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의 탄생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빛나던 밤

by 기록하는최작가

이제 4월이다. 계절은 늘 약속을 지키듯 돌아오고, 그 약속의 증거처럼 거리는 다시 분홍빛으로 물든다. 길을 나서면 벚꽃이 먼저 말을 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다독이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그 아래에 선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그 짧은 순간, 각자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같은 풍경 속에 머문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벚꽃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매년 같은 시기에 피어나지만, 우리는 매번 처음 보는 얼굴처럼 그것을 바라본다. 어쩌면 벚꽃이 아니라, 매번 조금씩 달라진 우리의 마음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지도 모르겠다.

나들이를 핑계 삼아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마음이 가볍게 들뜨고 싶었달까. 며칠 전, 평소 가까이 지내던 준영 선배와 우연처럼 시작된 이야기가 있었다. “가족들 데리고 캠핑 한번 가자.” 그 말은 식탁 위에 내려앉은 작은 씨앗 같았고, 우리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것을 마음속에 심어버렸다. 가족과 함께 떠나는 캠핑은 익숙했지만, 다른 가족과 함께하는 캠핑은 처음이었다. 낯선 설렘과 조심스러운 기대가 함께 자라났다. 기대는 언제나 조용히 부풀다가, 어느 순간 우리를 데리고 길을 나선다.

캠핑장으로 향하는 길은 짧았지만,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도착해 있었다.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며 날짜를 셌다. 아이들에게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기다림의 밀도였고, 하루하루는 설렘으로 채워진 작은 상자 같았을 것이다. 어른들은 준비를 하고, 아이들은 꿈을 준비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날을 기다린다.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자신의 세계로 흩어졌다. 킥보드와 인라인스케이트를 들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 나갔다. 그 웃음은 바퀴 소리와 함께 굴러가며 공간을 채웠다. 나는 나의 자리로 향했다. 텐트를 세우고, 타프를 펼치고, 의자와 테이블을 배치했다. 하나하나 손을 움직일 때마다 공간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직은 허술하지만, 분명히 우리가 머물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준영 선배는 캠핑 트레일러를 가지고 있어 준비는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간을 따뜻하게 채우는 가장 중요한 준비였다.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비로소 캠핑다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장비들은 각자의 위치를 찾았고, 바람은 그 사이를 조용히 흐르며 우리의 시간을 엮어갔다. 이제 남은 것은 불을 피우고, 하루를 따뜻하게 익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빈틈이 드러났다. 장작은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담을 불통이 없었다. 이번 캠핑은 최대한 간소하게 하자는 생각에 숯대진 버너와 불판을 챙겼다. 그런 와중에 많은 것이 생략된 것이다.

“그냥 하지 말자.” 이 말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길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을 마주한 순간, 그 말은 힘을 잃었다. 네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같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불멍, 그리고 마시멜로우를 굽는 놀이. 아이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캠핑이라는 세계의 중심에 놓인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 눈빛은 묻고 있었다. 정말 안 되는 거야?

잠시 고민이 스쳤다. 불통을 사러 가야 할까. 그때 준영 선배가 말했다. “가보자.” 그 한마디는 설명보다 빠르게 우리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두 아빠의 작은 모험이 시작되었다. 군대식으로 말하면 ‘현지획득’이었다. 주변에 버려진 것들 속에서 쓸모를 찾아내는 일이다. 어쩌면 그것은 물건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캠핑장을 벗어나 조금 걷다 보니, 오래된 폐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자리 같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 그래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곳.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설렜다.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주방기구, 생활용품, 이름 모를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금, 꼭 필요한 것들일지도 모르는 것들. 그 순간,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다. 쓸모없음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들 속에서, 다시 쓸모를 불러내는 일. 그것이 마치 우리가 맡은 역할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발견했다. 찌그러진 철통 하나와, 금이 가지 않은 유리뚜껑 하나. 누군가는 버리고 간 것들이었지만, 우리의 눈에는 완성되지 않은 도구처럼 보였다. 유리뚜껑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철통을 올리면, 불을 담아낼 수 있는 작은 화로가 될 것 같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아니, 충분히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세팅했다. 장작을 넣고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망설이듯 타오르던 불씨가, 이내 숨을 고르듯 살아나기 시작했다. 철통은 불을 품고 있었고, 유리뚜껑은 그 아래에서 재를 받아내고 있었다. 불은 번지지 않았고, 온기는 퍼져 나갔다. 우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 불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둘 밝아졌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시멜로우를 꺼내 들었다. 하얗고 네모난 작은 덩어리를 나무꼬치에 꽂아, 조심스럽게 불 위에 가져다 댔다. 불꽃은 그것을 서서히 물들이며 색을 입혔다. 하얀 것은 점점 갈색으로 변했고, 아이들의 웃음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 순간, 우리는 단순히 불을 피운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쓸모란 무엇일까. 우리는 종종 완벽하게 준비된 것들 속에서 안정과 만족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날, 가장 큰 기쁨은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버려진 것들 속에서 쓸모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과정. 그 안에서 우리는 단순한 편리함이 아닌, 창조의 기쁨을 느꼈다.

여행은 늘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 낯선 길에서 길을 찾는 법을 배우고,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선택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든다. 그날의 캠핑은 나에게 ‘쓸모’라는 단어를 다시 쓰게 했다.

쓸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어진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물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다. 내가 작다고 여겼던 나의 어떤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며 배우는 ‘봉사’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쓸모를 만들어내는 삶. 그것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날 밤, 불은 천천히 사그라들었지만, 그 온기는 오래 남았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겠지만, 그날의 불빛은 마음 어딘가에 작은 등불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쓸모를 잃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그날을 떠올릴 것이다.

버려진 철통과 유리뚜껑이, 하나의 불이 되어 우리를 따뜻하게 밝혀주던 그 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