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지오 Jun 03. 2021

이솝, '단순함'을 품다

간결한 시선


단순함의 힘은 위대하다. 사업에서 특히 그러하다. 소통, 기획, 제조, 판매, 등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불필요한 것들에 의해 잠식되지 않는다. 단순한 것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풍부한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것들로 가득하기에 더 빠르고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여기 단순함(Simplicity)의 가치를 향유하는 브랜드가 있다. 1987년 호주 멜버른에서 탄생한 코스메틱 브랜드, ‘이솝(Aesop)’이다. 창립자 ‘데니스 파피티스(Dennis Paphitis)’는 어렸을 때부터 ‘이솝우화’를 좋아했다. 그는 간결한 메시지로 수 세기 동안 사람들에게 교훈을 전하는 우화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이솝 역시 ‘군더더기 없는 철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울림 있는 교훈을 전하는 브랜드가 되길 바랐다.






당신을 위한 한 줄


이솝 매장에 가면 곳곳에 한 줄로 쓰인 문장을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명언이나 이솝 우화의 격언이 벽면, 매장 외벽, 포장지 등에 새겨져 있다. 이솝은 어렵거나 난해한 문장을 고르지 않는다. 이해하기 쉽고, 동시에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문장을 엄선한다. 고객들은 매장에 방문했을 때 눈에 보이는 문장을 읽으며 소소한 인문학적 즐거움을 느낀다.


Image source - the squid stories


예상치 못한 문장의 발견. 그리고 그 문장에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 단순히 화장품을 구매하러 온 고객은 특별한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으로 발전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솝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기도 하다.


이솝은 고객들과 피상적인 관계로 남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고객들이 조그마한 핸드크림을 하나 구매하더라도, 그 공간에서 인생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얻길 바란다. 간결한 메시지로 이로움을 전하겠다는 이솝의 철학은, 단순하면서도 곱씹어 볼 수 있는 명언과 격언으로 표현되었다.






더 많은 것을 전하는 라벨


이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특유의 ‘라벨 디자인’이다. 밝은 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제품 정보가 담겨있다.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화장품 라벨지와 다르다. 어디에도 화려한 수식어나 광고성 멘트가 없다. 브랜드 명, 제품 명, 사용 용도, 원재료, 브랜드 웹사이트 등 제품 구매에 필요한 정보만 가독성 있게 기록되어 있다.


Imagae source - georgmellner


이솝은 자신들의 철학인 ‘단순함(Simplicity)’ 이처럼 제품 디자인에도 적용했다. ‘데니스 파피티스’는 기존 상업 브랜드의 언어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너무 많은 사용 설명서, 의미를 알 수 없는 광고 문구, 화려한 디자인은 고객이 브랜드를 이해하고 소비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라고 말했다.



“Such straightforward presentation of information is particularly attractive in today’s overcrowded market, where hundreds of brands vie for attention.


정보를 바로 전달하는 방식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특히 오늘날 수많은 브랜드가 존재하는 시장에선 말이죠.



Too many brochures, Difficult words in ads, Complicated design gets people exhausted. Everyone needs a break today and often less is more.”


불필요한 브로셔, 난해한 광고, 복잡한 디자인은 보기만 해도 지칩니다. 사람들은 휴식이 필요해요. 덜어낼수록 더 좋은 법입니다.”



이솝의 라벨지는 그 어느 브랜드보다 단출하지만 정보의 수준다. 실제로 무언가를 구매할 때 설명이 복잡해서 선뜻 구매하기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수사로 가득한 라벨지가 아닌, 제품 그 자체를 충실하게 다루는 기본적인 내용이다.


이솝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그들이 브랜드를 이해하는데 불필요한 장벽은 모두 허물었다. 다른 브랜드가 매출 증진을 위해 마케팅성 문구로 제품을 설명할 때도 이솝은 자신들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의미 있는 단순함.


오랜 시간 이솝이 잊지 않으려는 신념이다.






규율이 곧 결과이다


이솝의 조직 문화 역시 단순함의 가치가 관통하고 있다. 그들은 체계적인 규율이 있어야 조직원들이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율권이 보장될수록, 사소한 것까지 모두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색의 볼펜으로 서류 확인 처리를 해야 할까?’, ‘어떤 사무실에서 회의를 해야 할까?’등의 고민이 정작 필요한 업무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지 못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솝은 몇 가지 조직 원칙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정해진 색상 안에서 디자인을 한다.

검은색 볼펜과 다이어리를 사용한다.

업무 공간에서 사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매장 내에서 정해진 음악 리스트를 사용한다.

매장 내에서 고객과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


다소 엄격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조직원들은 명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됐다. 무엇을 할지 말지 잘 알고 있으니, 의미 없는 생각과 행동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화장품에 힘을 쏟는다. 신제품을 개발하고 품질을 개선하며 코스메틱 브랜드의 역할을 다한다.


대의(大義)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잡의(雜義)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그렇기에 이솝은 적절한 규율로 상황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간결한 시선으로 쳐낼 것은 쳐내며 자신들의 본질을 지켰다. 이러한 노력이 쌓이면서 이솝만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솝우화는 단순하면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솝 문화는 단순하면서도 의미 있는 성장을 향해 걸어간다.






뷰티 시장은 바야흐로 경쟁을 넘어 ‘과경쟁’ 시장이다. 소리 없는 총성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도 이솝은 4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 이들은 광고나 협찬을 하지 않는다.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브로셔도 만들지 않는다. 심지어 신제품 개발이 5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사람들은 이솝을 찾는다. 느려도 좋다. 심심해도 괜찮다. 투박해도 상관없다. 멋져 보이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늘 ‘단순한 시선’으로 ‘좋은 영향력’을 나누는 이솝을 응원한다.



이솝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단순함의 미학을 지켜나갈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할 것이다.

마치 이솝우화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피비 파일로의 패션 철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