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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암 May 12. 2023

꽃 피고 질 때 지구의 운명을 묻다

 살구꽃이 여느 해보다 일찍 피었다. 사무실 창문 너머에서 해마다 봄소식 제일 먼저 전해주는 심부름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왼편으로 고개 돌려 유행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살구꽃이 필 때면 돌아온다던 내 사랑 순이는….’이어서 개나리가 바통을 받으면 벚꽃과 함께 하는 이어달리기가 계속되고, 이때 나의 정신은 혼미했다. 그런데 순간이다. 하룻밤 비바람에 그 꽃잎 떨어져 버리고, ‘아, 이 봄도 끝을 향해가고 나의 청춘도 다해 가는구나.’


 벚꽃이 지면 봄도 지는 줄 알았다. 1년마다 잃어버렸던 그때 기억을 새롭게 소환해 준 이팝나무꽃. 밤길 가로등 불빛에 투영되는 그 꽃잎의 모둠을 보면서, ‘아, 몽환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지.’ 오월이 되면서부터 다른 꽃은 눈을 벗어났고 넝쿨장미는 진한 향기와 선홍빛 자태를 뽐냈다. 꽃이 졌다고 봄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이제 여름이 오고 백일홍 잔치가 벌어지면 머지않아 다른 계절은 또 다른 봄을 잉태할 것이다.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고 지구의 역사가 얼마나 되는지 내 짧은 인지능력으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또 그 지구상에 우리 인류가 언제부터 존재하게 되었는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무기물과 유기물로써 생존해 가는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 꽃은 피고 졌다. 그냥 아름다웠고 정말 신비스럽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쩌면 네 존재가 있어 내가 존재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저 고맙다고도 생각했다.     

 지구의 역사를 대체로 45억 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비교하여 말할 수 없을 만큼 짧은 기간을 스쳐 가는 우리가 지구의 미래를 말할 수 있을까. 태초에 지구는 없었다. 그 지구를 우리 인간이 만든 것도 아니다. 인류가 멸망해도 지구는 존재할 것이고, 모든 인간이 사라진 깨끗한 지구에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할 것을 믿는다. 


 꽃이 피고 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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