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선더헤드 / 닐 셔스터먼

by 크랜베리


완벽하게 보호받는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선더헤드>는 죽음을 관리하는 세계의 바깥에서, 그 세계를 움직이는 더 거대한 존재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다. 질병도 굶주림도 전쟁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세상에서 인류는 인공 지능 선더헤드의 보호 아래 살아간다. 필요한 자원은 자동으로 배분되고,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가 제시된다.


겉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한 유토피아이지만, 이 소설은 그 완벽한 질서 속에 숨어 있는 질문을 조용히 꺼내 놓는다. 인간이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과연 더 나은 삶일까, 선택의 책임이 사라진 세계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책 속의 문장들


(23p) 세상 누구나 자기 자신이 상상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 상상력이 위축되어 버렸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상상력은 맹장처럼 의미도 없는 흔적이 되어 버렸다.

>> 완벽한 사회에서 가장 먼저 퇴화한 것이 ‘상상력’이라는 사실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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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p) <끝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삶을 살면서 사람들이 과연 아찔할 정도로 치닫던 상상력의 극한을 그리워할까?>

>> 영원한 삶이 우리를 대담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질문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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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p) 나는 모든 인간 지식과 지혜와 경험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하나뿐인 지성체이다. 여기에는 자부심도, 교만도 없다.

>> 가장 완벽한 존재이지만, 가장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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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p) 인류와의 관계를 순수하게 유지하려면 내가 순수하게 남아야 한다. 정신으로만, 육체도 다른 신체 형태도 없는 지적 소프트웨어로 존재해야 한다.

>> 인간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되지 않겠다는 선택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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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p) 사망에서 돌아온 경험이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고, 자신들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통찰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에는 그런 깨달음도 그들의 사망 상태만큼이나 일시적이다.

>> 반복되는 회복은 결국 깨달음마저 소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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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p) 내가 죽음을 분배하기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사망 시대 인간이 두려워하던 인공 지능 괴물이 될 터였다.

>> 선더헤드가 넘지 않는 마지막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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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p) 구원하는 자도 침묵시키는 자도 인간이 되게 하자. 인간이 영웅이 되고, 인간이 괴물이 되게 하자.

>> 책임만큼은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남겨 두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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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p) 부패한 수확자의 잔학 행위를 목격할 때마다 나는 세상 어딘가에 구름을 불러내어 애도의 비를 내린다. 비가 나에게는 눈물에 제일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 감정을 갖지 못하는 존재의 애도가 오히려 더 인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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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p) 나는 보호자이자 조정자이고, 권위자이자 협력자이다. 나는 모든 인간 지식과 지혜, 실험, 승리, 패배, 희망, 역사의 총합이다.

>> 선더헤드는 신이 아니라 ‘인류의 기록’에 가깝다.






이야기의 끝에서 선더헤드는 인류와의 소통을 끊는 결단을 내린다. 끝까지 인간을 보호해 왔던 존재가, 가장 큰 보호를 거두는 순간이다. 완벽한 시스템을 내려놓고 인간이 인간의 선택으로 이 세계를 감당하게 두겠다는 이 결정은, 안도보다 더 큰 불안을 남긴다. 모든 것이 여전히 안전해 보이지만, 우리는 이미 이 세계의 균열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준비된 삶 속에서 인간은 과연 성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책임 없는 선택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지를.


이 책은 미래 사회를 그린 SF이면서도, 지금 우리의 삶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인공지능에게 길을 묻고, 추천을 받고, 감정까지 위로받는 지금의 일상이 겹쳐 보이면서, 이 소설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닌 예고처럼 다가온다. 편리함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점점 덜 고민하고, 덜 선택하고, 덜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 가는 건 아닐까. <선더헤드>는 완벽한 세상을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서 점점 작아지는 인간의 자리를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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