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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Jun 30. 2022

반복의 힘

토탈 남성복 편집샵, 클로띵스


12번째 파트너와 일을 마치고 다음 파트너를 찾는 와중이었다. 전에 협업한 파트너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는데 그날따라 그 피드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이 궁금했다. 눌러서 스크롤을 내렸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아이디가 있었는데, 영문으로 a_sartorial_triumph였다. 이 사람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보았다. 프로필과 피드 몇 개를 살피고 나서 그가 편집샵 클로띵스의 손영규 대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편집샵 명을 검색해서 공식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확인했다. a_sartorial_triumph는 손영규 대표의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이었다. 블로그도 개인 블로그가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의 게시물의 총합이 7,600개 이상이었다. 하나씩 읽어보았는데 옷에 관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그의 글에는 어수선한 흔적이 없었다. 나는 그 단순성과 직관성에 놀라움을 느꼈다. 나는 이 사람이 나의 다음 파트너임을 직감했다.



클로띵스의 손영규 대표. ⓒ다


기록


"기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줍니다. 일기장이나 블로그, SNS에 쓴 글을 들출 때마다 과거의 저를 보면서 지금의 저를 되돌아보곤 해요. 꿈꾼 미래를 현재 잘 이루고 있는지 비교하기도 하고요. 그뿐만 아니라 기록은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줘요. 제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시고 옷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신 고객님이 계세요. 선물을 들고 매장에 찾아와 주셨는데 정말 뿌듯했습니다. 이처럼 기록은 나를 성찰하는 수단이자 다른 사람과의 연결고리입니다. 긍정적인 힘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저는 매일 기록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7,600개의 게시물의 명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단순히 브랜드를 홍보하는 목적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그가 남긴 문장과 사진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객관화하고자 기록하는 것이다. 그가 쓴 글에는 억지와 강박감이 없다. 진심과 의지만이 서려 있다. 진심이 묻어나고 의지로 눌러 쓴 글이라서 클로띵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닌지, 나는 생각했다. 요즘에 맥락 없이 떠들어대는 브랜드가 얼마나 많은가. 작위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앞세워서 푼 돈을 버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곳들 말이다. 영혼이 부재한 기록은 불필요한 외침에 불과하다.


한창 글쓰기에 몰두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쓰면서 내가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고심했고, 퇴고하면서 어수선한 맥락을 바로잡았다. 나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위로나 영감을 주길 바랐다. 그렇게 쓴 글들은 독자들이 알아서 찾았다. 반면에 정성이 덜한 글들은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마음이 탁하거나 욕심이 솟으면 문장이 겉돌았다. 문단이 뻔한 표현의 집합체여서 글에 주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글자 수 채우기에만 급급해서 논리는 뒷전이었다. 글은 내 생각과 감정을 받아내지 못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손을 내려놓고 들뜬 정신을 다독였어야 했다. 기록의 이 심오함을 펜을 든 지 반년이 지나고서야, 나는 겨우 가늠하기 시작했다.


기록한다고 해서 기록물이 자생하지는 않는다. 거기에 나의 () 깃들어야 사람들과 연결되는 힘이 생기는 것이고,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이치를 손영규 대표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그의 도전과 실패, 경험, 감정과 꿈을 성의껏 남긴다. 그의 기록물은 스스로의 힘으로 멀리 뻗는다.




하루 일과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은 고되다.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 연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행동 양상이 규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손영규 대표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었다.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은 이상 제 일과는 똑같아요. 아침 7시 30분쯤에 일어나서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다녀와서는 아침 9시~11시 사이에 운동해요. 운동을 마치면 씻고 출근하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해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글을 쓰고, 발행합니다. 틈틈이 고객 응대와 매장 관리도 하고요. 저녁 8시 이후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 식사를 간단히 해결하고 잠을 청합니다. 시즌 준비나 상품 입고 시기에는 새벽까지 해외 브랜드 관계자들과 전화하기도 해요. 시차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10년 가까이 지내고 있어요."


손영규 대표의 하루는 특별하지 않았다. 여느 직장인이나 사업가가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일과를 반복해서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특별했다. 한 뇌 과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규칙적인 생활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매일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있다. 세계적인 문호인데,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아침 9시까지 글 4,000자를 쓴다. 그 뒤로는 달리기와 수영을 하고, 운동이 끝나면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다.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이 일과를 40년 넘게 지키고 있다. 하루키는 군조 신인상, 요미우리 문학상, 안데르센 문학상, 프란츠 카프카상,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상 등 온갖 문학상을 휩쓸었다.


'특정 행동을 반복하면 뇌는 그 행동을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이는 행동으로 인한 결괏값을 발전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다.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성실하게, 그것도 지속해서 수행해서 결괏값이 남들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그들이 성공한 것이다.'라고 뇌과학자는 말했다. 내 주변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지인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은 직업 군인이다. 이 친구는 아무리 바빠도 취침 전 1시간을 독서에 투자한다. 군사 잡지, 인문학, 소설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다. 수많은 활자를 탐독하면서 다른 사람의 지혜와 지식과 경험을 흡수한다. 그러한 배움은 그의 업무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이 친구는 장교이다. 다른 장교들보다 병사 지도의 깊이가 깊고, 작전 계획의 원리가 치밀하다. 그 공로가 기특하여 그는 크고 작은 표창을 받았다.


패션 업계의 치열함은 상상을 넘어선다. 수십에서 수백 개의 패션 브랜드가 하룻저녁에 뜨고 진다. 대기업도 경쟁에서 못 이겨서 산하의 브랜드를 철수할 지경이다. 그 심각성은 가볍지 않다. 이런 곳에서 클로띵스는 살아남았다. 한때 남성복 편집샵이 물결처럼 인 적이 있었다. 대부분이 운영 미숙으로 사라졌다. 클로띵스의 흔들림 없는 운영과 성장은 손영규 대표의 안정적인 기와(起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추측해본다.





장맛비는 온 세상을 물의 손아귀 속으로 밀어 넣어서, 우리를 굼뜨게 만든다. 오늘 아침에 하늘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어둑한 구름 무리가 생기더니 오후에는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땅에 빗물이 스몄고 젖은 땅에서 꿉꿉함이 올라왔다. 이런 날에도 손영규 대표는 글을 쓰면서 하루를 살아갈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두어 시간 전에 올린 글이 있었다. 코디에 관한 글이었다. 그는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세찬 여름 장마도 손영규 대표의 열정은 식히지 못했다.



2022년 6월에 權 쓰다






클로띵스의 브랜드 이야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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