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상사는 시간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상사는 편집증적 완벽주의에 빠져있었다. 엄연히 한정된 자원인 시간을 그는 화수분처럼 여겼다.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고 하지만, 일을 엉덩이로 하는 것은 비극이다.
팀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딱히 중요한 일도 없고 할 일도 다 했는데 왜 맨날 야근이야!” 선임으로서 중간자였던 나는 상사와 팀원 사이에 끼어 양쪽의 속마음을 다 들을 수 있었다. 상사의 불만은 더 컸다. “아니, 상사가 자리에 앉아있는데 요즘 애들은 어떻게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열정이 없어, 열정이!”
신입 사원 시절이 떠올랐다. 퇴근도 안 하고 회사 휴게실에서 자면서 일할 정도로 그놈의 열정이 있었다. 가정을 버리고 회사에 올인하는 상사의 사고방식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삶이었다. 대형 유통점포 최연소 영업팀장에 본사 최연소 바이어가 되기까지 괴물 같은 시간 속에 질주했다.
그렇게 7년 차 직장인이 된 어느 날, 낭떠러지에 맞닥뜨렸다. 준비 없는 이별 앞에 내 마음은 한없이 추락했다. 평소 건강했던 어머니가 난소암으로 6개월 만에 돌아가신 것이다. 출근 시간은 오전 7시, 퇴근 시간은 기약 없는 살인적인 회사 생활로 아픈 어머니를 제대로 돌볼 겨를이 없었다. 하루에 사랑하는 가족과 마주 앉아 밥 한 끼도 못 먹는 삶이 비참하기만 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람에 날리는 먼지 같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달려온 것일까?’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잃어야 얻고 죽어야 산다는 인생의 역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성공과 행복이라는 허상에 쫓기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하루에 밥 한 끼 나누는 삶’의 가치를 좇기로 결단했다.
몇 년 전 ‘땅콩 회항’ 사건으로 한창 뜨거웠을 팀 전체가 강제로 한 달 동안 뜨거운 찜질방에서 합숙한 적이 있다. 성과를 못 낸다는 이유로 퇴근도 하지 말고 일하라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찾고 버텼던 나였다. 하지만 삶의 우선순위가 확실해지자 시간을 똥 취급하는 상사에게 더 이상 동의할 이유가 없었다.
“껌껌할 때 나와서 껌껌할 때 들어가니 애 자는 모습만 보잖아. 그러니까 애가 아빠 얼굴을 몰라. 애한테 나는 아빠가 아니라 아저씨야.” 아빠가 된 선배들의 신세 한탄을 듣고 있자니 나도 아이에게 아저씨가 될까 두려웠다. 지금 하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 할 것인가? 어머니의 시간이 내 심장에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과감히 육아휴직 6개월을 신청했다. 생후 4개월 된 첫아이에게 아빠는 아저씨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남자의 육아휴직은 조직 로열티를 포기한다는 선포와 다름없다. 회사 생활 10년 차,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나는 지쳤고 또 분노했다. 동시에 무엇이 중요한지 또렷이 알고 있었다.
2018년 4월, 그렇게 나는 육아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