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면

팀 페리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브런치 게시글에 달린 장문의 댓글

2019년 초부터 브런치에 글을 써왔다.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인사이트 레포트는 꽤 도움이 된다. 독자층 분석을 비롯해 조회수와 완독률 등 양질의 정보를 얻는다. 수치화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나는 구독자의 관심이 집약된 댓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혼 때 아내와 독일에서 한 달간 살았던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장문의 인상적인 댓글이 달렸다. (느낌을 살리기 위해 원문 그대로 옮긴다.)

“글 잘 읽었습니다 ㅎㅎ 그런데 아버님의 병세가 악화되었는데 저는 당연히 본인이 병간호 하는 게 첫 번째 머리에 떠오르는 옵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는 여동생 그리고 두 번째는 전혀 남남인 아내분에게 간병을 맡기려고 하신 건가 싶어서…. 전 또 아내분이 전업주부인 줄 알았는데 심지어 맞벌이 ㅎㅎㅎ…. 뭐 그래도 마지막에는 본인이 간병하기로 한 거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나…. 아무튼 글 잘 읽었습니다. 뭐 80년대생 남자들 그렇게 생각하는 거 그럴 수 있죠 뭐 ㅎㅎ”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로 여동생은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아버지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류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건강 문제로 시술을 해야 했는데 당시 여동생은 학교도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도 관두는 등 심하게 방황했을 때였다. 여동생에게 아버지 병간호를 맡기자니 불안했다.


현실적으로 내가 버는 수입이 아내보다 많았기 때문에 생활비, 병원비 등을 고려하면 나는 계속 일을 해야 했다. 게다가 아내는 부모님 일을 도와드렸기 때문에 나보다는 회사의 눈치를 덜 봐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큰 짐을 떠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결국 내가 가족 돌봄 휴직 3개월을 신청하여 간병인을 자처했고, 아버지는 시술 후 빠르게 회복했다. 그렇게 3개월 중 남은 1달간 우리 부부는 독일로 떠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썼던 글인데 엉뚱하게 성평등 프레임으로 불편해하며 에둘러 쓴 혐오 표현까지 담긴 댓글이 달린 것이다. 물론 배경을 자세히 몰랐기에 오해할 수도 있다. 좋게 보면 글을 자세히 읽었기 때문에 조롱과 비난도 할 수 있고, 그만큼 본인의 시간을 투자한 관심이 아닐까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이렇게 답글을 남겼다.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그런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표현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부족하여 짧은 글에 녹여내지 못한 복잡한 상황이 있는 것이니 색안경은 잠시 벗어두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요새 날씨가 좋아서 맨눈으로 보는 세상이 더 아름답거든요.^^”



프로불편러들의 사회

맥락에 상관없이 단어 하나만 꼬투리 잡아 비판을 위한 비판이 횡행하는 정치판, 아무 대안도 없는 투덜거림으로 도배된 SNS 등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심심찮게 투덜이 스머프들을 목격한다. 현대사회는 ‘프로불편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프로불편러란 쓸데없는 트집 잡기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을 비꼬는 신조어다. 사회 통념상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데도 프로불편러는 “나만 불편해?”를 외치며 투덜투덜 댄다. 오래전부터 날카로운 비판이라는 착각 속에 불평만 잔뜩 늘어놓는 SNS 친구가 있어 조용히 거리두기 기능을 설정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부정적인 생각도 전염성이 높기 때문이다. SNS에서도 거리두기가 필요한 이유다.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은, 우리 안에도 프로불편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분명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야.’ ‘너는 특별하지 않아.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야.’ 어떤 일을 하려는데 머릿속에서 부정적인 말이 들리는 듯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내 머릿속 원숭이 죽이기》의 저자 대니 그레고리는 내면의 성가신 목소리를 ‘내 머릿속 원숭이’라고 규정하고 원숭이와 싸워 이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이렇게 소개한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라. 행동을 개시해라. 당장.”


나는 책 한 권을 쓰기까지 내 머릿속 원숭이와 수없이 싸워야 했다. 원숭이는 끽끽거리며 나를 조롱했다. ‘네가 책을 쓴다고? 그동안 책은 몇 권이나 읽어봤는데? 주제를 알아야지. 유명한 사람들이나 책을 쓰는 거지 네 책을 누가 사서 볼 것 같아? 끽끽.’ 원숭이의 팩트 폭력에 번번이 나는 반박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참패했다. 나중에 언젠가는 반드시 책을 쓰리라 다짐하며 지금의 패배감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

그때 나를 끌어당긴 책이 있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의 저자 팀 페리스는 ‘기업가정신’을 강의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는 마흔 번째 생일에 문득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지,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현자들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유발 하라리, 스티븐 핑거, 톰 피터스 등 133명의 현자들에게 답을 얻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는 이렇게 탄생했다.


책에서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는 인생의 좌우명을 이렇게 소개한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줄 것인가?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할 날이 있겠는가?” 이어 그는 지금의 삶에 집중하는 방법으로 5가지를 당부한다. 첫째, 새로운 주제나 영역, 관심사를 찾을 것. 둘째, 자신의 직관을 따를 것. 셋째, 자기만족에 그치지 말고 더 큰 성취로 확장하는데 집중할 것. 넷째,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말고 충실할 것. 다섯째,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생각할 것.


또 한 명의 현자 나발 라비칸트는 전 세계 비즈니스맨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투자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메멘토 모리, 당신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는 우리가 혼란스러운 이유를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명확한 답, 즉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삶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메멘토 모리 외에도 깨달은 진리를 하나 더 제시한다. 바로 “나는 아직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지 못했다”라는 생각이 삶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했기에 돈을 버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의 신뢰를 잃었기에 독립할 수 있었으며 병에 걸려봤기에 건강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가 “모든 것을 이미 이루었거나, 모든 것을 끊임없이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처럼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에 등장하는 133명의 현자들은 내 머릿속 원숭이에 대적할 확실한 논리를 제공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소중하게 간직해온 일이 있는가? 꿈꿔온 삶의 방식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시작하라. 지금 하지 않으면, 대체 언제 할 것인가?”


원숭이: “지금 네가 하는 일도 바쁜데 언제 책을 쓰려고 그래?”
나: “나중에는 바쁘지 않다는 보장이 있어?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라고?”

원숭이: “정신 차려! 책을 훨씬 더 많이 읽고 내공을 쌓아야 사람들이 네가 쓴 책을 비웃지 않을 거야.”
나: “만일 내일 내가 죽으면 책은 누가 쓸 건데? 부족하면 어때. 평범한 사람이 진솔하게 쓴 책이 오히려 평범한 독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도 있잖아.”

원숭이: “괜한 헛수고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으면 어쩌려고?”
나: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책을 읽고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만족해. 또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계속 성장하면서 꾸준히 책을 쓰면 되잖아.”

원숭이: “그래도!”
나: “그래서! 지금 당장 쓰기 시작할 거야.”


마침내 날뛰는 원숭이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 성공했다. 혈투 끝에 생애 첫 책을 전리품으로 쟁취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결단했을 때 결핍으로 인한 간절함이 현재를 사는 동력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부정적인 생각으로 허비했던 시간을 되찾을 수 있었다.


프로불편러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요즘 세 살짜리 아들이 옛날이야기에 푹 빠져있다. 특히 아들은 이야기에 당나귀가 등장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옛날에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장에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앞에서 당나귀 고삐를 잡고 아들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주막을 지날 때 장사꾼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멍청한 사람들 좀 봐. 당나귀를 타고 가면 편할 텐데.” 그 말에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 등에 태웠다.


얼마쯤 가다 보니 정자에 노인들이 앉아있었다. “요즘 젊은것들이란! 아버지는 힘들게 걷고 있는데 아들이란 놈은 편하게 앉아서 가네.” 아버지는 얼른 당나귀 등에 올라탔고 아들을 걷게 했다. 또 얼마쯤 갔을 때였다. 아기를 업은 아낙네들이 빨래터에 모여있었다. “가여워라. 조그만 아이의 다리가 얼마나 아플까. 매정한 아비 같으니라고!” 이 말을 듣자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당나귀를 타고 갔다.

얼마쯤 갔을까 우물가에 모인 동네 아가씨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조그만 당나귀 위에 두 사람이나 타고 가잖아. 당나귀가 너무 불쌍해. 저렇게 가다간 얼마 안 가서 쓰러질 것 같아.” 아버지는 몹시 난감했다. 한참 고민하다 결국 아들과 함께 당나귀를 짊어지고 가기로 했다. 힘이 빠진 아버지와 아들은 다리를 건너다 그만 당나귀를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솝우화 <팔려가는 당나귀>의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어릴 때는 우유부단한 아버지처럼 팔랑귀가 되지 말라는 교훈을 얻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수군대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쏠린다. 이처럼 내가 하려는 일을 불편하게 여기는 프로불편러는 곳곳에 널려있다. 심지어 내 안에도 도사리고 있다.


톨스토이는 소설 《세 가지 질문》에서 내 생에 가장 중요한 시간, 사람, 그리고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세 가지 질문의 답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한다. 즉 지금 이 순간, 지금 만나는 사람,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나는 죽음을 직시하게 되었다. 누구나 한번은 죽는데 그 시기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살아있는 현재에 집중하며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했다. 내 삶의 가장 큰 존재였던 어머니를 떠나보낸 상실은 지금의 삶을 지탱하는 용기로 치환되었다.


혹시 지나간 과거 때문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가? 프로불편러는 우리를 과거와 미래에 머물도록 유혹한다. 우리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시간이 오직 ‘지금’뿐이기 때문이다. 내 안팎에서 날뛰는 프로불편러를 쓰러뜨릴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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