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못 쉬겠어요

부모의 자기희생

"숨을 못 쉬겠어요."

전 세계를 울린 조지 플로이드의 마지막 말 앞에는 한 단어가 더 붙어있었다. "Mama! Mama! I can't breathe."

50에 가까운 나이의 조지 플로이드가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엄마'를 부르짖었다. 비극적이다. 언어의 한계로 비참한 심정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처절하다.

"엄마! 숨을 못 쉬겠어요."

가방에 갇혀 고통을 호소하는 9살 의붓아들을 향해 계모는 가방 위에 올라가 날뛰고 가방 속에 뜨거운 헤어드라이어 바람을 넣었다. 얼마 전 천안에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이런 살인 행위를 계모는 "훈육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살인 현장에는 계모의 두 친자녀가 있었다. 의붓아들에게는 죽는 법을, 친자녀에게는 죽이는 법을 가르치는 게 훈육이라고? 도대체 누가 누구를 훈육한단 말인가!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육체적으로 숨쉬기도 불편한 요즘, 소외된 인권 말살 소식들에 마음 깊은 곳의 숨구멍이 턱 막히는 것 같다.

훈육의 사전적 정의는 '덕으로써 사람을 인도하여 가르치고 기름'이다. 덕이란 '도덕적, 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인격적 능력'이다.


덕은 자기희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고 불편함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쉽고 편한 길만 걷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택하는 방법은 타인 희생이다. 타인을 부정하고 자기를 긍정하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른도 아이도 엄마를 찾았다. 엄마의 사랑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던 한 어른은 엄마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자신의 존재를 엄마에게 내맡길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학대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던 한 아이는 어땠을까? 울부짖을수록 엄마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할 뿐이었다.


그들은 소외된 인권의 희생양이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가해자 편에 섰던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가해자를 향한 분노와 혐오를 넘어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심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는 지금 자녀의 구원을 위해 자기희생을 추구하는가? 자녀를 희생시키는 부모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기희생 끝에 남는 것은 사랑이지만, 타인희생 끝에 남는 것은 증오밖에 없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6,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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