근사한 인물들이 있다. 내 지인 중에도 있다. 그는 30대 초반의 남성이다. 글을 좋아하고, 등산을 사랑하며, 명상을 즐겨한다. 한 달에 두 번씩 부모님을 모시고 국내 여행을 다녀온다. 그는 직장에서 꾀를 부리지 않는다. 동료가 도움이 필요하면 적극 나선다. 상대방이 아무리 바보 같은 말을 해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발걸음이 여유롭고 말투는 온화하다.


그는 멋 내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평범하되 튼튼하고 여러 상황에 활용할 수 있는 옷을 산다. 그래서 아침마다 옷을 고르는데 고민이 적다. 아낀 시간으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자기 계발을 한다. 그는 옷에 무엇이 묻어도 조바심 치지 않는다. 행여나 망가지면 고쳐서 다시 입는다. 쉽게 버리는 법이 없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입는 그가 웬만한 패션인보다 멋져 보인다.


패션은 멋부림이다. 자기 만족이든, 남의 관심이 우선이든 멋을 내는 것이 패션이다. 적당한 선을 지키면 건강한 취미가 될 수 있다. 자주 입으면서 그 옷에 추억을 심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다만 꾸밈의 정도가 과할 때가 문제이다. 옷은 어디까지나 나의 본연의 멋을 받쳐주는 물건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망각한다. 그들은 옷이 자신을 대변한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옷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낳는다. 그들은 어디를 앉더라도 편하 못 앉는다. 옷에 얼룩이 보이면 그날의 감정은 바닥으로 향한다.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쇼핑에만 매달려 있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옷이 사람 위에 있다.


겉치장이 자아를 삼키면, 나의 멋이 희석된다. 평생 옷가지에 가려진 채 연출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농후할 것이다. 매일같이 패션 신상품이 쏟아진다. 우리는 거기에 늘 노출되어 있고 늘 유혹당한다. 그러니 주객전도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쪽 세계와 이쪽 세계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우리는 외면을 맹목적으로 좇고 있는가. 아니면 내면에 비중을 두는가. 무심한 멋의 함의가 무엇인지 한 번쯤은 되짚어 봐야할 때이다.




약속


“저는 계약서대로 움직여요. 약속한 날짜에 물품대금과 임대료를 보냅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이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고객님들에게 약속한 납기일도 꼭 지기는 편이고요. 약속을 지키는 것은 모든 것의 기본이죠.”


브랜드에 콜드 메일을 보내면 보통 2~3일 후에 연락이 온다. 아무리 빨라도 하루가 걸린다. 그런데 스페이드 스페이스는 메일을 보낸 지 1시간도 안 되어서 답장이 왔다. 그것도 매너 있게 말이다. 나는 답장을 받자마자 오승복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단어와 문장은 정돈되어 있었다. 신속하되 여유 있는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전 미팅 때 우리는 이야기를 두루 나누었다. 그와 이야기를 할수록 내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대화 도중에 약속이라는 키워드가 나왔다. 약속에 대한 그의 신조는 진지했다. 그는 비즈니스로 맺은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업에서의 마음 고생은 서로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다. 줘야 할 것은 주고, 받아야 할 것은 받으며, 연락이 오면 빠르고 예의 있게 답을 하는 것. 이것이 사업자가 지켜야할 약속이며 덕목'이라고 그는 언급했다. 내가 오승복 대표를 안 지가 한 달도 안 된다. 그 짧은 기간에도 그가 비즈니스맨으로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몸소 느꼈다. 오승복 대표는 그의 신조를 실천하고 있었다.


작가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중에서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초고를 정한 날까지 확인하지 않거나 인터뷰지를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다. 회고 시간 때 약속한 사용법을 이행하지 않기도 했다. 그들의 약속과 나의 약속은 다른 언어인 듯싶었다. 들어보면 저마다의 명분이 있었다. 명분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때 성립하는 개념이다. 명분에 무책임이 더해지면, 명분은 더 이상 명분이 아니다. 본인의 품위를 실추시키는 악수(惡水)일 뿐이다.


스페이드 스페이스는 2021년 5월에 설립된 신생 브랜드이다. 이제 1년 남짓 되었다. 1년은 브랜드의 존패가 결정되는 첫 번째 마의 구간이다. 다행히 스페이드 스페이스는 그 구간을 넘어가고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스페이드 스페이스의 올 4월은 바삐 흘러갔다. 오승복 대표는 기본을 강조한다. 기본이란, 사업가로서 마땅히 명심해야 할 약속이다. 그는 파트너들과 고객들에게 약속한 것을 확실하게 행한다. 오승복 대표가 품은 태도는 그 자신을 또 스페이드 스페이스를, 단단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오늘은 4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다. 내가 사는 집 앞에는 벚꽃 나무와 목련 나무가 있다. 두 나무 모두 한창 만개했었다. 5월로 접어드는 골목에서, 벚꽃이 자취를 감추었다. 목련은 하얗던 시간을 갈색의 시간으로 갈무리 지었다. 아쉬운 마음에 가까이 가서 보았다. 떨어진 꽃잎 뒤로 어느새 푸른 잎사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의 결을 따라서, 잎사귀에 맺힌 빛이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스페이드 스페이스가 떠올랐다.



2022년 4월 權 쓰다






스페이드 스페이스의 브랜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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