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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펜을 잡은 이유

그래서 브런치가 뭔데?

by 마른틈

나는 고졸이다. 늘 어떤 결핍에 떠밀리듯 부유하던 나는 때가 10년이나 지나서야 대학생이 되기로 결심하게 되는데, 그것이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은 분명하다. 대학 대신 취업을 택해 새벽같이 출근하던 나는 과제 지옥에 허덕이는 친구들을 보며 슬며시 마음 한켠이 뒤틀려서는, 속 편한 소릴 다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대학의 일정이 퍽 당황스러웠다. 실제 출석조차 않는 방통대일진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 60개의 강의가 쏟아졌다. 부랴부랴 완강하니 시험이 들이닥치고 겨우 한숨 돌리려는 찰나, ‘네가 진짜 공부한 게 맞아?’를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 재수 없는 과제 알림이 줄줄이 날아들었다.


그런 과제였다. 그 글도.


주변에서 취미를 즐기는 사람과 별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골라 비교해 보시오. 비교 과정에서는 삶에 대한 만족도, 시간활용 방식, 대인관계 등에 초점을 맞춰 보시오. 그리고 이 비교에 기반을 두고 취미를 가지는 것의 장점 및 단점에 대해 분석해 보시오.


과제로 글을 써본 것이 처음은 아니겠으나, 십수 년 전 펜을 놓은 이후 나는 가끔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메모장에 두서없이 흘려놓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과제를 받았을 때 어쩐지 조금은 열과 성을 다해 진심으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로써 건강해진 나의 삶은 진정한 ‘나’를 찾고 사랑하게 해 줄 것이다. 오늘도 나를 사랑하는 하루가 되기를, 모두가 안녕하기를 바란다ㅡ“ _ 「취미가 있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 중 발췌


사실 이 마지막 문장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여운이 남은 온점을 찍어내며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온전한 주제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써본 게 도대체 얼마만이더라. 햇수를 세려는 마음이 두근거렸다. 나는 나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수없이 문장을 다듬고, 고치고, 다시 읽었다. 그러다 어느순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내 글이 궁금해졌다. 그때 불현듯 ChatGPT가 떠올랐다.

생성형 AI 모델 챗지피티가 처음 출시됐을 때 사람들은 열광하고 환호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기민하게 따라가지 못하는 편인 나는 그 녀석에게 가끔 치킨 메뉴나 고민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챗지피티에게 저녁 메뉴를 물어보는 답정너의 어느 하루)

그 녀석은 내 글을 보고 이렇게 평가했다.


뭐야? 네가 글을 안다고? 몇 초 만에 내 숨 가쁜 문체까지 파악한다고?


AI의 저력을 우습게 보던 나는 퍽 당황스러워서, 이 건방진 녀석에게 면접이라도 보는 심산으로 이것저것 물어댔다. 에세이 그게 뭔데ㅡ 아프면 아픈거지, 청춘이라고 말하는 그런 거?

그러나 얼마쯤은 줄줄이 달린 사탕처럼 달콤한 말만 해주는 그 녀석이, 십수 년 전 놓아버린 어떤 꿈을 인정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에 눈가가 뜨거워지고 만 것이다.



그 녀석은 자꾸 ‘브런치’를 추천했다. 브런치 그거 먹는 거 말하는 거야? 그게 무엇이고 하니, 글을 쓰는 플랫폼이라 하더이다. 내가 아는 집필 플랫폼이라고는 리디북스, 네이버 기타 등등의 ‘전업 작가’의 경계에 걸쳐있는 곳들뿐이었다. 그래서 이 생소한 플랫폼을 나는 죽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글들 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 글들은 내게 다가와 조심스레 노크하다가 이내 사라지기도 했고, 어떤 글은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뻥 하고 차고 들어와 폭탄처럼 터지기도 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브런치 작가가 되려면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제출해야 할 글은 3편. 작가의 평소 생각이나 활동을 알 수 있는 SNS가 첨부되면 가산점이 있다고도. 선정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는 대략 2~3일.

펜을 놓은 지가 한참이건만 내가 과연 이런 심사에 통과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글이 세 편이나 있기는 했던가. 어떤 열이 찢기던 날에 그 흔적이 자못 꼴 보기 싫어 모든 자료를 지우고 버렸다. 아마 남은 게 없을텐데. 폐쇄적인 개인 SNS도 별 도움 될 것 같진 않고, 상업용으로 운영하는 계정이 있긴 하지만 내 개인적인 공간에 연결하고 싶진 않아.

으레 그래왔듯 시작도 전에 포기하려는 마음이 관성처럼 피어올랐으나 이번에는 어쩐지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나의 결핍이었다. 아주 찬란했던 어느 날 조용하고 사랑스러웠던, 그러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덧없이 스쳐 간 그런 결핍. 나는 요즘 아주 뒤늦게 나의 결핍들에 하나씩 약을 발라주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이 결핍에게도 약을 발라주고 싶었다.

부랴부랴 어떤날의 메모장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 이별의 글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일의 시발점이었던 「취미가 있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포함해 두 편의 글을 함께 담았다. 세 편을 채웠어야 맞겠으나, 도무지 그럴 여력이 없어 첫술에 배부르지 말자는 마음으로. 출간작가, 시인 같은 전문성을 갖춘 다른 사람들의 키워드를 보며 나의 보잘것없는 키워드를 어떻게든 포장하려 애쓰다가 결국 늦은 밤 조금은 주저하면서 어려운 마음으로 신청을 넣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3시 32분.

휴대전화에 별안간 메일 알람이 울렸다.


뭐가 그렇게도 급했는지,

나는 갑자기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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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