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썬 (Aftersun, 2022)
이상한 일이다. <애프터썬>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하니, 어떤 방식으로 쓰든 영화의 비밀을 발설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그건 스포일러와 같이 내러티브의 문제만은 아니다. <애프터썬>은 그 어떤 정보(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추천하지 않는다.)도 없이, 마치 시간을 때우러 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처럼 보길 권한다. 그러니 이 글도 가급적이면 <애프터썬>을 관람한 사람이 봤으면 한다. 이건 나 역시도 이 영화의 주변부만 언급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글을 다시 시작해 보자.
이상한 일이다. 표면상의 <애프터썬>에서 일어나는 일과 별개로 불안이란 감정이 첫 장면에서부터 맴돌기 때문이다. 그 불안감의 중심에는 우스울 정도로 당연히, 소피(프랭키 코리오)와 캘럼(폴 메스칼)의 관계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정말로 이 둘의 관계 때문에 불안한 지조차 우리는 추측에 맡길 수밖에 없다. 어느 것도 확실히 지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애프터썬>을 누군가의 불완전한 시선이나 기억에 관한 영화라고 하기에도 이상하다. 특정한 한 사람의 기억이나 시선이라기엔 각자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프터썬>은 사실 두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둘은 서로의 운명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캠코더의 기록이 끼어든다. 캠코더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시선을 교환할 수 있는 장치다. 꿈속에서 둘은 캠코더를 매개로 대화를 한다. 그것은 일종의 끝없는 서신교환이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의문을 담은 편지들을 보며 둘은 그날의 바다를 바라본다. 이는 마치 기억에 대해 ‘애프터썬’을 바르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태양이 피부를 태울 만큼 너무 밝을 때 그것을 막아주는 ‘애프터썬’ 말이다. 공교롭게도 <애프터썬>은 35mm 필름으로 찍었다. 필름에 빛이 노출되면 이를 두고 ‘필름이 탔다’고 표현한다. 필름을 기억의 질료라고 본다면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영원한 의문을 품은 채 과거의 사람들을 소환하여 함께 꿈꾸는 것, 그리고 그 끝없는 서신교환 속에서 각자의 답변을 찾아가는 것은 오직(아니, 아직까지는)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영화를 본다는 것은 꿈을 꾸는 행위와 비슷하지 않을까.(영화관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애프터썬>은 마찬가지로 어떠한 지시도 하지 않은 채 영화의 물성을 체화하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함께’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