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유달리 내게 드라이브를 시켜주는 이들이 많아졌다. 차는 그저 이동 수단, 운송수단일 뿐인 내게 ‘드라이브’라는 개념은 어쩐지 조금 생소하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생각해 제안해 주는 그들의 마음에 선뜻 응한다.
그러다 보면 안개 낀 천백고지를 무작정 달리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제가 죽고 싶긴 했지만요, 지금 이 타이밍에 당신과 함께는 아니었어요…” 같은 아찔한 농담도 주고받다가, 예기치 못하게 쏟아져 내린 눈을 맞으며 천진한 아이처럼 깔깔대는 날도 오는 것이다. 그런 순간들 모두 방울 같이 예쁜 추억이 된다.
가볍게 저녁 식사나 하자던 것이 다리를 건너 가까운 앞바다로 향할 때면 손끝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된다. 평소와 같은 일정이라 여겼거늘, 면허를 땄으니 변덕처럼 “어디론가 이동해 볼까 생각 중”이라는 상대의 말에, 나는 구태여 목적지를 묻지 않는다. 그저 두근거리는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서프라이즈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하루하루 날짜를 세며 설레면 그뿐이다.
사람은 대개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이에게 동경과 호감을 느낀다. 내게는 운전이 그랬다.
고도로 발전한 GPS 덕분에 전처럼 조수석에 앉은 이가 전도를 펼쳐 인간 네비게이터가 될 일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척척 목적지를 찾아가는 이들이 대단해 보였다. 내가 사는 이곳은 수도권이라 비교적 대중교통이 잘 정비되어 있지만, 어디를 가든 거리와 시간의 제약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일은 정말 멋있는 일이다.
‘제약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한한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 그들이 언제 어디든,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떠나는 선택지를 들고 있음에도 제 위치에서 부여받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동경스러웠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운전면허 그거 그냥 따면 그만인 것을,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별로 중요히 여기는 가치가 아니면 그다지 고집이 센 편은 아니다. 귀도 팔랑팔랑, 종이짝처럼 얇으니 보통의 경우라면 “응, 그래그래.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그러자. 그럴까?”하고 쉽게 퉁쳐버리는 편이다.
하지만 스스로 정해둔 무형의 가치와 신념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만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완강한 태도를 고수한다. 내 똥고집은 황소도 못 이긴다.
예컨대 꽤나 좋아하는 술이지만 혼자서는 입에도 대지 않는 것.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되, 그것이 내 일상의 평온을 깨트리는 수준이 되지는 말 것. 어떤 감정이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아끼지 않고 많이 할 것.
그리고 내 마지노선을 끝내 넘어버린 당신이 다시는 내 인생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 또한, 내 삶의 무게는 온전히 나 하나의 몫만큼만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갈 것.
조금 거창해 보이겠으나, 내가 운전을 하지 않는 건 이 똥고집 중 가장 마지막 항목에 해당한다.
고등학교 3년을 모두 보내고 졸업을 앞두던 무렵, 앞서가는 친구들은 벌써 운전면허시험을 보러 다니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면허를 따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김 여사’ 운전 영상을 보게 되었다. 타칭 ‘김 여사’는 미숙한 운전 솜씨로 한 여학생의 삶을 산산이 무너뜨렸다. 댓글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쏟아졌지만, 그 와중에 우습게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런 거였다.
‘나였어도 저랬을 것 같은데…’
단언컨대, 피의자를 옹호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내가 동일한 상황 속의 ‘김 여사’였다면 나 역시 그녀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자기 객관화가 아주 잘 된다. 순발력이 떨어지는 편인 나는 위기 상황 발생 시 잔뜩 얼어붙어버려 대처 능력이 아주 형편 없어진다. 게다가 작은 일에도 소스라치게 잘 놀라 돌발상황에 대한 위험 역시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각한 길치에다 특히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진다. 요즘은 모바일로도 지도 기능이 잘되어 있지만 방향감각마저 상실한 나는 툭하면 같은 건물을 뺑뺑 돌거나, 길 한복판에서 미아가 되어 망연자실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도로 위에 나를 올려두는 것이 무섭다. 이 나이까지 면허조차 없는 나를 보며 내 친구들, 혹은 동료들은 “그래도 연습하면 다 할 수 있어”라며 아주 열성적으로 설득하려 들지만 나는 위험천만한 도로 위에서 내 한계를 시험하고 싶지 않다. 아마 시작부터 잔뜩 쫄아 벌벌 떨다가 내가 울거나, 누군가를 울리겠지.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나를 정말 잘 안다.
나는 딱 내 몫만큼의 책임만 지며 살아가고 싶다. 실은 그마저도 참 버거운 생이라 생각한다.
내 엄마는 장롱면허를 연습하러 나섰다가 사고가 났다. 한때 나는 그 모든 불행의 단초를 찾아 헤맸다. 내가 더 영특해 일찍 공기업이나 은행 따위에 취직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딸이었다면 달라졌을까. 아니면 “그딴 애는 필요 없다”며 떠나버린 아비 때문이었을까. 혹은 재수 없던 어느 날에 그저 운이 없어 벌어진 의료사고였는지. 그도 아니라면, 애초에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그 경미한 운전미숙 사고가 최초의 근원이었을까.
이제 어디서부터였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연습하면 다 할 수 있어”라는 가벼운 말 위에 나와 내 가족, 친구, 혹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삶까지 얹어야 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나는 감히 짊어질 용기가 없다.
그러니 이토록 겁쟁이인 나는 딱 내 몫만큼의 삶과 책임을 이고 지고, 오늘도 뚜벅뚜벅 걸어 다니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