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선강이가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내가 가장 먼저 찾는 게 있다. 담임교사와 매일 주고받는 일일 연락장에는 선강이의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폭군 도마뱀’이라는 뜻을 가진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는 선강이의 ‘최애캐’다. 생애 처음 동생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충격과 혼돈 속에서 첫째는 불량 영아, ‘티라노 선강’이 되어버렸다.
“선강이가 오늘 오전 내내 울었어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누워서 울고, 달래주면 조금 놀다 다시 울고. 관찰해보니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무조건 울더라고요. 울음으로 해결하려고 했어요. 울음소리도 엄청 커졌어요.” (4월 9일, 일일 연락장 by 담임교사)
처음 어린이집에 첫째를 보낼 때만 해도 ‘애들끼리 많이 싸울 텐데 그래도 우리 애가 맞는 것보단 때리는 게 마음이 덜 아프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선강이가 친구를 밀치고 깨물며 급기야 친구 얼굴에 상처까지 냈을 때는 ‘차라리 맞고 오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웠다. 그러던 선강이가 6월을 며칠 앞두고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선강이가 밝아졌어요. 친구들하고 다툼도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제게 장난도 치고 의사 선생님으로 변신해 치료해준다고 오늘 청진기를 몇 번이나 대고 웃던지 너무 귀여웠어요.” (5월 27일, 일일 연락장 by 담임교사)
암울한 4~5월을 보냈지만, 선강이 덕분에 명랑한 6월을 시작했다. 창조주는 왜 인간이 세 살 이전의 기억을 망각하도록 창조했을까? 이는 창조주의 크나큰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부모가 되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부모다워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 시간 3년. 이 시기에는 부모의 실수를 아이가 기억하지도 못한다.
“첫째 아이가 3년간 초짜 부모의 실수를 용납하며(기억하지 않으며) 기다려준다면 둘째 아이도 분명 3년간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해줄 거야.” 아내에게 내가 건넨 위로였다. 아내는 질투심으로 예민해진 첫째에게만 온통 매달려 둘째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부부는 둘째가 기억하지 못할 때 마음껏 첫째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사랑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첫째도 둘째를 마음껏 예뻐하지 않을까? (둘째에게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둘째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 수가 첫째보다 현저히 적다.)
“선강이는 모범생이에요. 반에서 가장 어린 여동생을 대하는 것을 보면서 동생과 잘 지내는지 아닌지가 느껴집니다. 제가 친구들 밥 먹여주는 게 부러웠나 봐요. 혼자서도 잘 먹던 선강이가 안 먹는다고 밥을 밀어내더라고요. 선생님이 5번만 먹여주겠다고 하니까 잘 받아먹고 남은 밥도 혼자 잘 먹었어요.” (6월 24일, 일일 연락장 by 담임교사)
선강이는 온순한 초식공룡 스테고사우루스도 좋아하는데 6월 말이 되자 ‘티라노 선강’에서 점점 ‘스테고 선강’으로 변해감을 느꼈다.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과 담임교사의 세심한 보살핌이 합쳐진 결과였으리라. 고마운 6월이었다.
7월을 며칠 앞두고 기쁜 소식을 들었다. 4월 30일에 출간한 《서른 넘어 찾아온 다섯 가지 기회》가 두 달 만에 3쇄를 찍는다는 것이었다. 입소문으로 이뤄낸 쾌거라 더 의미가 깊었다. 게다가 겹경사가 있었으니.
“선강이는 부모님이 항시 신경 써주셔서 올바르게 잘 성장할 거예요. 다른 영아들보다 선강이가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아이인 것 같아요. 우리 선강이가 반에서 최고예요. 1등이죠. 모든 열심히 잘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7월 14일, 일일 연락장 by 담임교사)
충격을 극복해가는 첫째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하지만 또 반전이 있었으니, 여름마다 병치레는 하는 첫째가 여지없이 병원 신세를 지고 말았다. 잠시 선강이의 병력을 읊어보겠다.
<2018년 1월 2일생 김선강 선생의 병력>
- 2018년 여름, 열경련으로 119구급차 타고 응급실 입원. 눈 돌아가고 의식 잃는 모습에 식겁했다. 아이가 잘못될까 봐 소리 지르는 아내를 진정시키랴 놀란 내 마음도 달래랴 하얗게 불태운 하루였다.
- 2019년 여름, 수족구병으로 심한 탈수와 폐렴 증세로 입원. 당시 머리숱이 많지 않아 마치 못 먹은 새끼 독수리 같은 몰골로 우리 부부의 눈물을 쏟게 했다.
- 2020년 여름, 폐렴 증세로 링거 맞음. 그런데 많이 의젓해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제는 본인도 연례행사 정도로 체념한 것은 아니었을까?
첫째가 아플 때 3가지 특징이 있다. 여름마다 아프고, 주말이 다가올 때 아프며 아플 때는 무조건 엄마 껌딱지가 되는 것이다. 아픈 아이에게 아빠는 배터리 나간 스마트폰처럼 아무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병든 아이가 엄마한테 찰거머리처럼 붙어있으니 아내도 점점 병들어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내가 아무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이러려고 가장이 되었나 자괴감이 든다.
첫째가 아프니 둘째도 따라 아팠다. 다행히 코로나 감염으로 의심될만한 열은 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둘째가 아프니 다시 나을만했던 첫째가 아팠다. 거의 매일 병원으로 출근하다시피 7월 한 달을 정신없이 보냈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 가사처럼 간절하게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라는 기도로 보낸 7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