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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May 26. 2022

주변에서 영감을 찾다

멋과 실용을 파는 가게, 잡화점 서울


 나는 김용인 대표를 2010년대 초에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옷질에 빠져 있었다. 틈만 나면 패션 잡지를 보았고 쇼핑을 즐겼다. 그것이 나의 낙이었다. 어느 날, '존 스펜서'라는 구두 브랜드를 검색하다가 한 블로그로 흘러 들어갔다. 글을 보았는데 구두 착화감과 활용법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정보 수준이 상당했다. 나는 종일 그의 블로그를 탐방했다. 흰색 셔츠를 입을 때 속 비침을 줄이는 방법, 면바지 다림질하는 방법, 날씨에 어울리는 옷차림, 직장인이 소화하기 좋은 의류 등 그의 기록은 알뜰했다. 고가의 옷만을 호화스러운 미사여구로 감아 도는 여타 블로거와 달랐다. 나는 종종 그의 블로그에 방문해서 유익한 정보를 얻었다. 그렇게 온라인에서만 봤던 김용인 대표를 이번에 만났다.



김용인 대표의 블로그에는 독특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맛집과 프라모델 리뷰이다. 그는 다녀온 음식점과 새로 들인 건담 프라모델에 대해서 기록하고 공유한다. 그 글들은 간헐적이지 않다.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정성의 글이다. 읽으면서 나는 김용인 대표의 치밀한 관조를 엿보았다. 그는 맛집과 프라모델을 구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깊숙이 파고 든다. 그의 시선은 음식 저 너머에, 조립 장난감 저 안에 머문다. 패션 블로거인 그가 이 두 가지에 진심인 것이 나는 신기했다. 나는 그 계기를 물었다.


잡화점 서울의 김용인 대표. ⓒ다



맛집


"저는 맛집에 가면 인테리어와 플레이팅, 주인장의 고객 응대를 유심히 살펴요. 플레이팅이 조화로우면 저는 감탄해요. ‘와, 디테일이 대단하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얼마나 연구를 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바쁜 와중에도 고객의 요구를 융통성 있게 처리하는 주인장을 보면 존경스럽고요. 인테리어도 마찬가지예요. 그 음식점과 결이 맞는 인테리어는 음식 맛을 더 풍부하게 해주죠. 이런 것들에서 깨달은 점을 저의 브랜드에 녹여냅니다. 고객 문의를 보다 친절하게 대하거나, 포장을 열었을 때 넥타이의 매듭과 딤플이 한 눈에 보이게 한다거나 하는 식이에요."


음식점은 직관적이다. 간판을 보고 가게에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메뉴판을 훑고 음식을 시킬지 말지를 결정하고, 고객이 주문하면 주방은 요리를 준비한다. 입력과 결과의 사이가 가까워서 음식점 입장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의 음식점은 손님의 관심을 빠르고 확실하게 사로잡고자 감각적으로 진화했다. 젊은 세대 위주인 곳은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하다. 식기의 색감이며 직원들의 유니폼이며, 음식 디자인 수준이며 공을 들인 티가 난다. 중장년층이 가는 곳은 세월의 흔적이 음식점 여기저기에 배어 있다. 그 흔적은 나름대로의 멋으로 스며 나와서 손님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가게 주인은 그 흔적을 적극 활용한다. 젊은 음식점이든 나이 든 음식점이든, 그들의 감각은 해마다 농익어 간다.


패션 업계도 치열하다. 가격, 응대, 디자인에 의해 소비자는 지갑을 열지 말지를 순식간에 판단한다. 경쟁자는 넘쳐나고 대중의 취향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이런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업주는 남들과 다른 감각을 지녀야 할 것이다. 김용인 대표는 그 감각을 식음료 업계에서 얻는다. 음식과 조명, 주인과 직원, 식기와 수저, 테이블과 메뉴판 속에 숨은 착상을 건져내어 자기 것으로 만든다.




프라모델


"반다이라는 프라모델 회사가 있어요. 프라모델은 부품을 맞춰서 캐릭터를 완성하는 거잖아요. 반다이는 그 완성의 과정까지 설계하더라고요. 부품 재질이나 조립 방법을 개선해서 부품을 결합할 때 느껴지는 손맛과 촉감을 극대화하죠. 게다가 조립 도면도의 편의성이 뛰어나요. 그래서 일본어를 몰라도 90% 이상 똑같이 만들 수 있습니다. 다 만들고 난 후의 도색도 고려해서 색을 칠하기가 편하고요. 저는 여기에서 ‘사용자 경험’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나는 예전에 스마트폰 소가죽 케이스를 장만했었다. 악어 가죽 패턴이었는데 비쌌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택배가 와서 상자를 열었다. 포장지가 헝클어져 있었다. 영수증은 구겨져 있었고 케이스를 담은 플라스틱 상자 표면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케이스를 꺼내어 고무틀에 스마트폰을 끼워 넣으려고 했는데, 고무틀이 너무 질겼다. 서너 번을 시도해서 겨우 넣었다. 어떻게 하면 잘 장착하는지를 알려주는 설명서 따위는 없었다. 가죽 상품은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가죽이 갈라지지 않고 유지된다. 그 택배 상자 안에는 관리 안내서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결국 그 케이스를 반품했다. 반품을 담당하는 사람은 불친절했고 절차는 복잡했다.


사용자 경험은 고객이 브랜드를 접하고, 브랜드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축적한 일련의 경험이다. 이 경험이 좋을수록 브랜드의 고객 평판이 향상된다. 높은 평판은 장기 이익에 영향을 미치기에, 오늘날의 기업들이 그 중요성을 주목하고 있다. 만족스러운 사용자 경험은 사소한 부분에서 결정된다. 반다이는 조립감, 도면 난이도, 도색 편의성에 심혈을 기울여서, 프라모델을 만드는데 걸림돌이 없도록 한다. 작은 요소의 품질이 극에 달해야, 전체가 보장된다는 것을 그들은 일찍 알아차렸다. 내가 산 스마트폰 소가죽 케이스의 제조사와 대조된다.


잡화점 서울은 상품의 사용법과 관리법을 명확히 고지한다. 상품 상자를 열었을 때 화면에서 봤던 느낌을 왜곡 없이 전달하기 위해서, 상품과 포장재 하나하나를 제 위치에 배치한다. 고객들은 상품과 어긋남 없이 연결되어서, 잡화점 서울을 호의적으로 기억하게 된다. 사업의 혜안은 먼 곳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찾을 수 있다는 대목을, 어떤 경영 서적에서 읽은 적이 있다. 김용인 대표는 그의 취미인 프라모델에서 혜안을 발견했다. 그것으로 잡화점 서울을 성장시켰고 지금도 저어가는 중이다.





글을 쓰는 작가는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글감은 찰나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길을 걷다가, 대화를 하다가, 밥을 먹다가 번뜩이는 것이 눈앞에 나타나면 바로 메모장에 쓴다. 글작가 뿐만 아니라 영감이 절실한 창작자라면 누구나 이러할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김용인 대표는 그 정도가 짙은 사람이다. 그는 그의 삶에서 표류하는 모든 것을 궁리한다. 궁리로 손에 쥔 영감을 잡화점 서울에 입힌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본인의 업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2022년 5월에 權 쓰다






잡화점 서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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