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제 임신할 거야?"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질문에 그녀가 푸스스 웃었다. 나는 숨겨뒀던 마음을 어리광처럼 내밀었다.
"나랑 조금만 더 놀아주면 좋겠어…"
더운 여름날, 변덕처럼 떠난 여행지에서 너울지는 밤바다를 뒤로한 채 그녀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녀는 이미 혼인신고를 마친 뒤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었고, 내년 겨울 예정된 식만 마치면 임신을 계획 중이라 했다. 아이를 워낙 좋아해 유치원 교사를 택했던 그녀는 오래전부터 ‘좋은 엄마’가 될 준비를 해온 사람이다. 나이도 적지 않고, 아이를 잘 돌볼 자신감을 가진 그녀를 모르지 않았지만, 나는 내심 그 결혼식 날짜가 더디게 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기어이 그날이 다가오고 말았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얼굴을 볼 만큼 각별했지만,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가 시작되자 그녀의 일정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고단해하는 그녀에게 만나자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식이 끝나면 꼭 회포를 풀자며 웃어 보였지만, 그 이후의 시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를 갖고, 출산하고, 가정에 온전히 마음을 쏟게 되면 예전처럼 쉽게 만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언니는 충분히 각오했음에도 결혼식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큰 비용과 시간이 드는 일이라며 피로해했다. 고단한 일정 속, 형부와도 사소한 일로 곧잘 다투곤 했다. 그럼에도 나를 볼 때면 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여자로서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공주 놀이를 꼭 해봤으면 좋겠어. 물론 결혼식은 정말 바쁜 일정과 말도 안 되게 많은 지출을 동반하지만, 네 아름다운 청춘은 그만한 가치가 있지. 만일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서 식을 올리지 않는 거라면 내가 도와줄게."
그러면 나는 조금 멋쩍게 웃는다. 맞다. 나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물론 각종 비용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나, 그런 것들은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치를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혼자 컸다. 어린 시절은 방임과 학대가 뒤섞인 날들의 연속이었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결핍은 못 입어본 드레스나 화려한 결혼식이 아니었다. 외롭게 혼자 커버린 나는, 혼주석에 누구도 앉히고 싶지 않은 반인륜적인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게 바로 사무치도록 쓸쓸한 결핍이었다.
우습게도 상황이 도우려는 듯,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유행해 결혼식을 미루거나 올리지 않는 것은 꽤 흔한 일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부모님에게 나의 가정사를 밝히느니 차라리 ‘고아’가 되겠다고 했다. 결혼을 가정과 가정의 결합으로 여길 이 나라에서 몹시도 망측한 소리였겠다. 그럼에도 그는 나와 결혼을 결심했다.
식은 올리지 않기로 했지만, 가장 찬란한 순간을 남기고 싶었던 우리는 깔끔한 셔츠와 나비넥타이, 흰 원피스와 화관을 준비해 신혼여행을 가장해 제주도로 향했다. 초겨울의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고작 얇은 원피스 한 장으로는 버티기 힘든 추위였지만, 우리는 차를 타고 달리다 우연히 발견한 검은 현무암 해변에 멈추어 섰다.
수평선은 아득했고 청명한 하늘은 아름다웠다.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던 우리는 조심스레 키스했다. 마침 지나가던 폭주족들이 환호성을 질러내니, 마치 영화와도 같은 순간을 맞이한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틀에 박힌 결혼식 따위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바람과 바다가 아름답고 당신과 내가 찬란하니까. 관객까지 완벽한 그곳이 이미 결혼식장이었다.
살면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일이나, 하늘하늘한 공주 드레스를 입어보지 못한 것을 두고 아쉬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나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거라 믿었던 단짝에게 축의금 답례를 하지 않은 이유를 어렵사리 물었을 때, "네가 뒤늦게 결혼식을 올리게 되면, 중복으로 축의를 할 수는 없잖아"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만큼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나는 네게 몇 번이고 축의를 건네야 할 상황이 되어도 기쁘게 축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든가, 차라리 '저번에 했으니 이번엔 패스하겠다는 말조차 못 할 사이였어, 우리가?'라는 말을 끝내 소리 내지 못한 채 삼키고 말았던 기억이 문득문득 손가락을 따끔이게 했다.
또, 식을 올리지 않았다는 내게 "나는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를 거야."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던 친구와는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주 속이 좁은 사람인 것 같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예쁘게 자라, 주변 이들에게 사랑을 넉넉히 나누던 친구의 결혼식장에서는, 오랜 친구들과 우정을 담은 아름다운 영상 편지를 선물 받는 모습을 보며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버석거렸던 것 같다.
나도 넉넉한 사랑을 받고 자라 사랑을 베푸는 법을 조금만 더 일찍 배웠다면, 곁에 더 많은 친구가 남아있었을까…. 분명 사랑하는 나의 친구를 축하해야 할 순간이거늘, 이딴 옹졸한 감정을 품는 내가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 슬퍼졌다.
나는 식을 올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올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늘 되돌려 받지 않을 마음으로, 정말 축하하고 싶은 이의 결혼식에만 조용히 참석해 마음만큼의 축의를 놓고 나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족들이 화목하게 끌어안는 장면을 보며 코끝이 찡해지는 기분을 애써 모른 척한다. 남의 결혼식에서 흘리는 눈물은 어느 쪽으로나 오해받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또 하나의 결혼식 앞에 서 있다.
그녀가 결혼한다. 나는 순백의 아름다운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당신의 말처럼 인생에 한 번뿐일 공주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식이 끝난 뒤 그간 참았던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겠다며 줄줄 늘어놓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 역시 나는 그녀가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가 영영 내 언니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이나 나는 그녀가 행복하길 간절하게 바란다.
하얀 드레스 자락이 흔들릴 때마다 나의 결핍도 한 조각씩 내려놓는다. 나는 비록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예식을 치르지 못했지만, 내가 진정 바라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받는 축복이면 족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이미 오래전, “나는 네 인생의 단 한 번뿐인 공주 놀이를 꼭 해봤으면 좋겠어.”라던 그녀의 말에 넘치도록 받았다.
금빛 장식이 수 놓인 식장 문이 열리고, 그녀가 수줍게 걸어 나온다.
그녀가 결혼한다. 문득 온전히 그녀의 행복을 바라는 내가 마음에 드는 것 같다. 그 소망이 나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