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나는 큰 고민이 없었다. 별다른 꿈도 없었다. 냇물에 떠내려가는 종이배처럼 그저 사는 대로 생각하며 살았다. 취업이라는 거대한 바위에 난파될 위험이 있었지만, 뿌연 물안개가 낀 것 같은 현실은 실감 나지 않았다. 벼락치기라는 치트키만 믿고 시험 전날까지 신나게 놀듯 치기 어린 20대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막연한 불안감만 있을뿐 부담감은 없었다.
삶의 시험은 서른과 함께 찾아왔다. 29살의 마지막 달이 되자 몽롱한 현실 감각에서 깨어났다. 벼락치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감이 들었다. 설렘으로 맞이한 스무 살 성인식과는 전혀 달랐다. 서른과 어른, 자음 하나만 다른 단어가 하나로 겹쳐 보였다. 왠지 모를 책임감에 더 이상 어리광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나이. 불청객처럼 찾아온 서른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산 걸까? 이룬 것 없이 이렇게 나이만 먹는 건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나? 의미 있게 살고 싶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할 수 있을까?’ 머릿 속에서 쳇바퀴 도는 서른의 질문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남들만큼 살지 못하는 30대의 나를 보며 남들처럼 살지 않겠노라고 객기를 부렸던 20대가 그리웠다. 나는 그대로인데 그대로여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이 중압감. 나이 앞자리 숫자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왜 이런 변화가 온 것일까?
이 정체불명의 증상을 앓으며 몇 년을 보내고 나서야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되었다.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발견한 정사각형 모양의 책. 표지에는 익살스러운 펭귄 캐릭터가 독특한 제목과 잘 어우러졌다. 전적으로 호기심에 구매한 책을 별생각 없이 펼쳤다가 숨겨둔 비자금을 발견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나의 증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자세히 해설까지 해주는 것이 아닌가.
어른병이란
서른이 되자 찾아온 증상의 병명은 다름 아닌 ‘어른병’이었다. 어른병이란 21~121세 사이의 인간에게 흔히 발생하는 질병으로 주요 증상으로는 만성적인 둔감함과 가벼운 우울증,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심한 스트레스가 있다. 각종 청구서, 과도한 책임, 지루한 업무 등이 증상을 악화시키는데 어른병에 걸린 환자들은 불만이 많고 조바심을 내는 듯 보이기에 함께 있으면 즐겁지 않다고 한다.
어른병의 개념을 정립한 제이슨 코테키는 어른병과의 전쟁을 선포한 예술가이자 대중 연설가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될 필요는 없어》라는 그의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천진난만함을 추구하는 괴팍한(책을 읽을수록 그가 괴팍한 것인지 내가 괴팍한 것인지 헷갈리지만) 인간이다. 그는 ‘디저트를 밥보다 먼저 먹으면 안 된다, 양말 두 짝은 항상 맞춰 신어야 한다, 고급 그릇은 특별한 때를 위해 아껴 두어야 한다’ 등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규칙을 깨뜨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어른병 탈출을 위한 40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규칙 중 ‘나잇값을 해야 한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통상적으로 30대에는 안정된 직장과 승진, 결혼과 출산 등 삶의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그렇기에 남들처럼 나도 이런 변화를 반드시 겪어야만 한다는 관념이 나잇값이라는 이름으로 치환되는 게 아닐까? 나에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잇값이 피부로 와닿은 시기가 바로서른이었다. 하지만 나잇값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혼란스러웠다.
유교 사상이 짙게 깔린 우리 사회에서 흔히 공자가 나이대별 행동강령을 정의한 것으로 나잇값을 이해하기도 한다. 논어에서 15세는 ‘지학(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 30세는 ‘이립(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 40세는 ‘불혹(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 50세는 ‘지천명(하늘의 뜻을 깨닫는 나이)’, 60세는 ‘이순(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나이)’, 70세는 ‘종심(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 나이)’이라 칭한다.
그런데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실시한 ‘사회적 나이와 어른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공자의 나잇값이 현재와 이질감이 있다는 의견이 흥미로웠다. 특히 30대를 기점으로 현재 고연령층의 이미지는 나이대가 높아질수록 이질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전국 10대에서 60대까지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전체 응답자 중 44.2%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사회적 나이가 시대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 사회에 통용되던 “30대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 “40대에는 내 집이 있어야 한다” 등의 고정관념도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평균 수명도 길어졌는데 사회적 나이 또한 다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아진 것이다. 절대적으로 특정 나이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령 따위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공자가 나이 듦에 따라 깨달은 세상 이치를 일반화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동안 우리를 지배해온 나잇값의 마법에서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병에서 탈출하려면
제이슨 코테키는 “당신답게 행동하여 새로운 사고방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생각을 통해 새로운 행동방식을 만들어가는 것보다는 수월하다”라며 “지금부터 나잇값대로 행동하기보다는 당신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행동해보자”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책 전체에 걸쳐 ‘차 안에서 춤출 자유를 스스로 허락하라’든지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 잠옷 바람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라’면서 시종일관 유쾌한 메시지로 존재하지도 않는 규칙을 깨뜨릴 것을 권고한다.
나잇값처럼 삶 속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규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규칙, ‘쌀 한 톨도 남기지 말라’가 떠올랐다. 쌀 한 톨 생산하기까지 흘리는 농부의 피땀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을 가정에서도, 유치원에서도 듣고 또 들었다. 타고난 식성도 좋았는데 순응을 잘하는 성격상 정말 쌀 한 톨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어른들에게 복스럽게 잘 먹는다는 칭찬을 받았다. 나에게 식사는 점점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가 아닌 그릇을 비우는 행위에 가까워졌다. 지금도 그릇에 남아있는 음식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느 날 회사 동료들과 식사를 하다 의문이 들었다. 동료 A는 1만 원씩 하는 밥값을 내고도 반절이나 남기는가 하면, 동료 B는 맛이 없다며 거의 입에 대지도 않는 게 아닌가. 그들에게는 농부가 흘린 피땀에 속죄하는 마음이 정녕 없는 것일까. 돈이 아까워서라도 그릇을 싹싹 비우는 나에게 그들은 이방인 같았다. 이질감을 좁히고자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돈 주고 먹는데 그렇게 남기면 아깝지 않아요?” 이어 기상천외한 답변이 돌아왔다. “왜요? 오히려 돈 주고 먹으니까 내 마음대로 남겨도 되죠.”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이 날씬한 이유를.
농부가 흘린 피땀 외에도 자원 낭비로 인한 환경 오염,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죽는 기아 난민 등 그들을 설득할 갖가지 논리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그들이 무전취식을 한 것도 아니었고, 되레 나에게 건강을 생각해 소식하라고 하면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존재하지도 않는 규칙에 얽매여있는 나만 초라해질 뿐.
문지방 밟지 마라, 밤에 손톱 깎지 마라, 빨간색으로 이름 쓰지 마라,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난다 등등 찾아보면 생활 속에 허망한 규칙들이 즐비하다. 직장에서는 또 어떤가. 월요일에는 극도로 긴장해야 한다, 늘 바쁘지 않으면 안 된다, 일할 때는 인상 쓰고 진지해야 한다, 휴직은 사치다 등등 취업 규칙에도 없는 규칙에 얽매여있지는 않는가?
어른병 극복을 위해 주의할 점
제이슨 코테키의 명랑한 반란을 통해 어른병 극복을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규칙을 깨뜨려야 한다'라는 또 다른 규칙을 만들어 집착하는 모순에 빠지지 말 것. 그리고 어른병에 저항하는 것과 '피터팬 증후군'을 혼동하지 말 것이다.
피터팬 증후군은 심리학자 댄 카일리가 동화 속 피터팬이 네버랜드에서 영원한 어린이로 남는 것에서 착안해 명명했다. 이 증상은 어른인데 여전히 아이 같은 특성을 가진 '어른아이'에게 나타난다. 어른아이는 어른으로서 존재감이 약해 책임은 회피하고 권리만 챙기려 한다. 이들은 취업이나 결혼을 꺼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캥거루족', '자라족', '모라토리엄 인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직장에서도 피터팬 증후군을 발견할 수 있다. 팀장으로 승진을 거부하고 팀원으로 머물며 시키는 일만 하려는 고인물이 대표적이다. 예로부터 임원은 직장인의 꿈이었지만, 요즘 직장인은 만년 부장을 꿈꾼다.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계약직 임원보다 비교적 안정적인 정규직 부장이 좋다는 것이다. '월급 루팡'이라 욕먹어도 후배가 상사여도 괜찮다는 식이다.
기업이라고 다를까?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회피한다. 각종 혜택이 사라지고 각종 규제가 생겨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기업 쪼개기, 역분식회계 등 편법이 횡행한다. 어찌 직장인과 기업만을 탓할 수 있겠는가. 사회 구조가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고민하는 힘
어쩌다 서른, 내가 하는 고민이 맞는 고민일까?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는 규칙 때문에 파생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관성적으로 어른아이로만 머무르려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서른, 아이의 순수함과 어른의 성숙함 사이의 균형감을 찾아가는 시기가 아닐까?
지구상 생명체 중에 유일하게 인간만 고민이라는 것을 한다. 《고민하는 힘》의 저자 강상중 교수는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며, 고민하는 힘은 살아가는 힘”이라고 했다. 죽은 자는 고민이 없다. 지금 나의 고민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다. 고민하고 있다면 잘살고 있다는 뜻이다.
고민은 관념에 대한 저항이다. 어떤 고민이든 결국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의 안내자가 될 것이다. 다만 나잇값에 얽매여 남들과 비교하느라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나다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목적지에 조금 더 빨리 도달하는 길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