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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Apr 07. 2021

톰포드의 패션이 '섹시'한 이유

성적 매력이 느껴지도록


Porno Chic
포르노 시크



포르노 시크: 관능적이고 세련된


세상에는 다양한 패션 스타일이 존재한다.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룩, 고급스러운 클래식 룩, 스포츠와 일상이 결합된 애슬레저룩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한 편의 포르노처럼 야릇한 느낌을 자아내면서 세련미까지 돋보이는 패션을 눈 앞에 마주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외설적이라고 비난할까 아니면 관능적인 매력이 있다고 평가할까. 여기 성(Sex)과 패션(Fashion)을 심도 있게 다루는 디자이너가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톰 포드(Tom Ford)이다.





떡잎부터 달랐다


톰 포드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패션 감각을 지녔다. 겨우 6살이 되는 해에 선물 받은 신발 디자인이 별로라는 이유로 신지 않았고, 외출하기 전에는 거울 앞에서 몇 시간이고 어울리는 옷을 골랐으며, 부모님께는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사달라고 때를 썼다고 한다. 그는 아직 말도 다 트지 않았을 나이에 패션에 대한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부모님이 사주시는 옷을 그냥 입었던 것과 달랐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이유는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 영향이 크다. 당시 두 모녀는 지역 멋쟁이로 유명했다. 어머니는 시크하고 클래식하게, 할머니는 화려하고 맥시멀하게 입었다. 항상 스스로를 가꾸고 옷을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 구성원을 보면서 톰은 '패션'의 역할과 의미를 자연스럽게 배웠다.




건축학도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톰 포드는 대학 진학 시 '건축 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웅장한 건축 내외부를 자신만의 느낌으로 표현하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건축 디자이너의 역량에 따라 건축물이 달라지는 것은 맞지만, 결국 땅, 예산, 원자재, 환경 등에 의해 구현할 수 있는 디자인은 한정적이었다. 이에 회의감을 느낀 그는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패션'으로 진로를 바꿨다.


대학 졸업 후 수많은 패션 기업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포트폴리오가 부족한 탓에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증명되지 않은 비전공자를 디자이너 조수로 써줄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톰은 포기하지 않았다. 평소 존경하는 '캐시 하드윅(Cathy Hardwick)' 디자이너의 사무실에 매일 전화를 걸어서 인턴 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그의 열정에 반한 캐시는 그를 인턴으로 채용했다. 이후 톰 포드는 그녀를 도우며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비록 전공자들보다 늦은 나이에 패션계에 진출했지만 남다른 감각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다. 그가 수습 디자이너에서 한 브랜드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성장하는데 '5년'도 걸리지 않았다.




'성'을 패션에 더하다


1980's Gucci Ads. by Pinterest.


1990년 톰 포드는 세계적인 명품 패션 브랜드 구찌(Gucci)의 여성복 디자이너로 발탁됐다. 1986년 그가 패션 디자이너로 진로를 바꾼 지 4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구찌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브랜드 내부적으론 경영 분쟁이 존재했고, 디자인은 타 브랜드에 비해 경쟁력이 없었다. 과거에 유행했던 미니멀리즘, 곡선, 그리고 브라운 색을 고집했던 구찌에게 대중은 관심 갖지 않았다. 이는 지속적인 매출 하락을 일으켰다. 구찌 매장 직원 조차 "No one would like to want Gucci(어느 누구도 구찌를 원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톰 포드는 이러한 구찌를 '처음부터 끝까지' 바꿨다. 브라운 계열은 무채색 계열로, 부드러운 곡선은 직선으로, 평범한 화보는 '관능적으로', 마케팅은 공격적으로, 광고는 자극적으로 모든 부분을 180도 뒤집었다.


Copyright ⓒ crfashionbook All rights reserved. 1990's Gucci Sexy Ad Campaigns.


Copyright ⓒ crfashionbook All rights reserved. 1990's Gucci Sexy Ad Campagins.


같은 구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마치 타락한 천사를 보는 듯 한 광고 캠페인이 톰의 지휘 하에 전개됐다. 그전까지 패션계에서는 이처럼 관능적느낌의 패션 광고 거의 없었다. 대체로 깔끔하게 옷을 입은 모델들이 적당한 포즈를 취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톰 포드는 구찌가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쟁취해야만 소비자들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Porno Chic Fashion Style'이었다. 인간의 강력한 본능 중 하나인 '성(Sex)'을 자극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광고를 집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매출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톰과 구찌를 맹비난했다. 성적인 요소를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도의적이지 않다며 질타했다. 그러나 그들의 비난과 달리 사람들은 구찌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다들 이성적으론 '성적 본능'을 외면하려 했지만, 도발적인 광고는 사람들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나 자신도 저 모델처럼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은 구찌를 갖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Copyright ⓒ fashionista All rights reserved. YSL Ads by Tom Ford.


톰 포드는 1994년구찌 디자인 전체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CD)로 임명됐다. 1999년 구찌가 입생로랑을 인수한 이후에는 입생로랑의 CD까지 동시에 맡았다. 덕분에 연매출 2억 달러에 불과했던 구찌2004년 연매출 30억 달러, 시가총액 100억 달러 규모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톰 포드의 패션 철학: Porno Chic의 탄생


그렇다면 톰 포드의 패션에 왜 Porno Chic 한 느낌이 묻어나는 걸까. 그 시작은 그의 대학 시절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톰은 뉴욕의 유명한 나이트클럽 '스튜디오 54(Studio 54)'에 빠져있었다. 어둡고 현란한 조명 아래에서 남녀가 뒤엉켜 노는 모습을 보고 그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패션은 섹스다
Fashion is Sex



우리가 옷을 입는 이유는 결국 상대방에게 매력 어필을 하여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함이고, 그 종착역은 '성스러운 섹스'라는 것. 여기서 말하는 매력 어필이란 성적인 느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선 내가 섹시하게 보여야 하는 것이 전제이다. 그래야 상대방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톰 포드는 '패션이야 말로 나의 성적 매력을 관능적으로 표출시킬 수 있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톰 포드는 검은색, 직선, 누드 연출을 적극 활용하며 '패션을 통한 섹스어필'이 무엇인지를 대중에게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들이 톰의 디자인을 보고 '어딘가 모르게 섹시하다', '유혹적이다', '모델을 보니 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섹시해서 매력적이다' 등을 말하는 이유도 저러한 원칙들이 적용되어서 그렇다. 지금이야 Sex Code를 기반으로 한 패션 화보가 많지만 90년대만 해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성은 비즈니스에서 암묵적으로 금단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발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톰 포드 해냈다. 성과 패션을 고급스럽게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톰 포드는 2004년 구찌를 떠나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TOM FORD'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패션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초기에는 화장품과 선글라스로 브랜드를 전개했고, 이후 남성복과 여성복을 차례대로 론칭하며 입지를 다졌다. TOM FORD는 디자이너 톰 포드 그 자체이다. 시원시원한 선들의 조화, 누드 컨셉의 광고, 어둡고 무거운 색상, 모델들의 고혹한 눈빛, 수위 높은 향수 이름 등 모든 곳에 그의 시그니처 무드 'Porno Chic' 고스란히 묻어있다.


Copyright ⓒ fashionmagazine All rights reserved.


톰 포드는 성을 피해야 하는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존재로 여긴다. 남녀가 뜨거운 육체적 사랑을 나누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고 이는 행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생 시절 자주 드나들던 나이크클럽에서 섹스는 '성적 매력을 표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매력은 '패션'이 더한다는 것을 배웠다.


성적 매력을 더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패션은 합리적인 수단일 수 있다. 인종, 성별, 나이, 외모 상관없이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몇 가지 아이템만으로도 나의 섹시함을 전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비가 올 땐 진한 향수를, 기분이 좋을 땐 화려한 재킷을, 우울할 땐 어두운 원피스를 매치하면 그렇지 않은 날 보다 남들의 시선에 미묘한 떨림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노골적인 포르노가 아닌 예술성이 담긴 포르노 같은, '야하다'를 뛰어넘어 '관능적이면서 세련되다'라고 느껴지는 톰 포드만의 스타일. 그에게 패션은 단순히 직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다. 인간의 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그래서 상대방을 내 영역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Porno Chic 한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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