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이미지 : 우측 금색 여신상은 백악관 옆 보병 1사단 기념탑이다. 걷는 방향으로 보이는 건물들은 연방정부 사무소들. 백악관 주변 도로는 통제되어 지정된 곳으로만 다닐 수 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워싱턴 DC 여행기 1/3에서 계속
첫째 날 : 내셔널 몰,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미국 국립 미술관
백악관 (The White House) & 워싱턴 기념탑 (Washington Monument)
비싼 호텔에 묵었던 것만큼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 가까워서 차 없이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간 곳은 15분 거리에 있던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 백악관(The White House)이다.
몇 번의 전쟁 통에 건물이 불에 타는 피해를 받기도 했지만, 백악관은 워싱턴 DC가 수도가 된 이후 변함없는 대통령의 공간이다.
우리는 남쪽 잔디밭 쪽으로 갔는데, 보안 때문인지 코비드 때문인지 추수감사절 행사가 있어서인지 보행로 곳곳이 차단, 통제되고 있었고 잔디밭에는 철제 장벽이 쳐져있어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만 백악관에서 200미터는 넘게 떨어져 있어서 조금 실망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백악관 북쪽에서 보면 나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세은이 데리고 더 이상 힘 빼지 않고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다.
포토존에서 백악관 반대편을 돌아보면 청설모들이 나무열매를 먹고 있는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에 아주 커다란 "국립 크리스마스트리(The National Christmas Tree)"가 벌써 꾸며져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문에 잘라서 땅에 박아 놓은 나무가 아니고 실제로 심어 놓은 살아있는 나무다.
1923년부터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대통령 축하 행사를 하는 곳인데 지금은 잔디밭에 들어갈 수 없고 멀리서 사진만 찍어야 한다.
백악관 왼쪽에는 금색으로 된 여신 모양의 보병 1사단 기념탑(First Infantry Division Monument,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보병 1사단 사망자를 기림)이 굉장히 눈에 띄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백악관을 지나, 15분 정도 더 걸어가면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에 닿는다.
내셔널 몰의 정중앙에 있는 데다가 워싱턴 DC 전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라, 근처 어느 곳에 있어도 보이는 거대한 탑이다. (높이 169m)
세은이가 '이쑤시개 탑'이라고 부른 이 탑은 1848년에 짓기 시작해서 완공하는데 무려 36년이나 걸렸다.
크기가 커서이기도 하지만 건설 도중에 남북전쟁 발발하여 공사가 한동안 중단되었는데,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면 상부와 하부의 색이 살짝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기념탑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워져 있고 미국 모든 주를 상징하는 50개의 미국 국기가 기념탑을 둘러싸고 있다. 탑이 너무 높으니 사람들은 가까이 가지 않고 살짝 떨어져서 사진을 찍는다.
탑의 내부로 들어가서 꼭대기에서 워싱턴 DC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예약 수수로 $1만 받는 사실상 무료 투어가 있다.
제한된 인원만 올라갈 수 있으니 예약을 받는 것 같았는데, 예약이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마감되는 바람에 우리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영화 "스파이더맨 : 홈커밍, 2017"에서 여자친구를 구하는 장면에 이 꼭대기 층이 나오는데, 세은이에게 직접 보여줄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우리는, 점심때가 되어 이 거대한 탑 근처 푸드트럭에서 핫도그를 사서 잔디밭에서 허기짐을 달랬다.
(왼쪽) 내셔널 몰 전경, 정면 건물은 미국 연방 의회의사당이다. (오른쪽) 내셔널 몰 정중앙에 위치한 워싱턴 기념탑. 꼭대기에 관람층 창문이 보인다.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날이 조금 추웠기 때문에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오후엔 실내 관람을 하기로 했는데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Smithsonia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이 첫 목적지였다.
제임스 스미스손(James Smithson)은 18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로 광물의 근원과 화학 작용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하였고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말년에 그는 주변에 가족이 없었는데, 세상을 떠날 때 "지식의 증가와 확산을 위해 미국 워싱턴에서 나의 유산이 사용되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 유산을 토대로 스미스손의 이름을 딴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재단은 미국 연방정부의 추가 지원을 받아 양질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설립하였고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단어가 어려워서 그런지 한국에서 '스미소니언'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스미스소니언'이 정확한 이름이다. 스미스손의 유산으로 만든 재단이기 때문이다.
한참 걸어서 박물관에 도착했더니 대기 줄이 길다. 출입구에 적혀있는 한국어 "환영합니다"는 살짝 반갑다.
검색대를 지나 입구에서 들어서니, 넓은 로비에 커다란 비행기와 우주 관련 전시물들이 아주 가득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달 착륙을 위해 사용되었던 아폴로 프로젝트 사령선과 착륙선이었다.
달에 갔던 아폴로 11호의 실제 착륙선은, 돌아올 때 계획대로 우주에 버려졌고 지구로 돌아온 건 사령선뿐이다. 이곳에 바로 그 달에 갔다 온 사령선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버려진 착륙선 대신, 우주인들이 훈련했던 동일한 모델의 착륙선을 전시하고 있는데 생각보다는 작은 크기였다.
1969년 7월에 아폴로 11호는 로켓에 사령선과 착륙선을 싣고 지구를 떠나서 달 상공에 도착했다.
세명의 우주인 중 한 명은 사령선에서 대기하고, 두 명만 착륙선으로 갈아 탄 뒤 달 표면에 내렸다.
탐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두 명의 우주인이 다시 착륙선을 타고 달의 상공으로 올라와서 대기 중이던 사령선까지 이동해서 옮겨 탔다.
그런 뒤 착륙선을 그 자리에서 버리고 사령선만 지구로 귀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구엔 귀환한 착륙선이 없다. 왕복 8일이 넘는 여정이었다.
아폴로 11호 우주인 세명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달에 첫 발자국을 찍은 대장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일 것이다.
암스트롱 다음에 내린 사람은 착륙선 파일럿인 버즈 올드린 (Buzz Aldrin)이고 나머지 한 사람 마이클 콜린스 (Michael Collins)는 귀환 담당이어서 달까지 갔지만 달에는 내리지 못했다.
지구 귀환 후 암스트롱에게는 엄청난 관심이 쏟아지고 그 당시 다른 두 명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겐 닐 암스트롱 보다는 착륙선 파일럿인 버즈 올드린이 더 익숙한 이름이다.
이건 박물관에도 설명이 되어있는데,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주인공인 우주인 장난감 "버즈 라이트이어"는 버즈 올드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세은이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드디어 아는 게 나왔다는 듯 갑자기 눈이 반짝하더니 신기하게 쳐다봤다.
"세은아, 저 사람은 버즈 올드린이야. 버즈 라이트이어가 아니고." 혹시나 시험 나오면 '라이트이어'라고 적지만 않았으면 했다.
(왼쪽) 아폴로 11호가 사용했던 달착륙 모듈과 같은 모델. (오른쪽)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기, 라이트 형제의 Wright Flyer. (사진) 박물관 내부의 과학 체험 시설들.
박물관엔 볼만한 것들이 아주 많지만, 그래도 특별한 것 한 가지만 더 꼽자면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가 1903년에 발명한 최초 비행기 "라이트 플라이어 (Wright Flyer)"가 있다.
라이트 집안 5남매 중에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던 둘째와 셋째인, 윌버와 오빌 라이트에 의해 만들어진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기이다.
라이트 플라이어는 별도의 전시공간에 따로 있었는데 글라이더 치고는 조금 크지만 1인승 비행기라고 생각하면 조금 작은 느낌이다.
엎드려서 끈에 매달린 채 날개 위에 달아둔 손잡이를 잡고 타는 방식인데 상당한 공포심이 들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비행기 주변엔 그 당시의 장비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비행 당시의 동영상도 볼 수 있었다.
미국인들이 이뤄낸 세계 최초의 업적들이 그 상태 그대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서 후대의 아이들이 그것을 직접 보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참 부럽게 느껴졌다.
심지어 나 조차도 책에서만 봤고 단지 학교 시험 때문에 외워야 했던 것들을 직접 보고 나니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최대한 열심히 설명해 주기는 했지만 세은이가 영어를 더 잘했다면 아마 박물관이 더 흥미 있고 좋았을 것이다. 아쉽긴 하다.
다양한 아이들 수준에 맞춰 만들어진 코너도 많고 복잡한 물리 현상을 놀이처럼 직접 체험해 보는 시설도 잘 되어있었다.
우리는 우주여행을 경험하는 VR도 해보고 달에서 가져온 돌도 직접 만져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미국 국립 미술관 :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다음 장소는 미국 국립 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National Gallery of Art)였다.
이런 거대한 미술관엔 수많은 후원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중에도 우리에겐 카네기-멜론 (Carnegie-Mellon) 대학으로 익숙한, 당시 3위의 재벌이면서 정치가였던 앤드류 멜론(Andrew Mellon) 이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
미국의 미술관은 대체로 큰 부자들이 후원하면서 시작되는 곳이 많아서 큰 미술관 뒤엔 반드시 큰 부자와의 역사가 있기 마련이다.
고전 작품 위주의 본관, 현대 작품 위주의 동관(East Building) 그리고 야외 조각 공원으로 나뉘어 있는데 소장 작품이 정말 많아서 한 번에 다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리스 신전처럼 생긴 본관으로 들어서면 하늘이 보이는 원형 돔이 나오고 그 아래엔 작은 정원과 분수, 조각상이 관람객을 반겨준다.
복도엔 다양한 조각품들이 화분과 함께 놓여있어서 저택의 복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미술책에 나오는 수많은 명화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는 늦은 오후에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해서 느긋하게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선 남북 아메리카 대륙 통틀어 단 한 점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지네브라 데 벤치 (Ginevra de Benci, 15세기 후반)"를 사냥하듯 찾아가야 했다.
다빈치가 초상화의 주인공인 16살 지네브라의 약혼을 기념하여 그린 그림이다. 지네브라는 결혼이 맘에 안 드는지 표정이 매우 경직되어 있고 다빈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 그림은 벽에 걸려 있지 않고 방 한가운데 있는 유리장에 넣어서 전시되어 있는데, 그림 뒤편에 적어둔 라틴어 구절 "아름다움은 미덕을 장식한다. (Virtvtem Forma Decorat)"를 보게 하기 위함이다.
대재벌 앤드류 멜론이 기부한 미술관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 되는 그림을 미국으로 사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진) 내셔널 갤러리 입구 (사진) 왼쪽부터 다빈치, 고갱, 고흐의 그림. 엄청 많은 양의 유럽과 미국의 명화가 전시되어 있다. 현대 미술은 별도의 건물인, East 빌딩에 전시 되어 있다.
그 외에도 모네, 드가, 세잔, 르누아르, 루벤스 등등 교과서에서만 보던 유럽의 명화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작품들을 밀집하지 않고 충분히 이격을 두고 전시하고 있어서 상당히 편안한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건, 고흐와 고갱의 작품을 같은 공간에 전시해 둔 방식이 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활동할 당시엔 미술계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고흐는 그래도 자신보다는 한 발짝 앞서 나가있던 고갱을 짝사랑했던 모양이다.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흠모하기 조차 어러운 것 아니겠는가.
고흐는 고갱을 프랑스 아를이라는 곳에 초대해서 같이 지내려고 했다. 하지만 고흐의 질척임에 질려버린 고갱은 2달도 못 버티고 파리로 떠나버리는데, 고흐는 이때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을 저지르며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된다.
고흐의 명성이 고갱을 뛰어넘을 만큼 세상에 알려진 지금은 과거 관계 이야기가 좀 생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고흐 & 고갱의 방엔 두 사람의 자화상을 서로 마주 보도록 전시해 놓고 있었다. 생전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나눠보라는 의도인 걸까. 우연히 이런 식으로 배치했다고는 믿기 어렵지.
봐야 할 작품이 너무 많았지만 우리는 시간이 다 되어서 나와야 했다. 다음에 다시 올 기회가 있기를 바랐다.
둘째 날 : 2차 대전 기념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링컨 기념관, DC 시내
내셔널 몰의 서쪽 : 2차 대전 기념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셔널 몰 자체도 너무 커서 하루 만에 다닐 수는 없다. 오늘은 어제 가지 못한 서쪽 부분을 보러 간다.
워싱턴 기념탑 바로 옆엔 세계 2차 대전 기념비(World War 2 Memorial)가 있다. 기념비라 하기엔 그 자체가 큰 공원이고 20년 전에 만들어진 비교적 최신 건축물이다.
커다란 중앙 분수대 양 옆으로 난 "태평양(Pacific)", "대서양(Atlantic)"이 쓰인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분수대 주변을 둘러싼 각 주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들이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자기 출신 주의 기념비를 찾아서 사진을 찍곤 한다. 우리도 뉴욕을 찾아서 사진을 찍고 기다리던 다른 가족도 찍어주었다.
알바니에서 7시간 걸려 운전으로 왔다고 하니 "Crazy"라며 나에게 씩 웃어주었다. 먼 곳에서 만나는 뉴욕사람이 반갑기도 하다.
분수대의 앞쪽에는 자유의 벽(Wall of Freedom)이 있다. 2차 대전 실종 및 사망자 100명을 별 한 개로 하여 총 4048개의 별이 새겨진 둥근 모양의 벽이다. 40만 명이 넘는 전쟁 희생자... 별이 빼곡하다.
자유의 벽 아래쪽에는 "우리는 이곳에 자유의 비용을 기록한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토대로 이뤄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서쪽으로 10분 정도 더 걸어가면, 미국에서 "잊힌 전쟁 (Forgotten War)"이라 하는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이다. 우리는 한국인이니 여기는 꼭 들러야 한다.
도착해 보니 확장공사가 끝나지 않아서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 아쉽긴 했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꽤 인상적인 조각공원이다.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공원 부지에 20개 정도의 실물 크기의 병사의 동상이 있는데, 어디론가 행군하는 모습이 굉장히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병사들이 나무 숲을 나와서 경계하며 지나가는 모습이다.
어려 보이는 얼굴의 병사들은 자기 몸집만 한 군장을 메고, 장마철인지 판초우의까지 걸치고 걷고 있다. 상상만 해도 찝찝하고 최악이다.
병사들의 표정은 어딘가에 숨겨진 적을 찾는 같이 잔뜩 긴장되어 보이는데, 그 당시 한국에 온 미군들이 느꼈을 고단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파견 군인의 복잡한 감정이 동상에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바닥에는 돌을 사용해서 고랑 비슷하게 표현했는데, 작가의 의도가 만약 밭을 표현하려 한 것이라면 병사들은 남의 농장을 무단침입하고 있는 장면이 된다.
그래도 할 수 없지. 아마 실제로도 그랬겠지. 이게 더 현실적이다.
병사 중에 농부의 아들이 있었다면 이렇게 지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그런 정도의 상식은 무시해야 했을 거다.
한국에 오기 전엔 타인의 재산과 농작물을 소중히 여겼을 사람들일 테지. 지금은 전쟁이니 살아남는 것만 중요하다. 전쟁이니까. 아마 지금은 8~90살이 되었을 테지.
공원의 한쪽 벽엔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빠짐없이 새겨져 있고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사진) 2차 대전 기념비 모습. 굉장히 큰 규모의 분수 공원이다. (왼쪽)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확장 공사중이라 제한적 관람만 가능했다. (오른쪽) 링컨 기념관 내부의 링컨 대통령 석상
미국인들에게 이 전쟁은 2차 대전 이후 반전(反戰, Anit War) 분위기 속에 정부가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파병한 전쟁이다.
의회의 승인도 못 받고 미국 정부의 공식 전쟁이 아닌 "경찰 행동"이라는 이름으로 UN을 지원하는 형태로 참전했는데 그 때문에 전쟁의 규모에 비해 미국인들에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전쟁이다.
37,000여 명이나 미군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미국이 승리한 것도 아니고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으니 참전을 결정한 사람들은 이 전쟁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잊힌 전쟁"이라 부르게 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하지만 참전 군인의 입장에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곳에 가서 목숨 걸고 싸우다 살아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기억해 주지 못한다면 참으로 서러웠을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이 전쟁은 한국 민족 간의 다툼의 성격만이 아닌 그 당시 세계 패권을 둘러싼 대리전이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 등이 뒤섞여있었고, 중요한 건 아직 종료되지도 않았다.
그 과정 중에 미국 정부가 남과 북의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모습으로만 존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파견 병사로 대변되는 미국 일반 시민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와 부유함은 아마 훨씬 먼 미래에나 가능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내가 미국에 사는 동안 한국전 참전 용사를 만나게 된다면, 당신의 봉사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워싱턴 DC의 한국전 기념공원을 다녀왔노라고 꼭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링컨 기념관과 자연사 박물관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조금만 더 가다 보면 내셔널 몰의 서쪽 끝에 있는 링컨 기념관에 닿게 된다. (반대편 동쪽 끝은 미국 연방 국회 의사당이다.)
혹성탈출이나 포레스트 검프 같은 유명한 영화에서도 많이 나왔던 곳이라서 익숙하다. 특히 기념관 바로 앞에 있는 길이 600m가 넘는 직사각형의 연못(Reflecting Pool)이 이곳의 또 다른 상징이다.
여기에선 역사적 사건이 정말 많이 있었는데, 1963년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이 기념관 앞에서 25만 명의 군중을 대상으로 했었던 인종 차별 철폐 연설은 미국 역사를 바꾼 아주 큰 사건으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내셔널 몰엔 마틴 루터 킹 기념 공원도 있다.)
지어진지 100년 남짓된, 그리스 신전처럼 생긴 링컨 기념관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지어져 있어서 건물 2~3층 정도 높이의 계단을 올라가야 그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링컨 시절 연방에 속해있던 36개의 주를 상징하는 36개의 기둥이 있고, 건물 상단 외벽엔 모든 주의 이름과 연방 가입 연도가 새겨져 있다.
별도의 문이 없어서 누구든 들어와 볼 수 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홀이 있고 링컨 대통령이 높은 의자에 앉아있는 거대한 흰색 석상이 놓여 있다.
건물의 내부에 따로 전시품이 있거나 하지 않아서 관람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뒤편 벽 링컨의 머리 위 높이에는, 화합을 지켜낸 링컨 대통령을 영원히 기억하고 존경하기 위해 제작했다는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건물 안쪽 옆면엔 우리에게도 익숙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구절이 있는 게티즈버그 연설문 전체가 새겨져 있다.
건물 밖으로 나와 난간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며 건물 뒤편의 포토맥 강 풍경 다리 건너 버지니아 쪽 경치도 감상했다.
건물 남쪽 측면 천장엔 금이 갔는지 지붕 안쪽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곳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아마 지금쯤은 고쳐졌겠지.
링컨 기념관에서 링컨 석상을 등지고 내셔널 몰을 바라보면 한가운데 우뚝 솟은 워싱턴 기념탑이 연못에 거울처럼 비쳐서 그림 같은 광경이 연출된다.
링컨 기념관을 나와서 시내 쪽으로 걸으며 구경하다가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Natural History Museum)에 들렀다.
바람이 많이 부는 추운 날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무언가를 찾아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잠시 쉬면서 간단한 점심을 먹으려고 들른 곳이다. 입장료가 무료니까 부담이 없다.
뉴욕시티에 있는 아메리칸 자연사 박물관(American Natural History Museum)에 비하면 조금 작은 규모지만 볼거리는 충분했다. (참고로 워싱턴 DC 자연사 박물관은 모두에게 무료이고, 뉴욕시티는 뉴욕주 거주자에 한해서 무료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다면 몸이 힘들더라도 본전 생각에 체력을 쥐어짰을 수도 있겠으나, 어제도 오늘도 상당히 많이 걸었기 때문에 좀 쉬어가기로 했다. 세은이가 이미 많이 지쳐있다.
한동안 의자에 앉아있다가 보석의 방, 미라 전시, 자연석 전시등을 보고 크게 무리하지 않고 나가기로 했다.
나가기 전에 지하층 천장에 달려 있던 20미터 크기의 고래 모형을 봤는데 정말 압도적인 크기여서 세은이가 아주 좋아했다.
시간이 늦지는 않았지만 저녁 먹기 전까지 호텔에서 한두 시간 쉬기로 했다. 많이 봤으니 좀 쉬어도 된다. 새로운 곳에서 쉬는 것조차 새로우니까.
(사진)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1층 로비의 코끼리 (왼쪽) 워싱턴 DC의 밤거리 모습. 멀리 국회 의사당이 보인다. (오른쪽) 저녁을 먹으러 가는길. FBI 본부가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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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누워서 두 시간 정도 쉬고 나니 체력도 채워지고 날도 많이 어두워져서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내셔널 몰에서 시간을 다 써서 시내에 있는 포드 극장(링컨이 이곳에서 암살당함) 같은 곳은 가보지도 못했다.
뭔가 좀 아쉬워서 이렇게 거리 분위기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밤이어도 큰길엔 가로등이 있으니 괜찮겠지.
시내를 걷다 보니 우리 동네나 내셔널 몰에서는 맡아본 적 없는 시큼한 풀 타는 냄새가 확 느껴졌다. 나는 이것이 대마초 (Cannabis 또는 Marijuana, Weed) 냄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젖은 풀이 타는 듯한 쿰쿰한 냄새. 담배 냄새보다는 진한 느낌. 비흡연자에겐 그다지 유쾌한 건 아니다.
아마도 자기 차 안이나 건물 뒤편에서 피우는 냄새가 도로까지 퍼지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대마초를 피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건 아니라고 뉴스를 봐서 이미 알고 있기는 했다.
의사의 처방전을 받으면 많은 주에서 대마초 사용이 합법이고, 심지어 뉴욕이나 워싱턴 DC 같은 몇몇 주는 아예 처방전 없이도 일반 담배처럼 사서 피우는 것이 허용된다. (Legal for recreational use)
미국에서 대마초의 이미지가 마약류가 아닌 담배 같은 것이라서 사람들은 위험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마초나 담배나 "Cool하지 않고 Clean 하지 않은" 이미지가 있어서 사회생활, 가정생활 잘해야 하는 사람들은 피지 않는 분위기다.
사실 돌아보면, 우리 동네에선 자기 집 마당이라고 해도 대마초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미국 흡연문화도 한국과 일견 비슷한 느낌인 게, 어린이가 있을 만한 인도, 놀이터, 공원 같은 곳에서의 흡연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동안 가족 단위로 찾는 여행지를 다니다 보니 대마초 냄새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게 아닐까? 담배 냄새도 그렇지만 대마 냄새도 굳이 가까이 있을 필요는 없다. 서둘러 지나가자.
대마 냄새를 헤치고 검색해서 찾아간 곳은 "Seoul Spice"라는 식당인데, 한국 점원이 없는 미국 스타일의 한국 비빔밥 전문점이었다.
멕시칸 식당의 Bowl 메뉴처럼 밥에 비빔밥 재료를 토핑 추가하듯 먹는 "Build your own" 방식인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한식당은 아니고 약간 패스트푸드점 느낌?
여러 이유로 음식의 재료를 가리는 사람이 많은 미국이니 비빔밥 재료도 손님이 직접 일일이 고르는 방식이 적합할 법도 하다.
매장 안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k팝 최신가요"를 들으며 창가에서 미국식 비빔밥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창 밖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흥에 겨운 모습으로 왁자지껄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을 보니 'Washington Capitals'라고 쓰여있다. 찾아보니 워싱턴 DC NHL 아이스하키 팀이다.
'오늘 게임이 있었나 보다. 아.. 저 사거리 아래에 경기장이 있구나. 재밌었겠다.'
식당을 나서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술집마다 하키 옷을 입은 팬들이 모여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즐겨보는 스포츠가 없었는데, 미국 야구나 농구가 세계 최고 경지에 있는 만큼 경기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호기심에 워싱턴 캐피털즈 동영상을 몇 개 찾아보고 마지막날 일정을 준비하며 잠에 들었다.
To Be Continued... (3편으로 계속)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