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벅참은 오래가지 않아
입사할 때 그런 말을 들었다. 입사한 후 1년동안은 사람과 일 때문에 엄청 많이 울게 될 거라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을 좋아해 모든 대학생들이 싫어하던 조별과제도 제일 즐겁게 수행했기에, 업무때문에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곧잘 사람을 사랑하는 힘으로 이겨낼 것이라 굳게 믿었다. 이때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은 상식적이었고, 조별과제를 성실히 하지 않는 사람은 있었으나 성실하지 않은 것은 나와 다른 조원들의 역량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람과의 부딪힘도 그 상식적인 범위 내의 일이라 쉽게 여겼다.
그러나 역시 회사 생활은 달랐다.
가장 첫 사건은 이거였다. 나는 품질보증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그래서 개발자들이 상신하는 도면을 검토하는 업무부터 시작했다. 나의 멘토는 도면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고,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개발도면은 모두 검토하여 나가야한다고 단단히 알려주었다.
이윽고 첫번째 도면을 받은 날이었다. 처음 검토하는 도면이라 일반사항, 치수, 상호 연결되는 정보를 모두 점검을 하던 중 구조위치를 기입한 정보가 틀린 것을 발견했다. 실제로 제품을 만들 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신입인 나도 알 정도로 minor한 부분이었으나, 멘토는 그런 작은 부분도 확인하고 넘어가라고 하였기에 멘토에게 여쭈었다.
멘토는 본인도 minor한 부분인 것은 인정하겠으나, 신입인 너를 '만만하게 보지 않도록' 반려하라고 했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처음부터 만만하게 보이면, 그 뒤 회사생활이 괴롭다는 말을 멘토님과 선배님들이 줄창 말을 했었다. 이 배경은 우리 팀에서 유일한 '여자'엔지니어였고, 사회생활을 처음하는 '신입'이라는 포지션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강조했을 것이다.
이렇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다진 상태에서, 멘토가 직접 '반려'하라고 지시하여 명분을 만들어주지 않았는가?
나는 당당하게 반려사유를 쓰고 반려를 했다.
개발자는 전화를 해서 나에게 이런 것으로 반려를 하면 다른 사람들도 재검토해야하니, 이런 minor한 부분은 넘어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내가 도면을 수정해서 올려달라고 하자, 그 개발자는 오히려 이 문제는 품질팀 전체를 참조로 넣어 업무 차질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 하겠다고 했다. 공론화를 몰랐던 나는 그러시라고 했고, 몇 분뒤 품질팀장을 수신처로, 품질팀원들을 참조처로 넣은 메일이 왔다.
메일의 내용은,
" '초심'신입이 OO프로젝트의 도면을 OO의 minor한 문제로 반려를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업무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OO프로젝트의 개발기한이 늦어지면 품질부서의 문제이며 이런걸로 반려하는 신입의 태도에 대해서 교육을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완벽하게 구현하지 않았으나, 이러한 내용이었다)
사회생활을 있는대로 다 해본 지금이라면 '왠 미친놈이 본인 잘못은 쏙 빼놓고 이런걸 보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때 난 20대 중반의 사회초년생이었다. 메일 수신/참조처와 메일 내용을 보고 정말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그리고 반려를 하라고 말한 멘토를 쳐다보자, 그는 철저히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본인이 지시한 바가 문제 상황을 야기시키자, 내 문제로 돌린 것이다.
그날 나는 동기를 불러 1층에서 펑펑 울었다. 1시간 정도 지나 진정하고 사무실로 복귀하였으나, 그 날 우리 부서에서 나에게 위로의 말이나, 조언 등의 말을 건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멘토까지도.
일도 마찬가지로 힘들긴 했다. 매달 주 12시간과 주말 휴일근로를 꽉꽉 채워서 근무해야했고, 공장에서 야근을 끝내고 나면 사무실로 돌아와 고객 요구사항과 도면을 검토하던 나날이 계속 됐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진정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일이 아니라 일과 얼기설기 얽혀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고객,
출장지에서 지금 묵고 있는 호텔이 어디냐고 집요하게 묻는 고객,
본인 업무 시간을 늘리기 위해 모든 일을 돌려서 처리하는 감독관,
일단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말을 하는 선배들,
9개를 잘해도 1개를 못하면 '여자는 이래서 안돼'라고 말하는 과/차장 등
내가 모든 일을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조기진급도 아니고 평범하게 4년을 꽉 채워 대리가 된 나는, 평범하고도 일반적인 수준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묘한 경쟁심과 견제, 그리고 남자들의 서열세우기로 '내가 너보다 나아야겠다'라는 비교, 그러한 생각이 묻어나오는 태도로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덕분에 내 마음은 상처받았다가 치유했다가, 다시 상처받아 덕지덕지 기워진 마음이 되었다.
한번은 여동생이 급히 연락이 와서 받은 적이 있다. 여동생은 판교에 누가 자살소동을 벌인다는 뉴스가 떠서, 그게 나인줄 알고 전화를 했었다. 그만큼 그때의 나는 바닥이었다.
덕분에, 초기 1년만 운다는 조언 아닌 조언과는 다르게 나는 3년차까지 울었다.
1년차는 거의 매일 울었고, 2년차는 일주일에 두번, 3년차는 일주일에 한번. 다행히 그 이후부터는 독한 사람이 되어, 웃으며 앞담화를 하였고, 싫은 것은 대놓고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단단한, 그러나 내심은 기워진 상태로 4년을 더 근무하게 된다.
PS.
힘들어하는 사회초년생이 이 글을 본다면,
너의 잘못이 아닐 확률이 상당히 크다.
환경이 너무 힘들다면 그 환경이 너에게 맞지 않을 뿐, 네 가치가 바닥인 것은 아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언제든, 온 마음으로 안아주고 상담해드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