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한국영화제 있는 거 알아?

자코모, 니키 그리고 나 (1)

by Sean

대나무 숲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옆 어떤 긴 머리 아저씨는 거미줄에 있는 거미를 정성스럽게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궁금해하던 그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 - 다른 사람들 전부 대나무를 찍느라 정신없는데 너는 거미를 찍는구나.

긴 머리 - 응. 맞아, 나는 거미가 좋아. 난 이탈리아에서 왔어. 이탈리아에서는 거미가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거든. 아무튼, 나는 자코모(Giacomo)라고 해. 너 어느 나라에서 왔어?

나 - 난 한국

자코모 - 와! 나 한국영화 엄청 좋아해. 혹시 너 Far East Film Festival이라는 영화제 알아?

나 -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자코모 - 나는 베네치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트리에스테라는 도시에 살아. 그리고 베네치아와 트리에스테 사이에 우디네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서 매년 Far East Film Festival이라는 영화제를 열어. 영화제 이름 그대로 아시아의 영화들로만 약 열흘 동안 진행되는데, 나도 자주 가.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니스 - 우디네 - 트리에스테


나 - 기억에 남는 한국영화 있어?

자코모 - 그럼! 지금까지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되는 게 있는데 제목은 네가 아는 거랑 좀 다를 거야. 한국의 유명한 성(last name)이 있고 그 사람의 조난(castaway)이야.

나 - 엥? 그게 무슨...

자코모 - 음. 그러니까. 넌 성이 뭐야?

나 - 난 Lee.

자코모 - 그거 말고 한국의 유명한 다른 성 말해봐.

나 - Park, Kim, Choi...

자코모 - 그래! Kim이야. Kim's castaway야.

나 - 김의 조난? 그게 뭐야... 어? 잠깐만. 아! 김 씨 표류기! 혹시 그거 말이야, 한 남자가 다리 위에서 자살한다고 떨어졌는데 섬이잖아?


자코모 - 푸하하하~ (생각만 해도 또 웃긴가 보다) 맞아 맞아, 그 영화. 그게 나한테는 최고의 한국영화였어. 관객상도 받았는걸.

나 - 어, 정말? 그 영화 어땠는데?

자코모 - 메시지가 참 인상적이었어. 현대인 말이야,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많이 외로워하잖아. 영화가 그것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 여자 주인공을 히키코모리로 설정한 것도 좋았어.

나 - 이탈리아 사람 입에서 ‘히키코모리’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신기하다.

자코모 - 내가 일본에도 관심이 많거든. 그 영화에는 모든 게 다 담겨있는 것 같아. 슬픔, 고독, 기쁨, 로맨스, 사회이슈... 그런데 말이야. 그동안 정말 궁금한 게 있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그 섬 있잖아. 정말 존재하는 섬이야?

나 - 응, 맞아. 정말 있는 섬이야.

자코모 -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네. 내가 오늘 너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야. 너 오늘 계획이 뭐야?

나 - 글쎄, 그냥 즉흥여행이라 계획 같은 건 없는데.

자코모 - 그럼, 우리 오늘 같이 여행할래?

나 - 그럴까?

자코모 - 이따 2시쯤에 다른 친구랑 기차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거든. 그렇게 셋이서 다녀도 되겠지?

나 - 그래. 난 좋아.


그렇게 우리는 자코모의 친구를 만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나 - 그런데 네 친구도 이탈리아 사람이야?

자코모 - 아니, She is from Australia. 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났어.

나 - 어? 방금 너 ‘She’라고 했어?

자코모 - 응, 왜?

나 - 여자야?

자코모 - 응.

나 - 아... 너희 둘이 데이트하는데 내가 끼는 거 아니고?

자코모 - 아니야. 아니야. 그런 사이 아니야. 걔도 너랑 같이 여행하면 즐거울 거야.


잠시 후, 학생인데 모델일도 한다는 니키를 만났고, 우리는 자코모의 제안으로 근처에 있는 원숭이 공원에 가기로 했다.



생수를 사려고 들른 편의점에서,


자코모 - 우리 1L짜리 하나 사서 나눠 마실래? 내가 들고 다닐게.

나 - 무거울 텐데 괜찮겠어?

자코모 - 우리가 열심히 마시면 금방 가벼워질 거야.

나 - 그래. 그럼 돈은 내가 낼게.

자코모 - 좋아. 생수를 내 가방에 넣을 테니 대신 내 헤드폰은 잠시 네 가방에 좀 넣어줄래?

그렇게 자코모의 헤드폰이 내 가방으로 들어가고... 그것을 까맣게 잊고 우리는 원숭이 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나 - 니키, 교토에는 여행하러 온 거야?

니키 - 아니, 일본어 배우러 왔어. 대학에서 어학 코스 밟으려고. 일본에 대해서 공부도 좀 하고 싶고.

나 - 아, 일본에 관심이 많은가 보구나.

니키 - 응, 엄마가 일본인이셔. 아빠는 영국인이고.

나 - 일본인 엄마와 영국인 아빠 그리고 너의 국적은 호주?

니키 - 응.

나 - 그래서 엄마의 고향이 궁금한 거구나?

니키 - 그런 셈이지.

나 - 너 혹시 일본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봤어?

니키 - 응. 울룰루 얘기하려는 거지?



나 - 응. 너 거기 가봤어?

니키 - 아니, 아직.

나 - 그런데, 거긴 왜 유명한 거야?

니키 - 지구에서 몇 안 되는 굉장히 신비로운 에너지가 나오는 곳 이래.


우리의 대화를 듣던 자코모가 말을 이었다.


자코모 : 거기서 명상하면 참 좋겠네.

나 : 너 명상해?

자코모 : 응

나 : 혹시, 너 채식주의자야?

자코모 : 응, 너도?

나 - 응, 명상도 하고.

자코모 - 와! 정말 신기하다. 대나무 숲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이 명상하는 채식주의자라니.

니키 - 너희 둘. 정말 신기하다.



- 자코모 : 너 아까 즉흥 여행한다고 했잖아. 그럼 우리 안 만났으면 뭐 했을까?

- 나 : 아마도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겠지. 배고프면 식당에서 밥 먹고, 힘들면 카페에서 쉬다가...

- 니키 : 그런 여행 재미있을 것 같아.

- 자코모 : 여행 준비하는 게 가끔씩은 스트레스받는 일이기도 해.

- 나 : 맞아. 예전에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준비했거든 이왕 가는 거 최대한 많이 보고 경험하려고 하다 보니 가이드북에서 시키는 대로 여행을 하고 있더라고. 그마저도 변수가 너무 많이 생겨서 꼭 계획대로 되지도 않아.

- 니키 : 맞아. 특히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내면 이렇게 새로운 친구들 만나서 같이 여행 다니는 일도 생기고 하니까.

- 나 : 나중에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이 있는데. 그냥 공항에 가는 거야. 목적지도 숙소도 정하지 않고. 공항에서 바로 출발할 수 있는 티켓을 사는 거지. 모든 것을 그냥 운에 맡기는 거야.

- 자코모 : 오! 재미있겠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근처에 있는 호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오나시 허수아비

누워있는 자코모를 찍었는데 그도 나를 찍고 있었다

호수에 도착하니 다들 아무 말 없이 주저앉아 각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나 보다. 재미있었지만 너무 피곤했다. 앉으니 눕고 싶었고 누워보니 곧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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