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갖춘 부엌

그리고 떡볶이

by 기록하는최작가

2007년, 군에 입대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휴가. 나는 세상과 다시 악수하는 법을 서툴게 배우고 있었다. 계절은 11월, 바람은 이미 겨울의 편에 서 있었고, 공기는 칼날처럼 얇고 차가웠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손끝과 귓불이 따끔거렸다. 그 감각은 단순한 추위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한 겹 밀려난 듯한 낯섦이었다.

첫 휴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보러가는 발걸음에는 이상하게도 설렘보다 기대가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기름기 흐르는 치킨, 갓 구운 피자, 혹은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고기. 아버지가 나를 위해 그런 것들을 준비해두었으리라 믿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따라오는 법. 아버지는 나를 동네의 작은 떡볶이집으로 데려갔다.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무엇인가 툭 하고 떨어졌다.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군대에서의 첫 휴가, 그것도 아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 고작 떡볶이라니. 서운함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안에 내려앉았다. 조금의 투정 끝에 떡볶이를 입에 넣었다. 이상하게도, 그 맛이 오래 남았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사실은 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날의 떡볶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건넨 가장 소박한 방식의 환대였고, 어쩌면 가장 정직한 사랑의 형태였는지도 모른다.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오래 남는 것들, 사람은 대개 그런 것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아들이 아니라, 누군가의 남편이 되었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시간이란 참 묘해서, 어느 순간 문득 거울을 보면 아버지의 얼굴이 내 안에서 희미하게 겹쳐 보인다.


결혼 10년 차, 근무지 이동으로 주말부부가 되었다. 잠시나마 혼자 지내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 기간이 길어질 거라 생각지도 않았다. 잠시 스쳐 지나갈 시간이라고 믿었다. 그래서였을까, 내 삶을 가능한 한 가볍게 만들기로 했다. 두 평 남짓한 공간, 그 안에 들여놓은 것은 최소한의 것들뿐이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전자레인지 하나. 그리고 요일별로 입을 옷 몇 벌. 그 외의 것들은 들이지 않았다.


사람은 빈 공간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다. 비어 있음은 때로 불안으로 번지고, 그 불안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무언가를 사들인다. 필요가 아니라, 채우기 위해 소비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채워 넣었던 것들 대부분은 다시 버려진다. 나는 그 순환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고 싶었다. 어차피 곧 떠날 공간이라면, 그곳에 애정을 쌓기보다 가볍게 머물다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비워둔 채로 살아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감기 몸살이 깊게 들어왔다. 평소 좀처럼 아프지 않던 몸이었지만,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끝을 모르게 내려앉곤했다.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렸고, 머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먹을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이불 속에 몸을 묻고, 시간이라는 강 위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누워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통증이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할 무렵, 이상하게도 하나의 음식이 떠올랐다. 바로 떡볶이다. 아주 오래된 기억의 저편에서, 아버지와 함께 앉아 먹었던 그 따뜻한 접시가 조용히 떠올랐다. 휴대폰을 들어 배달어플에서 떡볶이를 검색했다. 하지만 화면 속에 나타난 것은 내가 기억하던 그 소박한 분식집이 아니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문제는 양이었다. 혼자 먹기에는 지나치게 많았다. 최소 3인분 이상이다. 가격도 가볍지 않았다. 물론 먹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주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주문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먹고 난 뒤 남겨질 음식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들어보면 되지 않을까.’ 주방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공간이었지만, 나는 밖으로 나섰다. 발걸음은 이미 마트를 향하고 있었다. 손에 쥔 것은 떡볶이 밀키트 한 봉지와 사각 오뎅, 그리고 라면사리다. 조리법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순간, 요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증명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도구가 없어도 괜찮다는 것, 조건이 부족해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전자레인지와 전자레인지 전용 용기 하나뿐인 주방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떡을 넣고, 양념을 풀고, 물을 붓고, 오뎅과 면을 얹었다. 뚜껑을 덮고 전자레인지의 버튼을 눌렀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시간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문틈 사이로 침샘을 자극하는 향기가 새어나왔다. 마치 누군가 “곧 완성된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중간에 한 번 문을 열어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저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다시 뚜껑을 덮었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은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몸이, 어느새 하나의 음식을 완성해내고 있었다. 20여 분이 지났을까. 전자레인지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제법 그럴듯한 떡볶이가 놓여 있었다. 김이 올라오고 있었고, 양념은 적당히 걸쭉하게 배어 있었다. 나는 바로 젓가락을 들어 한 입을 먹었다.


맛있었다. 놀랄 만큼. 그 순간,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아프다고,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누워 있던 사람이, 지금은 이렇게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있다니. 결국, 하고 싶은 것이 생기자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몇 가지를 깨달았다. 도구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 중요한 것은 재료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것. 사람은 종종 자신을 가로막는 이유들을 만든다. 시간이 없어서, 환경이 안 좋아서, 여건이 부족해서.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이유들은 대부분 ‘핑계’라는 이름을 달고 서 있다. 되고 싶으면 방법을 찾고, 되지 않을 것 같으면 이유를 찾는다. 나는 전자레인지 안에서 끓어오르던 떡볶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완벽한 주방이 없어도, 완벽한 레시피가 없어도, 시작할 수는 있는 것이니까.


우리는 너무 자주 준비를 핑계로 미룬다. 하지만 준비란, 어쩌면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것들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내가 확인했던 것은 단 하나였다. ‘지금 내게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음식이 아니라 삶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나는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날 떡볶이는 다 먹고 나서도 한동안 식지 않았다. 입 안이 아니라, 마음 한편에서 오래도록 김을 올리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전자레인지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은 도구와, 충분하지 않은 재료들 사이에서 망설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와 마주 앉아 먹었던 떡볶이, 그리고 혼자서 만들어 먹었던 떡볶이를 떠올리려 한다. 그 두 접시 사이에 흐르는 시간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내 삶을 끓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