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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맡아드리려고 했을 뿐인데,

미술관 입장 전 짧은 요청, 다른 반응

by 딥닷컴

“Welcome in!”

“Before heading into our gallery, would you mind if we keep your larger bags in our coat room?”

미술관.png

샌디에고 발보아파크의 작은 미술관.

이곳에서 인턴으로 일한 지도 어느덧 두 달이 넘어간다.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 일 평균 1500여 명에 달하는 다양한 국적의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같은 문장을 건네도, 돌아오는 반응은 다르다. 미묘한 표정의 변화, 눈빛, 말투.

그 찰나의 순간에도, 같은 요청이어도, 참 다양한 반응이 있다.

그 반응들을 구경하며, 문화 차이를 체감하는 일은 꽤 재미있다.


우리 미술관은 규모가 작다. 갤러리 공간 당 30명만 넘어도 북적인다.

그래서 우리 미술관에는 다른 미술관에서는 보기 힘든 특별한 룰이 있다.

작은 가방은 앞으로 매기

큰 백팩은 프런트 데스크 체크룸에 맡기기

이는 동선이 좁은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이 뒤에 맨 가방으로 의도치 않게 작품을 건드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Just with your small bag, we'll ask it be worn towards the front of your body."

"And with a larger bagpack, we'll ask you if we can hold it in our coat room right over here."


좁은 미술관 입구에서 이 특이한 룰을 처음 들었을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Of course!" "Sure thing!" 하며 쿨하게 가방을 프런트 스태프에게 선뜻 건넬 수 있겠는가?

이 짧은 요청 하나에도, 내 눈에는 분명한 문화적 차이가 보였다. 물론 모든 관람객과 상황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반복해서 드러나는 태도와 반응의 결은 확실히 문화권에 따라 달라 보인다.



질문 대신 순응, 이유 없이도 건넬 수 있는 우리의 가방

한국인인 나는, 이 안내 멘트를 처음 들었을 때

빠르게 흘러가는 영어에 잠깐 멈춰 서서, '내 가방이 문제인가..?' 하고 가방부터 돌아봤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아시아권 관람객 분들의 반응은 이런 식이다.

"아, 제 가방이요? 네네! 이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영어에 익숙지 않은 동행인을 돌아보며, "너.. 가방.. 가방.. 맡기래.. (소곤소곤)"

대부분 이유를 묻기다는, 미술관 스태프가 말하는 대로 순순히 따른다.

가끔 "가방만 맡기면 되나요?" 하며 입고 있던 겉옷까지 맡겨야 하는지 묻는 분도 있다.


어릴 적, 공공장소에서 부모님께 배운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치지 말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못 알아들었더라도, 앞사람이 맡기는 걸 보고 눈치껏 따라 하며 빠르게, 신속하게, 말없이 가방을 건넨다. 혹여나 뒤에 있는 사람이 나 때문에 입장이 늦어지지는 않을까, 스태프가 나 때문에 불편하진 않을까 - 그게 더 먼저 걱정된다.



믿음 전에 경계, 이유가 있어야만 건네주시는 그들의 가방

“Would you mind if we keep your bag in our check room?”

반면, 유럽, 북미권 배경의 관람객들은 이 요청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유형의 반응을 보인다.


첫째, 스몰톡 폭격기.

"Oh, I would love to!" 하며 호응한 뒤, "근데 너네 여기서 내 가방을 가져가진 않겠지? 이거 되게 비싼 거야!"하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스몰톡을 이어간다.

가끔은 백팩 속에서 준비된 작은 손가방을 꺼내며, "대신 이 purse는 들고 들어갈게." 하며 귀중품을 따로 챙기신다. 특히 여행으로 오신 분들은 여권이 안에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손가방을 따로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체크룸이 정말 '안전한 공간'인지 재차 확인하며, 가방의 가치를 은근히 계속 상기시켜 주는 타입. 체감상, 유럽, 북미권 관람객 분들 중 약 20% 정도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



두 번째, 이유 듣고 납득하는 유형.

가방을 맡겨드려도 되는지 안내드리면, 먼저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며, "Why?" "Is there reason for that?" 살짝 경계하듯 되묻는다.

"Since our gallery is a small inside, just to avoid any potential bumping into the artworks."

이유를 설명 드리면, 그제야 표정이 풀리며 - "Ah - Make sense!" "That is a smart way!" 하며 고개를 끄덕이시며 가방을 건네주신다. 대부분의 유럽·북미권 관람객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시며, 체감상 약 70% 정도다. 아무 이유 없이 가방을 맡기는 게 당연했던 나로서는 이 반응이 처음엔 꽤 낯설고 신기했다.



세 번째, 거절하고 돌아서는 유형.

하루에 적어도 3~4분의 관람객은 항상 이런 반응을 보이신다.

"I don't want to keep my bags."

질색하는 표정으로 프런트 데스크를 뒤로하고 매정하게 돌아서 나가버리신다.

같이 온 일행 분들의 가방을 모두 다 짊어지고 혼자 나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이런 반응을 들을 때면, 왜인지 모르게 0 고백 1차임 당한 느낌이 든다.

'아.. 아니 가방만 잠깐 맡겨드리겠다는데.."

체크룸은 스태프만 출입 가능한 공간이며, 충분히 안전하다는 설명을 드려도 됐다며 돌아서 미술관 밖으로 나가신다. 솔직히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내가 이상하게 말했나..?' '내 태도가 불쾌했나..?' '내 영어가 이상했나..?' 괜히 나 자신을 돌아보며 자책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반응에도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하루 종일 관람객을 응대하는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이 낯선 반응들에 익숙해지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봤다. 내가 경험해 온 세상과 어떤 점이 차이가 있을까 깊이 생각도 해보고, 혹여나 내 영어가 잘못되었을까 미술관 응대 상황 영어 연습도 해보고, 내가 모르는 세상의 문화에 관련된 문헌도 찾아 읽었다.

여기서부터는 토종 한국인으로서 미국 미술관 프런트에 2개월 앉아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나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아주 가벼운 해석이다.


우선 이 문화권별 큰 차이는 공동체주의 vs. 개인주의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유럽/북미권 관람객들은

본인의 가방은 물론, 동행인의 가방까지도 미리미리 준비해주시는 동아시아권 관람객들.

아무래도, 이 차이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는 공동체주의적 사고에서 출바하지 않았을까 싶다.


두번째로는 합리주의적 문화가 유럽·북미권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은 항상 이유를 묻는다.

“가방을 왜 앞으로 매야 하죠?” “왜 백팩은 맡겨야 하죠?”

하지만, 그 이유를 듣고 나면, 오히려 아무 질문 없이 가방을 맡기시는 분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가방을 벗어 건네주시곤 한다. 특히 “저희 미술작품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라고 설명드리면, 농담을 섞으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방 맨) 저희 와이프가 너무 칠칠치 못하긴 하죠! 하하.”

“그런 거라면 제 자켓도 벗어드릴 수 있어요! 모자도 드릴까요?”

되려 더 유쾌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반응해주신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신뢰의 근거를 어디서 얻는가의 차이인 것 같다.

유럽이나 북미권에서 온 관람객들은 기본적으로 처음 만나는 스태프를 바로 믿지 않는다.

그게 단순히 낯선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소지품을 몸에서 떠내보내는 순간 '나' 라는 주체 이외에 그 어느 누구든 믿지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 몇몇 분은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이거 잃어버리면 안돼서 그러는거야" 하며 일러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합리적인 이유를 듣고 나면 외려 더 적극적으로 맡겨주시는 이유는 아마 '합리적 설명'이 설득력 있어서라는 이유 하나라기 보단, 신뢰의 출처 때문인거 같다. 그들에게 신뢰라는 것은 '선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얻어내야'하는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Why?"라는 질문은 불신과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라,그들이 신뢰를 시작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우리가 이유 없이 가방을 맡기는 것은 "순응과 무조건적인 신뢰"가 아니라, 선예의, 후신뢰의 구조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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