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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Aug 16. 2023

다시, 쓰다


  달력을 보니 입추로 접어들었다. 아침저녁으로 희미한 선선함 덕에 숨통이 트였다. 저 멀리서 불어 온 바람을 맞으니 문득 다시 글을 쓰고 싶어 졌다. 오랜만에 노트북에다가 손가락을 놀려본다.



1. 학원

  학원에서 밥벌이를 한 세월이 근 1년 정도 되었다. 1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 여러 변화가 있었다. 먼저, 비율제 강사가 되었다. 비율제란 학생의 원비를 학원과 내가 특정 비율로 나눠 갖는 것을 의미한다. 시급제로 시작한 일이 비율제로 넘어가면서 버는 액수가 달라졌다. 그에 따른 책임감도 달라졌다. 양날의 검을 쥐고 걷는 셈인데 아직까지는 괜찮다.


  둘째, 고3을 맡게 되었다. 경력이 1년도 안 되는 사람이 고3을 담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입을 코앞에 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민한 축에 속하는 이 집단은 검증된 자가 아니면 다를 수 없다. 그 집단을 내가 감히 맡게 되었다. 학생들이 나를 좋게 봐준 덕이다. 수업은 다행히 순항 중이다. 100일도 남지 않은 수능을 향해 나와 학생들은 부지런히 나아 간다.



2. 학생

  교육업에 종사하다 보니 자연스레 학생들의 심리에 관심이 쏠린다. 이 업종에서 십수 년 이상 몸을 담은 분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내 나름 결론을 내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이다. 예의 바른 학생들이 있다. 그들의 부모도 예의가 바르다. 이해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있다. 어김없이 그들의 부모도 그러하다. 요즘 갑질 학부모로 나라가 어지럽다. 제정신인 부모라면, 아이를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울 것이 아니라 강하게 키울 생각부터 해야 한다. 물렁하고 모든 걸 떠먹여 주는 가정에서 자라서, 작은 것 하나에 정신이 무너지고, 제멋대로 굴고, 거짓말을 일삼고, 수틀리면 뒤집어지는 학생들이 만연하다. 미래의 씨앗이 창창해야 국운이 연명한다. 과연 그러할지, 미천한 나는 알 수 없다.



3. 브랜딩

  본업인 브랜딩은 정리하고 있다. 현재 기존에 같이 일한 대표들이 소개해준 업체하고만 작업한다. 내가 부족한 탓도 있고, 이 일이 지겨워진 것도 있고, 굿 브랜드를 찾는 일도 어렵고, 망해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대표의 모습을 보며 속이 탄 것도 있고,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브랜딩이란 고상한 개념 따위에 미쳐 있을 게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를 미친 듯이 팔아 재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서, 브랜딩 일을 묻어두고 있다.


  그래도 이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모의고사 지문에 광고, 마케팅, 홍보, 기업 문화 등이 소재인 지문이 나오면 몇 문장만 쓱 읽고도 이해한다. 경험은 언젠가 써먹을 일이 있다더니 맞는 말인 듯하다. 세상만사 어떻게 될지 모를 터이다. 다시 굿 브랜드를 찾아 불철주야 뛸 수도 있겠다. 그날을 위해 부지런히 독서할 요량이다.



4. 근본

  세상이 어지럽다. 그래서인지 근본을 찾게 된다. 시계의 경우, 화려한 것보다는 튼튼하고 기능에 충실한 것을 최근에 구매했다. 수백만 원짜리 시계보다 값지게 느껴진다. 영어 책은 성문 종합 영어를 들춰본다. 아무리 봐도 이 책을 능가하는 저서는 몇 없다. 요란한 문장과 얕은 설명으로 가득한 요즘 책들과는 결이 다르다. 이들은 성문을 비난한다. 정작 성문에서 쓰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운동도 똑같다. 나는 전통적인 맨몸 운동을 주로 한다. 푸쉬업, 풀업, 스쿼트, 딥스인데, 여기에 덤벨을 추가하여 데드리프트와 바벨컬까지 수행한다. 루틴은 간단한다. 주 3회, 정확한 자세로 목표 개수를 채우며 종목당 5세트 실시한다. 이 역시 예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은 운동법이다. 복잡한 루틴, 이런저런 운동보다 효율적이며 효과적이다. 번잡한 것들에 매몰되는 순간 운동은 운동이 아니라 노동으로 전락된다.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곧 9월이다. 자연은 붉어질 것이다. 바람은 조금 더 선선하게 불고, 햇빛은 곡식을 위해 강렬하게 탈 것이다. 그 가을 기운을 만끽하면서 인생을 저어가려고 한다. 건강하게 살아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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