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Mickey 17, 2025)
봉준호는 사실 말보다 입이 중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동안 언어의 엇갈림을 통합하는 통역의 중요성이나 장광설을 강조하는 것이 무색하리만큼 <미키 17>은 입에 주목하는 것만 같다. 초반 미키 17(로버트 패틴슨)은 마마 크리퍼의 입을 통해 들어가고, 전반부 내내 식량의 중요성에 대해 떠들고, 상벌을 모두 음식을 두고 하며, 미키 17을 두고 불량식품이어서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대사 역시 그렇다. 그러니 <미키 17>에서의 입은 욕망의 통로다. (프로...토스 맙소사!)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키 17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통로가 입이다. 그러니 그는 입을 다물게 되는 순간, 그러니까 멀티플의 분기점이 일어날 때까지 쉴 새 없이 떠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입의 영화로 진행되는 세계는 별안간 멀티플의 분기점을 오게 되며 손가락의 영화로 바뀐다. 실현 직전의 三 Island 장면을 보자. 나샤(나오미 앳키)의 입은 미키 17과 키스하고 있으나 그녀의 손은 미키 18(로버트 패틴슨)의 성기로 향한다. 과연 그 말대로 미키 18은 손가락을 쓰는 인물이다. 그토록 시끄럽게 떠들던 17과는 달리 18의 내레이션은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다. 도날드 윤.. 아 아니,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을 죽이는 것 역시 다름 아닌 미키 18의 손가락이다. 그는 '18'(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유일한 한국어 대사라고 생각함) 버튼을 눌러 케네스를 죽인다. 미키 18의 죽음으로 멀티플 상황이 끝나게 되면, 이제 그 손가락은 미키 17이 이어받아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쓴다. 분리되었던 입과 손가락이 마침내 합일하여 손가락으로 익스펜더블을 폭파시키는 것이다. 봉준호는 대'딸깍'의 시대를 온몸으로 학습한 것은 아닐까? 힘들이지 않고 목적을 이루는 주체에게 가하는 멸칭인 '딸깍'처럼, 손가락의 영화로 진입한 <미키 17>의 후반부는 모든 것이 쉽다. 그것은 전반부 미키 1(로버트 패틴슨)부터 미키 16(로버트 패틴슨)까지의 미키를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와 닮아있다. 딸깍 스위치만 누르면 리프린팅 되는 미키처럼,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혁명도, 낯선 존재와의 소통도,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식도 모든 것이 버튼 하나 누르면 끝나는 것처럼 딸깍거린다.
이처럼 <미키 17>은 입의 영화로 시작해서 손가락의 영화로 끝나면서 스스로를 지목한다. 미키가 겪었던 고통을 대하는 자세가 사실 이 영화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요, 나아가 감독과 스태프들을 소모품 취급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을 향한 해학적이지만 준엄한 일갈이다. 이와 같은 괴악한 농담을 2시간 20분을 듣다 보면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통렬한 자기반성과 동시에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해 사자후를 날리는 영화가 최근에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