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에 산파한테 출산을 맡긴다고?

2018년 1월 2일 밤 9시 54분, 아들의 울음소리가 병원 복도까지 울려 퍼졌다. 우리 부부는 산파의 도움을 받아 출산의 모든 과정을 부부가 함께 겪어내는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했다. 인생을 최대한 자연의 섭리에 맞게 살아보자는 가치관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자연주의 출산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군대 동기 중에 지리산 산골 마을에 사는 친구와 전역 후 9년 만에 재회한 적이 있었다. 여러모로 삶의 본보기가 되는 친구인데 둘째 아이를 집에서 산파를 불러 출산했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아내가 첫째를 병원에서 낳을 때 안 좋은 기억이 있어 태아에게 가장 덜 고통스럽고 자연스러운 방법인 자연주의 출산을 원했다고 했다.

출산 과정을 사진으로 보여줬는데 제왕절개와 자연분만밖에 몰랐던 우리 부부에게는 신세계였다. 병원에서는 엄마와 태아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출산을 진행한다. 하지만 효율을 위해 엄마와 태아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방법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자연주의 출산은 태아의 시간을 존중하면서 엄마가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을 하며 기다려주는 방식이다.

친구는 아내가 진통이 올 때는 산파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힘을 주고 진통이 사라지면 책도 보고 집안일도 하면서 서두르지 않았다고 했다. 온 가족이 함께 엄마와 태아를 격려하며 출산이라는 커다란 터널을 함께 통과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첫째 아이가 동생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며 분명 엄마와 동생을 더욱 아끼게 될 것이다.

우리 부부도 자연주의 출산을 희망했으나 긴급 의료가 필요한 만일의 사태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불안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마침 집에서 20분 거리에 자연주의 출산 병원이 있었다. 병실을 안방처럼 꾸며놓고 집에서 출산하듯이 산파가 돕는 방식이었다. 물론 의료진도 대기하고 있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한 덕분에 17시간이라는 길다면 긴 출산 과정을 감수해야 했다. 아직도 병원 가는 길을 지나갈 때면 진통이 와서 추운 겨울 새벽에 병원으로 향하던 장면이 생생하다. 사전에 아내를 위한 마사지와 호흡법 교육을 받았던 터라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위해 열심히 마사지하고 호흡을 도왔다.


우리 부부는 진통에 따라 침대에 눕거나 벽을 잡고 서거나 짐볼을 타고 운동을 했다. 욕조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긴장을 풀기도 하며 이 모든 과정을 반복했다. 산파는 아내를 격려하며 이대로만 하면 5시간 후에 아이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 산파가 예고한 오후 1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오후 2시가 되어도 아이는 깜깜무소식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기약 없는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우리 부부는 점점 지쳐갔다. 놀라웠던 사실은 우리 부부가 잠깐씩 졸며 출산 과정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잠이 온다는 것은 어쩌면 고통을 잠시 잊기 위한 생존 본능이 아니었을까.


중간중간에 고비와 쉬운 방법을 택할 수 있는 유혹이 많았지만, 아내는 이를 악물고 인내했다. 겁도 많고 욕심도 별로 없는 순한 아내에게 그런 깡다구가 어디에서 샘솟았는지. 곁에서 지켜보기 안쓰러워 차라리 아내가 포기해도 괜찮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아내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모성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드디어 아이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분께서 아이 머리를 만져보시겠어요?” 산파의 제안에 얼른 손을 뻗었다. 쪼글쪼글하면서 뜨듯한 아들의 머리가 느껴졌다. “아들아, 너무 수고 많았어. 이제 조금만 더 힘내면 엄마, 아빠 만날 수 있어.” 나는 마음 다해 아들을 응원했다. 아내는 허리가 끊어질 것만 같다며 울부짖었다. 마침내 아내의 울음과 아이의 울음이 교차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자연주의 출산을 해냈다.

“내가 해냈어! 내가 해냈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후 아내가 토해낸 첫마디였다. 17시간에 걸친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출산은 감동의 여정이었다. 아이에 대한 존중은 출산 직후에도 이어졌다. 태맥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며 탯줄을 자르지 않았다. 갓 태어난 조그마한 생명을 아빠 배 위에 올려놓고 안아주는 ‘캥거루 케어’를 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들의 따사로운 손길이 느껴졌다. 아들은 따스한 난로처럼 얼어붙은 초보 육아빠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준비한 편지를 읽는데 심장에 맞닿은 뜨거움이 눈가로 전도되어 두 뺨에 흘러내렸다. 산파와 간호사는 아내가 자연주의 출산을 해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대단하다며 아이의 탄생을 축하했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미리 준비해 간 편지를 읽었다.


“지희야, 너무 수고했고 잘했어.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도 꿈만 같은데 부모가 되었어. 선강이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강한 사람'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잘 자라 갈수록 기도하는 부모가 되자. 사랑해, 여보!

"선강아, 수고 많았어. 우리 가정에 온 걸 환영해. 아빠는 이 순간을 꿈꿔왔어.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날이야. 엄마 아빠가 될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고, 사랑해 우리 아들!”

아내 말에 의하면 해산의 고통은 생리통의 1만 배 정도로 느껴졌다고 한다. 산통을 직접 겪을 수 없는 남자의 몸인지라 아내가 표현한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출산 후 며칠이 지나 우연히 어느 산부인과 의사가 쓴 글을 통해 산통을 아주 생생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산통을 '남자의 중요 부위를 있는 힘껏 가격 당했을 때의 고통이 온종일 계속되는 것'이라 비유했기 때문이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연주의 출산이라고 하면 흔히 촉진제, 관장, 제모, 무통 주사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진정한 자연주의 출산은 엄마와 아이를 존중하는 정신에 있다. 출산 계획서에 맞춰 진행하다 엄마가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무통 주사도 맞고, 필요한 경우 촉진제를 쓰기도 한다.


나중에 아내에게 의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왜 거부했냐고 물으니 자연주의 출산이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라는 위대한 이름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자연주의 출산을 통해 나는 아내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고, 아이를 존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