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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금비씨 Mar 29. 2024

되는 일이 없었다.

능력부족인가 남 탓인가 운명의 장난인가

나는 홀로 고군분투하며 만 네 살짜리 남매둥이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이다.(물론 쌍둥이다 보니 신랑의 육아참여도가 낮진 않지만 항상 부족하다 느낄 뿐)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진 않지만, 내 마음을

이리저리 살펴주는 친구가 있어서 그나마 숨 고르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뭘 하든 간에 되는 일이 없었다.

분명 뭐든 잘한다는 소릴 들으며

자란 거 같은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나에게는 평범한 직장생활의 흔적도,

위안이 되는 성취감도 없었다.


1. 첫 번째 흔적-파티플래너

원치 않는 경쟁을 붙인 고2 담임선생님의 영향도 조금 있었겠지만, 이 즈음에 갑자기 잘하던 공부를 놔버렸다.

그렇게 난 재수 끝에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호텔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한 살 많은 신입생이다 보니 같은 학년보다는

1년 선배들이 더 편하고 좋았다. 그리고 입학하자마자 계획한 대로 조기졸업 및 교직이수를 마쳤다. 1년 동안은 학생회 총무부장을 맡으며 바쁘게 지냈고,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엔 힘들게 통학을 하면서도 과대활동을 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조기졸업 후에 무얼 해야 하는지,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다음 계획이 전혀 없었던 탓에 나는 방황했고, 한참을 무기력하게 지냈다. 누가 봐도 한심해

보일 정도의 번아웃이 왔다.






그러다 우연찮게 발견한 채용공고.

결혼식 및 돌잔치 외 생애주기에 맞춘 각종 

이벤트를 계획, 실행해 주는 파티플래너였다. 회원모집을 통해 운영하다 보니 가입비가 따로 있었고, 영업까지 해야만 했다.


성격 상 다른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는커녕, 항상 눈치 빠르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손길을 내밀던 나였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시작한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지인들을 시작으로 회원가입을 성사시켜야 했고, 그렇게 몇몇 친구들을 만나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 가입을 권했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 자신도

이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욱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일을

응원한다면서 적지 않은 가입비를 지불하고 

나의 첫 번째 고객이 되어준 친구가 있었다.(아마도 이 친구는 내가 방황했던 시간을

옆에서 지켜봤던 탓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가 힘을 내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렇게 첫 번째 고객을 시작으로 더 힘을

내려던 참이었다. 팀 사람들이랑 퇴근 후 가진 회식자리에서 신나게 부어라 마셔라 난리 친

덕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 건 기억이

나는데 필름이 중간중간 끊겨버렸다.


'엇? 왜 엄마가 나를 데리러 나왔지?'

그랬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의 나는 

이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버스를 탔던 어떤 승객분의 도움으로, 인사불성 상태에서 무사히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뒤늦게 엄마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내 핸드폰이 자꾸 울리자 어떤 승객분께서 대신 전화를 받아주고,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나를 무사히 집에 

내기 위해, 버스 기사님 포함 남아있던

승객분들 모두 버스정류장에서 묵묵히 기다려주셨다고 한다.

진짜 하늘이 도왔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다.

집에서도 난리였던 모양이다.

힘들게 돈 벌어서 재수까지 시켰는데 부모님 입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대학교를 간다고 하지, 그래도 장학금 받으면서 열심히 다니더니 교직이수와 조기졸업을 동시에 해내더니만,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려나 싶었는데, 

꽤 오랜 시간을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다

뜬금포 파티플래너라니?? 던 것이었다.


무슨 그런 일을 하냐면서 집에서는 처음부터

반대가 심했었고, 힘을 내보고자 했던 상황에서 응원은커녕 불편함만 감지됐던 집이 

너무나 싫었고, 그렇게 부모님과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는 나날들이 늘어가던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술 마시고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탓에 그동안 부모님께 느꼈던 서러움과 원망의

말을 오열하며 쏟아냈었나 보다.

지금까지도 전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일로 인해 부모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내색 안 하셨고,

 모습을 본 나는 저렇게까지 싫어하는데 

확신도 없는 일을 위해 힘껏 밀어붙이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두면서도 나의 첫 번째 고객이 되어준 

친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오는 게

미안해서 친구의 회가입도 무효화시키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는 다시 백조가 되었다.




나의 두 번째 흔적은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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